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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화려한 귀환
장영엽 2017-12-06

꿈으로 영화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고요하지만 강렬한 열정의 영화가 찾아온다. 11월 30일 개봉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에네디는 이 작품을 통해 18년간의 공백을 깨고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같은 꿈을 꾸는 두 남녀가 결핍을 극복하고 소통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줄거리가 다소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수많은 현실의 편린과 이성의 영역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이러한 꿈의 속성으로부터 개인과 세계의 연결을,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을 읽었다. 그에 따르면 의식과 분별의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는 꿈을 통해 원형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꿈속에서 인간은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며, 문명화된 세계에서 손상된 삶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신작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융이 <기억 꿈 사상>에서 말했던 무의식의 강력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상실과 좌절, 폭력과 탐욕, 슬픔과 외로움. 현대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운 이 영화 속 꿈의 세계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일종의 유토피아다. 사슴으로 분한 인간의 자아가 시리도록 흰 눈밭을 거닐고, 서로의 뺨을 비비며, 자유롭게 먹이를 찾아 활보하는 세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이러한 유토피아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유려하게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성의 세계에서 인간이 상실한 것들을 회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 가장 큰 영예인 황금곰상을 안긴 것은 작품성과 예술성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상징하고 있는 가치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디코 에네디에게 황금곰상을 안기며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사용하는 ‘열정’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심사평을 남긴 심사위원장 폴 버호벤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일디코 에네디 감독이 돌아왔다

영화는 가축 도축장에서 일하는 두 남녀의 일상을 좇는다. 관리자로 일하는 엔드레(게자 모르산이)와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신입사원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에게는 믿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밤새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공장 직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꿈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쉽게 가까워질 수 없다. 엔드레는 과거 경험한 마음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마리어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 영혼의 소통을 넘어 육체의 교감을 원하는 두 사람의 바람은 번번이 좌절된다.

일디코 에네디에게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우연처럼 찾아온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드라마틱한 시작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녀에 대한 부연설명이 좀 필요해 보인다. 일디코 에네디는 1990년대 국제무대의 촉망받는 신인감독이었다. 그녀의 데뷔작 <나의 20세기>(1989)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데이비드 보위가 에네디의 차기작에 출연하고 싶다며 협업을 자청할 정도였다. 보위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그녀의 차기작 <매직 헌터>(1994)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1999년작 <마법사 시몬>은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없이 앞으로 전진할 것 같았던 재능 있는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필모그래피는 <마법사 시몬>을 기점으로 18년간 멈춘다. “단 하루도 영화를 놓은 적”이 없지만 운이 그녀의 편이 아니었을 뿐이다. 다섯개의 프로젝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좌초되는 사이, 세기가 바뀌고 필름의 시대가 저물었다. 일디코 에네디는 그렇게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철강 노동자”처럼 고통스럽고 황량한 시기를 보내던 어느 봄날, 일디코 에네디는 차기작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갔다. “초봄이었다. 꽃봉오리가 피지 않았지만 곧 만개하리란 걸, 그것이 태양과 바람에 활짝 열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꽃처럼 내 마음이 만개하길 바라며, 눈밭의 두터운 구름 같은 마음에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 같은 열정이 있음을 노래한 헝가리 시인 언게시 네메시 머지의 시를 떠올렸다. 바로 이런 감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외로운 도시남녀와 융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같은 꿈을 꾼다’는 아이디어를 함께 생각해냈다. 이것이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시작이다.

나는 너와 소통하고 싶다

영화는 아무런 설명 없이 설원을 거닐고 있는 두 마리 사슴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서로를 탐색하는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영화의 타이틀롤이 뜨고 사슴이 자취를 감추면 도축장 우리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소의 모습과 건물 속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두 남녀, 마리어와 엔드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앞서 등장한 두 마리의 사슴이 마리어와 엔드레의 꿈속 자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러닝타임이 30여분이나 훌쩍 지난 뒤의 일이다.

일디코 에네디 영화에서는 일견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나란히 전개되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의 데뷔작 <나의 20세기>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으나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자매의 삶을 나란히 보여주며 그녀들이 우연히 같은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매직 헌터>는 막스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현대 헝가리와 중세의 헝가리라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를 교차 전개한다. 차이는 서로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에네디가 즐기는 이러한 차이와 반영의 게임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몸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도축장의 소와 그곳에서 일하는, 영혼이 위태로워 보이는 두 남녀의 표정은 어딘가 닮아 있다. 타인으로부터 어떤 정서적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마리어와 무기력하고 냉소적인 엔드레는 서로 다른 고민을 안고 있지만 누군가와의 소통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을 공유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족과 성별, 문화와 정체성을 대변하는 존재들이 이루는 위태롭고도 기묘한 균형은 일디코 에네디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심지어 캐스팅에 있어서도 에네디식 균형의 법칙은 적용된다. 마리어를 연기한 알렉상드르 보르벨리는 헝가리의 다양한 TV시리즈와 연극에 출연하던 프로 연기자인 반면, 엔드레를 맡은 게자 모르산이는 출판사 이사 출신으로 연기 경력이 전무한 비전문배우였다. 이들의 호흡을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용기를 낸 인간에게 주어진 환희의 순간

흥미롭게도 일디코 에네디는 이 영화의 레퍼런스로 왕가위의 걸작 <화양연화>를 꼽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표면 아래 들끓고 있는 열망과 염원을 표현하길 원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궤를 같이한다. 마리어와 엔드레의 반복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공간이 도축장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디코 에네디의 말처럼 “안전에 대한 현대사회의 모든 기준”을 반영하고 있는 도축장은 모던하고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완전히 말소된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두 주인공이 충만한 삶을 누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길 바랐다. 대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걸곤 한다”고 일디코 에네디는 말했다. 모든 것이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둔 두 남녀가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위해 용기를 내는 순간의 감동이 이 영화에는 있다. 그리고 에네디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통해 이러한 감동을 포착해내는 데 능하다. 영화의 한 장면, 마리어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원으로 나간다. 풀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던 커플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터지는 스프링쿨러의 물줄기에 놀라면서도 환희를 느끼는 순간은 몹시 감각적이고도 감동적으로 촬영되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소동극도 마찬가지다. 마리어와 엔드레의 내성적인 성격을 반영하듯 이 소동 역시 찻잔 속의 태풍처럼 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의 일탈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보는 이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끔찍하게 긴 터널의 끝을 알리는 빛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가버릴, 조용하고도 내성적인 두 남녀의 성장 로맨스 영화가 탄생한 건 아마 이 영화를 만든 일디코 에네디 역시 같은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마트 점원에게 무언가를 묻기 전에 몇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겨우 말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일디코 에네디가 사람과 사람의 교류와 협업으로 완성되는 예술인 영화에 평생 천착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영화 작업을 통해 비로소 세계와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세계를 재발견하는 에네디의 여정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험과도 맞닿아 있다.

‘끔찍하게 긴 터널의 끝을 알리는 빛.’ 일디코 에네디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라는 작품을 이렇게 평가한다. 세상으로부터 잊힌 한 영화감독이 이렇게 건재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를 닮은 연출자의 성장 스토리만큼 흥미진진한 소재도 드물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선전과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귀환은 올해 들을 수 있었던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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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