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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을 비롯한 ‘남성 vs 여성’ 대결의 역사와 관련 인물·단체 이야기
장영엽 2017-11-08

승리자들

테니스 역사상 펼쳐진 성 대결에서 빌리 진 킹이 남자 선수에게 이긴 최초의 여자 선수는 아니다. 테니스 성 대결의 역사와 더불어 영화가 중요하게 다룬 실존 인물과 사건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비 리그스와 빌리 진 킹(왼쪽부터) (ABC 스포츠)

빌리 진 킹

전직 여자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 39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거머쥔, 테니스 명예의 전당(1987년) 멤버. 여자테니스협회와 여성 스포츠재단 설립자, 성 평등과 사회 정의를 위해 투쟁한 선구자. 빌리 진 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 중 한명이자 유능한 사회운동가다. 1943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나 11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그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테니스 역사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킹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61년 윔블던에서 최연소(20살)로 여자 복식 우승자가 되면서부터다. 그녀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킹의 빠르고 강한 공은 상대 선수를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위력이었다고 한다. 1973년, 55살의 남자 테니스 선수 보비 리그스와의 성 대결에서 우승하며 킹은 양성 평등의 의미를 확장하고 여자 테니스 선수들의 자존감을 지켰다. 1987년, 래리 킹과의 결혼 생활을 끝낸 킹은 그로부터 수년 뒤 51살에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남녀 테니스 선수의 상금 차별을 반대하며 단돈 1달러에 ‘버지니아 슬림스’ 투어에 합류하기로 계약한 ‘오리지널 9’. (사진 WTA)

여자테니스협회(Women’s Tennis Association, WTA)

여자테니스협회 이야기는 1970년 9월 23일, 글래디스 헬드먼이 설립한 ‘버지니아 슬림스’대회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970년 당시의 미국, 잭 크레이머가 감독을 맡고 있는 퍼시픽사우스웨스트 챔피언십은 남자 테니스 선수와 여자 선수의 우승 상금을 12 대 1로 책정했다. 빌리 진 킹을 필두로 한 몇몇 여자 테니스 선수들은 이러한 성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월드 테니스 매거진>의 발행인인 글래디스 헬드먼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며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헬드먼은 담배회사 버지니아 슬림스의 지원을 받아 퍼시픽사우스웨스트 오픈이 열리는 주에 휴스턴에서 아홉명의 선수와 함께 토너먼트 경기를 개최하게 된다. 빌리 진 킹과 로지 카잘스, 피치스 바르트코비츠, 줄리 헬드먼, 케리 멜빌, 크리스티 피전, 낸시 리치, 주디 테가트 돌턴, 발 지겐푸스. 단돈 1달러를 받고 버지니아 슬림스 대회에 참가한 여자 선수들은 ‘오리지널 9’이라고 불렸다. 이후 이들을 비롯한 여자 선수들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19번의 토너먼트 경기에 참여한 빌리 진 킹은 ‘버지니아 슬림 서킷’의 경험을 기반으로 1973년 여자테니스협회를 결성한다. 당시 빌리 진 킹과 WTA는 국제테니스연맹에 맞서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과 동등한 상금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끊임없이 주장했고, 이러한 WTA의 활동은 테니스를 넘어 여성 스포츠인들에 대한 재정적인 대우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비 리그스

“아름다운 사기꾼의 초상.” 1973년, 보비 리그스를 조명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이었다. 전직 남자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로 1930~40년대를 풍미했던 보비 리그스(1918~95)는 “도발적인 행동을 수익으로 연결시킬 줄 아는”(<뉴욕타임스>) 비즈니스맨이기도 했다. 1973년 남성우월주의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리그스는 “여성들을 원래 그들이 속해 있던 집으로 돌려보내자”며 미국 랭킹 1, 2위를 다투는 여성 테니스 선수들에게 성 대결을 제안했다. 55살에 당시 미국 여자 테니스 랭킹 1위였던 마거릿 코트에게 완승한 그는 빌리 진 킹과 또다시 테니스 성 대결을 치렀지만 완패했다. 리그스에게는 1939년 윔블던 챔피언십에서 자신의 우승에 베팅해 10만5천달러를 벌어들인 전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가 도박빚을 갚으려고 일부러 킹에게 졌다는 루머도 무성했지만, 리그스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보비 리그스는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빌리 진 킹의 좋은 친구로 남았다.

