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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스탭 노동 처우, 개선의 움직임은…
임수연 2018-11-02

영화제 고용 불안정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SNS상에서 급속도로 확산된 영화제 스탭 노동 처우 현실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10월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기자회견 ‘부산국제영화제 체불임금 지급 촉구 및 영화제 스탭 노동실태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쪼개기 계약·공짜 야근·시간외수당 미지급 등의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다. 서울독립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인천다큐멘터리포트 등에서 5년 정도 스탭으로 일했던 조정의민씨와 9월부터 영화제 스탭 노동실태 제보센터를 운영해온 나현우 기획팀장을 10월 26일 만났다. 조정의민씨는 9월부터 청년유니온에 영화제 스탭 노동 환경 현실을 제보하고 함께 문제를 논의한 장본인이다. 두 사람에게 제보자들의 목소리를 보다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지적된 것은 ‘쪼개기 계약’이다. 조정의민씨는 “이전에 한 영화제에서 2년 동안 일할 당시 8개월, 1.5개월, 11개월 이렇게 3번에 나눠서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나현우 팀장도 “서울시 경우도 9개월 이상 근무자는 상시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인원으로 보고 1년 이상 근로계약을 맺어 상용직으로 전환을 해주는데, 쪼개기 계약을 하면 상용직이 될 수 없다”고 부연했다. 또한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제의 경우 용역 계약서를 쓰고 일을 하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는 명백한 근로자인데 4대 보험 미가입에 시간외수당도 없고 최저임금 등 노동법도 적용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나현우 팀장)고 한다.

무엇보다 스탭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고용 불안정’ 문제다. 취업을 하자마자 바로 다음 일자리를 찾아보며 이력서를 쓰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조정의민씨는 “영화제에서 일하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짧고 짧은 경력들은 쌓여가는데, 앞으로의 비전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고민됐다고 말했다. “영화제 특성상 12개월 내내 일을 하는 정규직 채용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전망을 갖고 계속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공적 자금을 갖고 운영하면서 이렇게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쪼개기 계약,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몇 개월씩 경력을 쌓다보면, 친구들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자리잡을 때쯤 우리에게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4대 보험 가입을 안 해주는 경우 경력으로도 인정 못 받는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영화제 일만 하다가 30대가 넘어가면 다른 곳에 신입으로 지원할 수도 없다. 영화제 일을 계속해왔으면 이력서를 쓸 만한 곳도 영화제밖에 없다”고 씁쓸한 현실을 언급했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에 영화제는 너무 좁은 세계다. 조정의민씨는 “무슨 영화제에서 무슨 일을 몇년 정도 한 사람이라고 하면 여기서는 누군지 다 안다. 정체가 드러나기가 굉장히 쉽다”고 설명한다. 다른 영화제에서 채용할 때 이번에 일한 스탭 중 괜찮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시적으로 이의 제기를 한 전적이 있다면 다른 영화제에서 껄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현우 팀장은 제보자들의 사례를 모아 보도자료를 만들 때 “개인 신상이 공개될까봐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고 평균 수치만 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조직위원장이나 이사장으로 있는 영화제의 경우 대체로 관련 규정이나 예산안을 쥐고 있는 주체는 시·도 지자체다. 때문에 이번 같은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현우 팀장은 “개막을 선언하고 행사에 참석하는 것 외에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최소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계약 기간은 보장해주고, 기간을 늘린 만큼 영화제 기간에 집중됐던 일을 분산시켜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9개월 이상 고용해왔던 인원들은 정규직화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고, 직업 훈련이나 교육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청년유니온 같은 범노동조합이 제보센터나 신문고의 형태로 이슈를 이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들이 계속 내부 고발자처럼 정체를 숨기면서 제보를 할 수는 없다. 내부에서 직접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꼭 어떤 노동조합이 아니어도 여러 영화제 스탭들이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갖게 되면 정보를 공유하면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부산, 전주, 부천 등 3대 국제 영화제 사무국장들은 모두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김광국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장은 “영화제 스탭들에게 시간외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고, 더불어 직원들도 일정 부분 열정페이라고 느낄 만한 수준의 급여를 받은 상황이었다. 내년 예산에 미리 이 부분을 반영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개선하려고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라고 현 상황을 전달했다. 또한 “외부적으로 영화제 정상화에 대한 부분은 관객이 인식할 것이고, 내부적 조직 운영에 대한 개선도 정상화의 한 방법이라고 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니 지켜봐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화정 부산시 문화체육관광국 영상콘텐츠산업과 주무관은 “임금 체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내년부터 예산에 반영해서 편성하도록 영화제에 전달했다. 전체 사업비가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인건비는 제대로 편성되도록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예산에서 인건비를 늘리면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다같이 노동 시스템을 연구하고, 시간외근무가 나오지 않도록 전문가를 채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하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근로조건보다는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영화제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직장 개념으로 가다 보니 사무국에서 고민할 때가 왔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부터 4대 보험 가입 같은 문제를 이번 기사가 뜨기 전에도 고민했었다”고 전했다. 내년에 인건비가 올라간다면 그만큼 전체 예산이 올라가고, 영화제는 시를 설득해야 한다. “전체 예산을 올릴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줄여야 한다. 행사를 줄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예전만큼 축제가 화려하지 않으면 관객수가 떨어져서 악순환이 이어진다. 안 쓰는 전기료를 아낀다든지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다.” 장성호 전주국제영화제 사무처장은 “사실 지난해에 영화제 스탭들이 페이를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어 올해 예산에 1억원 정도를 시간외수당 명목으로 지급했다. 팀별로 업무량이 상이한데 똑같이 임금이 지급된 것에 문제 제기가 있어서 내년에는 시간을 정확하게 책정하려고 한다”는 상황을 전달했다. 또한 “영화제끼리 모여서 5개월은 전주, 5개월은 부산 이런 식으로 1년에 10개월 정도는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집행위원장이 지나가는 말로 한 적이 있다. 물론 채용의 주체가 누가 되며, 한 영화제에서 인정한 스탭을 다른 곳에서도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긴 하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혹은 “특정 업체에서 아예 스탭 용역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이 영화제별로 계약해서 필요한 인원을 파견 근무시키면 그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을 역임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부관장은 아예 기본임금 상승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 단기 스탭에게 오히려 돈을 적게 주고 상근직일수록 근무 조건이 호전되는 상황이 있는데, 영화제 특성상 단기 스탭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면 그들의 인건비 상승을 특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문 인력이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영화제를 떠나지 않도록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제도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노사간 협의를 통해 유연근무제 같은 것을 도입할 수 있도록 검토가 필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나 영화제가 모여 함께 이 문제를 상의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도 냈다.

조정의민씨는 한 영화제의 프로그램팀장으로서 <씨네21>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개인의 역량, 희생에 기대 영화제를 운영할 수는 없잖나. 안정된 고용과 일한 만큼의 수익이 돌아온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노동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정책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그는 이제 더이상 영화제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한다. “영화제 하면 보통 레드카펫을 떠올리는데 누가 까는지는 잘 모른다. 레드카펫을 까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온전하게 즐거운 노동을 한다면 누가 몰라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런 노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드러나지 않으니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적어도 거기에 균열이라도 내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상화 원년을 선포한 2018년이, 모든 영화제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극복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청년유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