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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작가 - 축구를 하며 알게 된 것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8-06-25

한국에서 축구하는 여성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뛴다. 잘하면 잘한다고 성별 논란이 일지 않나, 모르면 모른다고 ‘오프사이드는 말이지’하며 접근하는 ‘맨스플레인’의 먹잇감이 되지 않나. 몇몇 여성 선수들이 세계 최고 리그에 도전하는 것도 한국에서 ‘뽈’을 차는 게 이래저래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축구 초짜 김혼비 작가가 아마추어 축구팀에 들어가 3년 동안 공을 찬 사연을 그려낸 에세이다. <피버 피치>에서 아스널 팬의 희로애락을 털어놓은 닉 혼비처럼, 김혼비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축구 얘기를 하다가도, 맨스플레인을 만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로빙슛을 날린다. 우아하고 호쾌하게.

-요즘도 축구하고 있나.

=한달에 세번 정도. 지난해 취직하는 바람에 일주일에 한번은 출석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된다. 프리랜서일 때는 일주일에 두번 뛰었으니 요즘 출석률이 저조한 편이다.

-이 에세이는 축구를 하면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야기인데.

=축구 얘기만 하는 블로그 하나를 만들었다 처음엔 ‘몇월 며칠에 뭘 했다’ 정도로 간단하게 썼다.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어떤 회사로부터 연재해달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축구를 하게 된 사연을 쓰게 됐다.

-필명이 김혼비인데 <피버 피치>를 쓴 닉 혼비에서 따왔나.

=연재 시작 전에 필명을 지어야 했는데 축구 선수 이름을 활용한 여러 후보들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축구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닉 혼비밖에 없었다. 3분 만에 지었다.

-이 에세이는 김혼비가 축구팀을 지원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축구를 하고 싶은 이유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운동을 되게 좋아했다. 야구의 경우, 한때 LG트윈스의 광팬이었다. 농구와 배구 또한 좋아하고 학창 시절 자주 했었다. 하지만 축구는 해본 적이 없었다. 민주노동당 축구팀의 스트라이커 출신인 남편이 축구하러 다녔는데 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주말에 종종 운동장에 나가서 남편과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경험을 쌓으면 내가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동기가 생긴 거지.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는 스포츠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인데도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건 축구가 아주 새로운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중, 여고를 다닌 덕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축구를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녀공학이었다면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독차지했을 테고, 남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껏 운동하지 못했을 거다. 어쨌거나 모든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큼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축구의 어떤 점이 좋았나.

=많은 사람들이 야구는 지적인 운동이고 축구는 원초적인 운동이라고 얘기하지 않나.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룰만 파악하면 게임을 이해하기 수월하다는 점에서 야구가 골격을 갖춘 서사에 따라 전개되는 소설이라면, 축구는 읽어야 할 행간이 많은 시 같다. 그 점에서 축구가 야구보다 훨씬 어렵고 지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15개 챕터다. 챕터마다 로빙슛, 오버래핑, 오프더볼 같은 축구용어가 붙었는데 그 용어들이 에피소드의 주제와 잘 연결돼 재미있었다.

=연재를 하기 전에 썼던 일기 형식이 그랬다. 날짜, 오늘 배운 것,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순서대로 썼다. 하프타임 때 상대팀 남자 선수들로부터 ‘맨스플레인’을 당한 혼비의 ‘선(수)출(신)’ 동료가 후반전에 호쾌한 로빙슛을 쓴 일화를 다룬 ‘로빙슛: 맨스플레인 VS 우먼스플레이’ 챕터는 마법 같은 상황이 로빙슛이라는 용어와 하나의 운율처럼 맞아떨어졌다. 그외 나머지 챕터는 에피소드에 어울릴 만한 축구용어를 가져다 썼다.

-축구를 직접 해보니 축구 시합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졌나.

=남다른 운동신경 덕분에 운동을 빨리 배우는 편이다. 그런데 살면서 도전했던 운동 중에서 축구가 가장 실력이 안 늘었다. 내가 음치, 박치라 음악에 소질이 없는 편인데 그게 축구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움직이는 축구공에 몸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게 축구인데,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축구공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더라. 그래서 축구를 시작한 뒤 시야가 넓어졌다고 얘기하는 보통 사람과 달리 축구장에 가면 선수들이 축구공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는 움직임이 먼저 보이더라. 그게 감동적이었다. 또, 축구를 한 뒤로 예전보다 선수들을 덜 욕하게 됐다. 동시에 상대 선수가 부상 입을 걸 알면서도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눈에 보이면서 그들을 싫어하게 됐다.

