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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하 감독 <천황군대는 진군한다> 다큐멘터리는 인간에서 시작한다
이일하(영화감독) 2018-08-21

감독 하라 가즈오 / 출연 오쿠자키 겐조 / 제작연도 1987년

“만약 그 장면을 못 찍었다면, 너는 주인공에게 다시 부탁할 거냐?”라는 질문에 나는 “예”라고 대답했고, 그는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면접시험에 합격해 하라 가즈오 교수님과 박사과정의 다큐멘터리 연구를 하게 되었다. 16mm 아리플렉스의 강철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하라 가즈오 감독의 <천황군대는 진군한다>는 몇번을 다시 보아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영화, 에너지가 뼛속까지 진군하는 영화다. 원제인 <유키유키테 신군>을 직역하면 ‘가자 가자 신군(神軍)’쯤 된다. 신군은 천황의 군대가 아니다. 주인공 오쿠자키의 1인 군대다. 그의 자동차에는 신군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그러므로 ‘유키유키테 신군’이라 쓰고 ‘신의 군대가 천황의 군대를 심판한다’라고 읽을 수 있겠다.

2차 세계대전 말, 파푸아뉴기니에 주둔 중인 일본군. 연합군은 반경 4km 내로 일본군을 포위했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했다. 오쿠자키는 이 지역에 파견된 병사였다. 일본군은 자국 병사 2명을 처형했다. 수십년이 지난 후 오쿠자키는 병사 2명의 처형을 집행했던 상관들을 심판하러 찾아나선다. 지옥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오쿠자키를 공손하게 맞이하지만, 지옥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니 “망자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며 더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오쿠자키는 행동에 나선다. 총살 당시 처형자의 일원이었던 한 노인은 이제 막 수술을 끝낸 직후라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오쿠자키는 그가 “모두를 위해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하자 구둣발로 그를 폭행한다. 또한 그는 처형을 지시했던 지휘관을 찾아가 총을 발포한다. 하지만 결국 지휘관의 아들이 총상을 입는다. 영화의 라스트컷. “오쿠자키는 살인 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는 짤막한 자막과 함께 오쿠자키가 정지화면으로 등장한다. 손을 들어 마치 선서를 하는 듯한 모양새인데, 그의 약손가락은 없다. 그리고 다이코(일본 대북) 소리가 행진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오쿠자키를 추적한다. 바싹 마른 사막처럼 건조한 자세로 필름을 노출시킨다. 하라 감독은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고 있던 중,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게 오쿠자키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인물과 과연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영화에도 나오듯 오쿠자키는 자기애와 신념, 그 자체인 인물이다. “천황을 향해 쇠구슬을 발사했다”, “천황의 사진을 합성해 포르노를 만들어 도쿄의 백화점 옥상에서 살포했다”고 몇번이고 말한다. “오쿠자키는 사실 전쟁, 인육 등에 별 관심이 없었어. 어떻게든 자신을 찍어주길 원했어.” 하라 감독의 얘기다. 영화에서 오쿠자키는 부대원을 때리려고 달려들지만 반대로 제압당했고, 카메라를 향해 “내가 맞고 있는 장면을 찍지 마”라고 소리친다. 하라 감독의 카메라는 아무런 미동없이 그 상황을 촬영했고 편집에도 반영했다. 사실 이 장면을 찍은 후에 오쿠자키는 “내가 맞고 있는데 그렇게 평온하게 촬영하는 사람과는 같이 행동할 수 없다. 카메라맨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최악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다. 주인공이 바보같이 맞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이 좋아할 것 같아?”라며 영화 촬영을 그만둔다. 그 후에 오쿠자키는 마음을 바꿔 촬영을 재개했고, 또 다른 트러블로 모든 필름을 불살라버리겠다고 하라 감독에게 선포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결국 인간을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현실 안으로 육중한 카메라를 집어넣고 피사체와 카메라간의 화학작용, 그리고 카메라와 감독간의 화학작용이 응축되고 폭발할 때 인간의 어떠한 것을 끄집어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좋은 작품이 빚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어떤 사람에게는 반전영화가 되겠지만 내겐 ‘인간의 광기’에 맞선 영화다.

이일하 다큐멘터리 감독. 2000년에 일본에 건너가 다큐멘터리를 공부했고, 일본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울보 권투부>(2014), <카운터스>(2017)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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