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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근현 감독 성희롱 사건 밀착 취재
김성훈 사진 씨네21 사진팀 2018-02-22

여배우라면 남자 감독을 자빠뜨려야 한다고?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 준비하는 애들 널리고 널렸고 다 거기서 거기다.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감독을)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영화라는 건 평생 기록되는 거야,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이것은 영화대사가 아니다. 영화 <흥부>를 연출한 조근현 감독이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온 여성 ㄱ씨에게 한 말이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미투(MeToo) 운동’과 더불어 성범죄와 관련된 각종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에서도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24살 ㄱ씨는 2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오후 3시에 감독의 작업실에서 가수 Y님의 뮤직비디오 미팅을 가서 직접 들은 워딩입니다”라고 자신이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ㄱ씨와 조근현 감독을 각각 따로 만나 들은 얘기를 모아보면, 조 감독이 ㄱ씨에게 해당 발언을 한 게 사실로 확인됐다.

ㄱ씨는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3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조 감독의 작업실을 찾았다. 당시 <흥부> 후반작업을 진행하던 조 감독은 절친한 모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로 했었다. 뮤직비디오 설정 때문에 그 가수를 빼닮은 배우를 찾기 위해 과거 자신의 엎어진 영화의 조감독의 도움을 받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고, 인스타그램에서 가수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여성들을 찾아 그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면접 가능 여부와 일정을 각각 따로 잡았다.

ㄱ씨는 조근현 감독과의 면접 자리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면접을 본 곳은 조 감독의 작업실이었다. ㄱ씨의 말에 따르면, 작업실은 7~8평 남짓한 전형적인 원룸 오피스텔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주방이 보였고, 개인용 소파 하나와 그 맞은편에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조 감독은 개인용 소파에, ㄱ씨는 맞은편 소파에 앉은 채로 면접이 진행됐다.

여느 면접이 그렇듯이 이 면접 또한 ㄱ씨의 자기소개, 조 감독이 ㄱ씨에게 연락하게 된 이유, 뮤직비디오 작업 설명 등 기본정보를 주고받는 대화로 진행됐다. 대화가 15~20분쯤 지난 뒤 조근현 감독의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감독님께서 내 소개를 듣고 ‘넌 연기자를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연기자라는 건 특별한 인생을 이야기에서 대신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특별해야만 연기자로서 기본이 갖춰지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감독은 다른 여배우에 대한 성희롱 발언도 서슴없이 꺼냈다. “내가 (영화 경력) 데뷔작 찍을 적에 보조출연 알바 하러 온 애가 있었는데 그날 A, B, C 감독 셋이 촬영현장에 놀러왔었다. 운좋게도 알바 하러 온 친구 모니터링하고 있었거든. 놀러온 감독들이 ‘얘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 애가 똑똑한 게 A를 자빠뜨렸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걔가 (A의) 영화에 누나 역으로 나오고 그랬어.” 또 다른 여배우 K의 모 영화 오디션 일화도 나왔다. “여배우 K 알지? 걔가 특출하게 예쁜 것도 아닌데 배우를 어떻게 한 줄 아냐. 대학교에서 이 남자, 저 남자와 자고 다니기로 유명했어, K가. 내가 보기에 K는 여배우로서 여러 성향의 남자를 공략하는 공부를 한 거다, 잘한 일이다. (그런 K가) 모 영화 오디션 때 자신보다 예쁘고 연기 잘하는 애를 봐서 도박을 걸었어. 자신 차례에 ‘이딴 유치한 거 안 한다’고 (말하며) 대본 집어던지고 나갔어. (그 영화) 감독이 따라 나가서 ‘어디가 유치하니?’라고 묻자 K가 이딴 유치한 거 시키려면 차라리 나랑 한번 자든지’라고 했다. 너라면 그 상황에서 그럴 수 있겠니?”