마릴린 바넷

영화에서 빌리 진 킹이 사랑에 빠지는 여성, 마릴린 바넷은 실존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72년 5월, 킹이 버지니아 슬림스 투어에 참여하는 도중 (영화에서처럼 미용사와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빌리 진 킹과 보비 리그스의 성 대결을 조명한 셀레나 로버츠의 논픽션, <필요한 스펙터클>(A Necessary Spectacle: Billie Jean King, Bobby Riggs, and the Tennis Match That Leveled the Game)을 보면 마릴린 바넷과 킹의 관계가 영화 속 묘사보다 훨씬 뜨거웠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빌리 진 킹의 현 애인이자 복식 파트너였던 일라나 클로스가 이번 영화에 ‘스페셜 컨설턴트’로 참여했기 때문인지, 바넷과 킹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되었는지 영화는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바넷은 1981년 킹과의 관계를 폭로하며 그녀에게 재산 분할을 요청했고, 이로 인해 빌리 진 킹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윌리엄스 자매의 패배를 조명한 미국 일간지 <더 프리 랜스 스타>의 기사.

테니스 성 대결의 역사

1888_ 어니스트 렌쇼 vs 로티 도드

영국 엑스모스에서 열린 윔블던 남자 우승자 어니스트 렌쇼와 여자우승자 로티 도드의 경기. 도드는 세트마다 30점을 앞선 상태로 경기에 임했지만 승자는 두 세트를 이긴 렌쇼였다.

1921_ 틸덴 vs 수잰 렝글렌

미국 남자 테니스 선수 최초로 윔블던에서 우승한 빌 틸덴과 여자테니스 역사상 최초의 유명 인사로 평가받는 수잰 렝글렌이 프랑스 생 클라우드에서 한 세트를 겨뤘다. 틸덴이 6 대 0으로 승리했다.

1933_ 필 니어 vs 헬렌 윌스

전미 대학체육협회(NCAA) 챔피언 출신의 남자 선수 필 니어와 1920~30년대 세계 최고 여자 테니스 선수였던 헬렌 윌스가 두 세트를 겨뤘다. 윌스가 두 세트 모두 이겼다.

1973_ 보비 리그스 vs 빌리 진 킹, 보비 리그스 vs 마거릿 코트

(44쪽부터의 기사 참조)

1975_ 챌런지 오브 더 섹시스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챌런지 오브 더 섹시스’에서 농구,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의 선수들이 성 대결을 펼쳤다. 테니스에서는 영국 여자 선수 버지니아 웨이드와 스웨덴 남자 선수 비요른 보리, 루마니아 남자 선수 일리 나스타세와 호주 여자 선수 이본 굴라공의 경기가 열렸다. 보리가 웨이드를 6 대 2로, 굴라공이 나스타세를 7 대 5로 이겼다.

1985_ 배틀 오브 더 섹시스: 더 챌린지!

보비 리그스는 미국 남자 선수 비타스 게룰라이티스와 파트너를 이뤄 복식 성 대결을 펼칠 여자 선수들을 찾았다. 환상의 복식조로 불리던 미국 여자 선수, 마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팸 슈라이버는 “빌리가 그랬듯” 리그스 콤비를 이길 거라고 전망했고, 그녀들은 정말로 세 세트를 내리 이겼다.

1998_ 카스텐 브라쉬 vs 윌리엄스 자매

비너스 &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는 “세계 랭킹 200위권 이하의 어떤 남자 선수든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독일 테니스 남자 선수 카스텐 브라쉬(당시 세계 랭킹 203위)가 호주 오픈에서 윌리엄스 자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세레나에게 6 대 1로, 비너스에게는 6 대 2로 이겼다. 이날의 패배 이후 윌리엄스 자매는 이길 수 있는 남자 선수의 범위를 세계 랭킹 350위로 조정해야 했다.

2003_ 야니크 노아 vs 쥐스틴 에넹

프랑스 남자 선수 야니크 노아와 벨기에 여자 선수 쥐스틴 에넹은 브뤼셀 인근 포레스트 내셔널 경기장에서 우정의 경기를 펼쳤다. 2 대 1로 노아가 승리했다.

2013_ 노박 조코비치 vs 리나

세르비아 남자 선수 노박 조코비치와 중국 여자 선수 리나는 차이나 오픈 10주년을 기념해 중국 베이징에서 미니 세트 경기를 펼쳤다. 리나가 3 대 2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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