-축구하는 여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축구를 좋아하거나 축구하는 여자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은데.

=응원하고 있는 축구팀인 성남FC의 원정길을 따라가면 선수 부모님들을 만나곤 한다. 팬들도, 선수 부모님도 서로 얼굴을 잘 안다. 얼마 전에 한 선수 부모님이 “가정은 어떻게 하고 축구 보러 와도 되냐”고 묻더라. 내 아들을 응원해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걱정됐는지 슬쩍 물어보시는 거다. 그분은 정말 악의 없이 한 말인데, 남자가 그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주변에선 축구하는 걸 두고 이상하게 보는 경우는 없었나.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들 잘 아니까 대놓고 기분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종아리에 알이 밴 것 같아 축구를 그만해야겠다라든가,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팔에 무언가가 났다든가, 주름이 늘었다와 같은, 미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어떤가.

=남자한테 들을 땐 열받고, 여자한테 들을 땐 슬프다. 축구를 하고 있는 지금도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해’, ‘피부는 깨끗해야 해’ 같은 외모에 대한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인 FC 페니 팀과의 경쟁과 우정을 그린 일화들도 재미있더라. 시합할 때는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피치 밖에선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오버래핑: 어쩌자고 여기까지 어쩌다보니 그렇게까지’, ‘스로인: 양발을 땅에 붙이고 공을 던지면 경기는 계속된다’, ‘스토피지 타임: 축구팀에게는 꼭 이겨야만 하는 시합이 있다’ 등 3개 챕터 중에서 고민하는데 모두 FC 페니가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끈끈한 감정은 함께 운동하는 사람끼리만 알 수 있는 연대감 같다.

-닉 혼비에게 아스널이 있다면 김혼비에게는 성남FC가 있는데 정작 이 책엔 성남FC에 대한 얘기가 없다. 이유가 뭔가.

=스포트라이트를 여자 축구에 몰아주고 싶었다. 가끔 축구 규칙을 설명하다가 끌어오는 레퍼런스들이 어쩔 수 없이 남자 축구 선수들이다. 내가 성남FC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 책에까지 남자 축구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또, 한국 여자 프로축구인 WK리그의 팬이기도 하고, 현대제철 시합을 열심히 챙겨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팀 서포터를 하고 싶은데 WK리그는 월요일 저녁에 시합이 있어서 회사를 다니며 원정 경기까지 따라다니기 쉽지 않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본업은 뭔가.

=평범한 회사원이다. (웃음)

-포지션은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 맡았던 풀백 그대로인가.

=그렇다. 아직 그렇게 잘하진 못한다.

-풀백 포지션에서 좋아하는 선수가 있나.

=오래전 선수인데 리버풀 시절의 디르크 카위트를 좋아한다. 성실하고 전술적 활용도가 높지만 전문 풀백이 아니라 애매한 선수였다. 나는 애매한 선수나 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애매함이 귀엽잖나. 게리 네빌 같은 전문 풀백 선수를 대야 정답인데 말이다. (웃음)

-축구팀 동료들은 책을 봤나. 반응이 어떤가.

=동료들은 연재 당시에 이미 다 봤다. 책 출간까지 1년 가까이 걸린 까닭에 대체 책이 언제 나오냐고 원성이 자자했지만 막상 책이 출간되자 ‘드디어 나왔네’ 하고 끝이다. (웃음)

-언제까지 축구를 할 생각인가.

=항상 크게 부상당하는 날이 마지막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 말을 들은 같은 팀 언니들은 ‘나도 너처럼 3년차일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다치면 재활하고 다시 합류하게 될 거야’라고 얘기하더라. 어쨌거나 크게 부상당하는 날 미련 없이 그만둘 거다. (웃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지음 / 민음사 펴냄

축구를 열렬히 좋아하지만 공을 한번도 차본 적 없는 김혼비가 축구팀에 들어가 3년 동안 겪은 일을 담아낸 에세이다. 한국에서 여성이 축구를 할 때 느끼는 애환, 라이벌팀 선수들과의 경쟁과 우정, 축구 선수로서의 성장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꽤 재미있다. 특히 해박한 축구 지식을 활용한 유머 때문에 배꼽이 빠질 만큼 웃긴다. 동시에 축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울컥하는 순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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