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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열의 <라이프 오브 파이> 기술적인 황홀경

감독 리안 / 출연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 제작연도 2012년

‘내 인생의 영화’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아!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는 나로 하여금 입체영상 공부에 뛰어들게 해준 <아바타>지만, 3D 입체에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시키면서 치유에 관한 콘텐츠(<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십니까?> 치매 체험 드라마)를 제작해보니 스토리텔링 안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더불어 치유에 관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 입체를 활용해 가장 정신적이고 근원적인 이야기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라이프 오브 파이>가 떠오른 것은 나 역시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정신적이고도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픈 욕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바타>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준 영화라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내 인생의 방향 안에서 좀더 의미 있고 풍부한 가치를 갖게 해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믿는 것과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호랑이와 소년의 모험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영원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욕심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소설이 원작인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야기 자체로도 독창성을 지녔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시대의 트렌드에 휩쓸려 입체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구현해내기에 가장 적합한 기술로 3D 입체를 선택했다. 놀라움과 돌출효과에 집중되었던 초기 3D 입체 기술에서 나아가 전체적인 영상에 입체감을 균등하고 풍부하게 배치했고, 자극적인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으면서 실용적이고 아름답게 완성했다. 특히 이 영화의 엔딩 신인 멕시코 해안에서 벵골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3D 입체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독특한 연출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다시 한번 보면서 몇몇 장면들은 VR로 구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VR영화는 관객이 되어서 3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닌, 직접 파이(수라즈 샤르마)가 되어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랙티브까지 가능하며 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른 엔딩을 만들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추측했던 것처럼 VR로 다시 만든다면, 각자의 엔딩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제작하면 어떨까?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물이나 바다 위에 비친 하늘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한 장면은 바다가 하늘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모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먹먹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바다와 하늘은 하나였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넓고 무방비한 자연 안에서 거대한 호랑이와 왜소한 소년은 똑같이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된다. 파이의 시선 위로 날아오르는 고래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그 너머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실제가 아닌 영상으로 접하는 자연의 황홀함이었지만 먹고사는 일에 뛰어들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휴식 같은 편안한 시간을 주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얻고 싶어 할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충족하는 동시에 기술적인 황홀경까지 이뤄낸 작품이다.

전우열 벤타브이알 대표. 3D 입체 디렉터로 시작해 현재는 <좀비데이> <공룡이 살아 있다> <어게인> <동두천> 등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는 입체 VR영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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