이런 발언을 연달아 들은 ㄱ씨는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감독님이 내게 ‘너라면 K처럼 (배역을 얻기 위해 감독에게 자자고) 할 수 있겠니? 라고 되물었다. 나는 ‘안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K처럼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과감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후 ㄱ씨는 동물적인 감각이라는 표현을 수없이 들었다.

ㄱ씨는 조근현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발끈하고 싶었지만 낯선 공간이고,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센 남성인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서워서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또 “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나한테 상스러운 얘기를 할까. 여배우가 감독과 당연히 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가 과연 옳은 걸까. 면접 전날 열심히 면접을 준비한 나 자신이 정말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얘기를 듣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면접은 4시20분쯤 끝났다. 조근현 감독은 면접이 끝날 때쯤 “오늘 말고 다음번에 또 만나자. 술이 들어가야 사람이 좀더 솔직해진다. 너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조 감독이 ㄱ씨에게 다시 만나자고 한 건 뮤직비디오 스탭들과 사전에 잡힌 망년회에 초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알려왔다-편집자). ㄱ씨의 말에 따르면, 뮤직비디오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길어야 20분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 1시간여는 여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ㄱ씨는 면접 다음날 조근현 감독으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은 뒤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했고, 자신의 비공개 계정 인스타그램에 “(면접이) 너무 더럽고 수치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씨네21>이 지난 2월 5일 조근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근현 감독은 ㄱ씨와의 면접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한 게 아님을 강조했다. 조 감독은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내 정체를 밝히고 작업실로 오라고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계가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는 현실을 말해주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표현을 썼을 수도 있겠다. 상대방이 정말 불쾌하게 느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뮤직비디오 면접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들은 건 ㄱ씨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근현 감독은 <씨네21>과 전화통화를 한 다음날인 2월 6일 ㄱ씨를 포함한 당시 면접을 본 사람들 모두에게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상황이 어찌됐든 그 미팅을 통해 상처를 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나름 좋은 가치를 추구했고, 누구에게 폐 끼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인데 누군가에게 이렇게 상처를 준 셈이 되었으니 무척 괴롭다. 영화라는 생태계 밖에서 영화계를 너무 낭만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길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예의를 갖춰 열심히 얘기를 했고, 당신의 얘기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워 한번 더 만나길 바랐고, 그조차도 부담을 느낄 수 있겠다고 여겨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상해 글까지 올린 걸 보면 그 자체로 괴롭고 내 잘못이 크다. 다시 한번 사과한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 글을 지워줬으면 한다. 영화(<흥부>)가 개인 작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포함된 까닭에 내 작은 실수가 영화를 깎아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ㄱ씨가 받은 문자 내용이고, 면접을 본 다른 사람들은 받는 사람 이름과 내용이 다소 달라진 문자를 받았다. 조 감독과 면접을 본 또 다른 배우 둘은 ㄱ씨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조근현 감독에게 받았다”라며 자신이 받은 문자를 캡처해 보냈다. <씨네21>은 이 두명의 여성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조근현 감독은 “누가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서 면접을 본 사람 모두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누구한테 성희롱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 발언을 자주 일삼아왔다고도 풀이된다.

