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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종합예술인 노회찬을 추모하며
주성철 2018-07-27

“예술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고 굳건히 믿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자 시대적 의무이다.” 지난 2008년 <씨네21>과 서울아트시네마가 함께했던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에 145번째로 참여한 당시 진보신당 상임대표 노회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상업적’이라는 말이 고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산업적 가치를 입증하지 않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공적인 비용을 지불하여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국가만큼 이 일을 잘해낼 수 있는 체계는 없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라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팔길이 원칙’까지 이야기했다. 그처럼 그는 ‘선거철’이 아닌 때에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하나였다. 또 노회찬 의원은 이듬해인 2009년, 넓게는 체육인과 정치인까지 망라하여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문화예술인들의 대화를 주선했던 <씨네21> ‘talk show' 지면에서 장항준 감독과 만난 적 있다. 한 할머니(마리안 페이스풀)의 인생 역전을 그린 <이리나 팜>(2007)을 재밌게 봤다며 ’할리우드영화보다 제3세계 영화를 즐겨 본다‘는 그는 영락없는 영화광이었다. 그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과 추모 기사는 김성훈 기자가 쓴 이번호 국내뉴스(14쪽)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장국영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1956년생 남자 노회찬이 세상을 떴다. 우연히 검색하다보니 영화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내가 썼던 ‘에디토리얼’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돌이켜보니,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비롯해 최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출연한 모든 시청각 방송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들었으며, 또한 내가 그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던 모든 선거에서 그를 찍었던 것 같다(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표를 분산시킨다며 욕도 제법 먹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즈음 그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기억도 뇌리에 선하다.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예술의 종착역으로서의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으니, 정치를 안 했으면 영화를 했을지도 모르죠”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말발’도 좋아했지만 ‘글발’도 좋아했다. 정치인들이 으레 홍보 차원에서 대리 필자를 두어 펴내는 책과 달리 그는 직접 쓴 글을 정성스레 모은 <힘내라 진달래>로 제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3년 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썼던 ‘일기’를 모은 <힘내라 진달래>는, 당시 ‘한국 정치 최대의 히트 상품’이라 불렸던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일어나기 전인 1월 5일부터 3월 30일까지 쓴 노회찬의 선거 일지 혹은 ‘실록’이라 할 수 있다. 실록 얘기를 하자면,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개정 전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도 빼놓을 수 없다. ‘세종대왕의 두 번째 며느리는 레즈비언이었다’, ‘최초의 직장 여성-의녀와 여형사 다모’, ‘조선시대에는 남편도 육아 휴가를 받았다’, ‘귀걸이를 한 남자들’, ‘조선시대에 공무원은 결근하면 곤장을 맞았다’ 등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던 그의 성소수자, 성평등 정책은 물론 국회의원 세비, 특활비에 대한 최근의 신념까지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역사를 그 특유의 관점과 유머로 풀어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문득 <힘내라 진달래>의 한 구절이 내내 맴돈다. “상식은 끝내 통하기 마련이고 진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달되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기다릴 시간을 주지 않고 떠나버린 그의 진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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