조근현 감독은 지난 2월 12일 <씨네21>과 만나 자신의 입장과 심경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공개 오디션이 아닌 개인 면접 방식으로 배우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설명했다. “전작 <>(2014) 시나리오의 노출 수위가 매우 높았던 까닭에 공개적으로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 배우가 그런 시나리오인 걸 알고도 직접 읽고 찾아와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와 함께 잘 찍은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이 방식으로 배우를 만나 캐스팅을 했고, 신인배우 13명을 발굴해 내 영화에 차례로 출연시킬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미술감독 시절 많은 여성들과 작업해왔고, 연출 데뷔한 뒤에도 여성 제작자와 일을 해왔으며, 누구보다 폭력을 싫어하는 까닭에 이런 면접 방식이 문제라면 진작 일이 터졌을 것”이라며 “이번 상황은 그간 신인배우를 열심히 발굴해온 노력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조 감독은 자신이 배우 면접 볼 때 정한 원칙 세 가지를 알려주며 ㄱ씨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첫 번째 면접 원칙은 “미팅을 낮에만 잡는 것”이다. 그가 꺼내 보여준 이번 뮤직비디오 배우 면접 일정표에는 약 20명의 여성들을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하루에 세번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오후 6시에 만난 친구도 한명 있는데 이 친구가 직장인이라 부득이하게 퇴근시간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원칙은 “반드시 현관문을 열어놓을 것”이다. 그는 “용산 일대에서 임대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한시적으로 빌린 작업실이라 문을 잠글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원칙은 “아무리 어린 친구라도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갖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월 6일 보낸 사과 문자에 대한 다른 면접생들의 답장을 보여주었다. 문자 내용이 제각각 달라도 그들은 “조근현 감독과의 면접이 앞으로 이 일을 하는 데 좋은 계기로 작용했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해주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라”는 내용의 답장을 조 감독에게 보냈다. 조근현 감독은 “매번 진심을 다해 살아왔고, 신인배우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작업해왔다. ㄱ씨를 만난 날은 굉장히 좋은 분위기였고, 대화도 잘 통했으며, 좋은 인상을 받았다”라며 “하지만 ㄱ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 <흥부> 제작사와 배급사에 알려지면서 나는 이미 손발이 잘렸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제작사와 배급사는 이날 저녁 예정된 <흥부> VIP 시사회를 포함해 무대인사 등 영화 홍보 관련 행사에 조근현 감독을 제외했다.

조 감독의 말을 들은 ㄱ씨는 “대화는 거의 감독 위주로 진행되었고, 나는 일대일 상황에서 그의 말에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불쾌했지만 상황도, 대화 내용도 너무 충격적이라서 ‘왜 이런 얘기를 나한테?’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재차 반박했다. 그는 “면접을 볼 때 현관문 도어록이 잠겼는지, 안 잠겼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처음 찾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현관문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조근현 감독의 원칙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감성팔이식의 사과를 그만두고 자신의 언행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뿐”이라고 덧붙였다.

조근현 감독의 성희롱 사건을 들은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은 ‘여배우가 남자 감독을 자빠뜨려야 배역을 따낼 수 있다’는 조 감독의 발언이 “시대착오적이자 매우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한 남성 감독은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주연이든 조연이든 배우 한명을 캐스팅하기 위해 제작사, 배급사와 논의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배우 지망생들에게 저런 얘기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 여성 감독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는 배우가 가진 연기력과 스크린에서 관객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로 보는데, 감독을 자빠뜨려서 배역을 따낸 배우가 과연 배역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관객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한국영화계도 이런 얘기를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오디션에서 배우에게 그런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라며 “결국 이 사건을 포함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은 권력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그만큼 성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으로 무신경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면접 과정에서 벌어진 단순한 성희롱 사건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감독과 여배우라는 권력관계에서 빚어진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동구갑·행정안전위원회)은 이번 사건을 두고 “자신과 상대의 권력 차이를 이용해 약자인 상대의 성접대를 요구하거나 성희롱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성폭력”이라며 “이를 ‘영화계의 현실’로 묘사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이자 성폭력에 대한 방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고쳐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영화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금도 여전히 쉬쉬하고 있을 성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 의원의 말대로 이런 문제가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한 영원히 문제다. 조근현 감독은 영화계의 현실을 알려주려던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하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구세대의 악행에 관행과 관습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부여해줄 뿐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화판은 원래 이래’라는 체념과 가십의 경계를 오가는 방관이 아니다. 틀린 건 틀렸다고 공개석상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환경이다. <씨네21>은 영화계 인사들의 보다 적극적인 미투 고백을 기다린다.

*<씨네21>이 #미투(#MeToo) 운동을 이어갑니다. 영화계 #미투를 metoo@cine21.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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