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울트라 폭소 히어로, 주성치 웃음공작실 탐방기
2002-04-25

“한번 웃으면 멈출 수 없어!” 희극지신 주성치를 만나다

홍콩은 더이상 아시아 관객을 흥분시키는 영화들의 본거지가 아니다. 메마른 액션과 공허한 특수효과, 설득력 없는 멜로, 강요하는 코미디만 남은 홍콩은 대륙과 동떨어져 무척 외로워보인다. 그러나 이 고적하고 좁은 땅을 웃음으로 지키는 유일한 영화인이 있다. 지난해 <소림축구>로 역대 흥행기록을 깨뜨리며 화려하게 복귀한 주성치. 지금 홍콩에서 1년 넘는 제작기간과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일 것이다. 그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주성치뿐일 것이다. 성공 앞에 외로워하고 있지만, 대형(大兄)으로서의 자각을 잃지 않고 있는 그를, 작고 소박하고 분주한 홍콩의 사무실에서 만나고 왔다. 편집자

4월이 막 시작됐을 뿐인데도 홍콩은 벌써 30도 가까운 열기 속에 익어가고 있었다. 지저분한 도로 바닥과 물기에 푹 젖은 대기는 묘한 향냄새를 뿜어냈고, 오가는 사람들은 짧은 소매 아래 시원하게 벗은 팔을 드러냈다. 이곳은 한기를 느낄 정도로 에어컨을 강하게 틀지 않으면 습기에 치여 제대로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덥기만 했는데, 주성치는 뜻밖에도 제법 두께가 있는 운동복 지퍼를 끝까지 올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미 누군가를 만나고, 또 다른 약속을 사무실에 잡아둔 그는, 긴 운동복을 입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나이 들고 말라 있었다. 흰머리가 눈에 띄도록 많았다. 그의 매니저는 그전 날 막 시장에 깔린 <소림축구> 만화책 3권을 들고 “만화 캐릭터는 모두 실제 배우를 닮았는데, 주성치만 실물보다 젊고 잘생기게 그렸다”고 농담을 했지만, 주성치의 영화사 성치해외유한공사 사무실은 아직까지도 맥을 이어가는 성공 때문에 들떠 있었지만, 정작 주성치는 지쳐보였다. 인터뷰를 하기 직전 이틀 동안 홍콩을 떠나 잠적했던 그는 “지금 홍콩을 보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고백했다.

눈물나는 웃음, 웃음 뒤의 눈물

그것은 홍콩으로 떠나기 전, 영화와 언론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주성치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그는 돈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며 운동을 좋아하는 쾌활한 남자처럼 보였다. 사실, 늘 메고 다닌다는 커다란 가방에서 격투기를 익힐 때 쓰는 납작한 글러브를 꺼내 시범을 보인 순간만은 다소 활기를 찾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만난 지 15년이 넘은 오랜 친구이자 주성치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오맹달이 낮은 어조로 들려준 이야기가 계속 맴돌았다. 오맹달은 “주성치는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집안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고 말했다.

근성 있고 고집 센 소년에게 그것이 어떤 짐이었을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 하나와 딸 셋이 있는 상태에서 이혼했고, 아이들은 가난하게 자랐다. 1962년생인 주성치는 TVB 방송사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사회자로 성공한 1983년에야 정말 돈이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스물한살의 이른 성공이었지만, 그때부터 다시 스무해가 지나간 지금까지도 그는 과거의 결핍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의 영화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주성치는 희(喜)와 비(悲)는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에서 비(悲)를 깨우쳤다. 희(喜)가 대부분이었을 나머지 세월 속에서도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과거의 상처 자국은, 역설적으로 주성치가 노인 같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영화이고 연출까지 직접 맡은 <식신>은 언제 정상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지만 헤어날 수 없는 바닥에서도 낙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최고의 요리사에서 아무리 “내가 바로 식신”이라 외쳐도 밥 한 그릇 얻어먹기 힘든 신세로까지 전락한다. 마치 당신의 악몽을 대변하는 듯하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인생의 고비에서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나이 먹은 이의 지혜를 전하며, “내 흰머리를 보라”고 근엄한 익살을 떨었다.

주성치 영화 중에서 가장 웃긴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소림축구>는 그런 점에서 하나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식신>이나 재능 없는 가엾은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 <희극지왕>처럼, 이 영화 역시 등장인물들에게 좀처럼 웃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때 절정의 무공을 구사하던 이들은 사회에 내려오고 나선 쓰레기처럼 발길에 채이며 나뒹군다. 이들에게 축구시합은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나선 결전이다. 웨스턴처럼 비장하다.

<소림축구>에서 큰사형을 연기한 중견 배우 황일비는 인터뷰 내내 온몸으로 코미디를 보여주던 와중에서도 이 대목에 이르러 어른다운 표정을 되찾았다. 그는 “<소림축구>를 평범한 코미디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황일비는 머리로 맥주병 깨는 묘기를 하며 연명하는 서글픈 무술 고수를 연기했는데, 그에 걸맞게 자주 비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홍콩은 오래 전부터 흔들리면서 가라앉고 있으며 관객은 무게를 상실한 코미디영화만 찾지만, 주성치의 코미디는 다른 영화와 다르다는 것이다. <소림축구>에 출연한 젊은 신인 배우들이 웃고 떠들며 촬영을 즐기고 있을 때, 수십년을 연기한 오맹달과 황일비는 한쪽 구석의 슬픈 기운을 감지했다.

주성치가 유독 <식신>의 인물들을 사랑하는 까닭도 이들과 비슷할 것이다. 그는 <식신>을 진정한 자신의 영화라고 부르면서 그 영화를 만들면서부터 막문위가 연기한 캐릭터 같은 인물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막문위가 연기한 인물은 시장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도 있지만 칼부림에 휘말려 얻은 상처 때문에 참고 봐주기 힘든 추녀가 된 요리사. 그는 “예쁘기만 하기보다 내면에 뭔가를 품은 인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정무문> <도학위룡> 등에서 주성치와 함께한 여배우 장민은 항상 학처럼 신비로운 미인이었지만, 이제 주성치 영화 속의 여인들은 마무리에 도달해서야 잠깐 미(美)를 드러낸다. 그들은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주성치는 나이를 먹으면서 빛과 어둠, 웃음과 눈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그에게 삶 혹은 영화란 뒤범벅된 감정 사이에서 이치나 체면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이소룡을 꿈꾼 코미디언

주성치를 아는 이들은 모두 그가 매우 총명하며 달변에 재담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광둥어로 ‘모 레이 타우’라고 불리는 코미디 연기 역시 그칠 줄 모르는 수다에 힘입은 바 크다. ‘모 레이 타우’를 영어로 번역한 단어는 ‘난센스 토크’. 주성치는 특유의 과장되고 엄숙한 말투에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은 허풍과 너스레를 섞어 수도 없이 홍콩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다. 이소룡이 좋아 연예계를 동경한 주성치에겐 그런 현실이 모순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도 처음엔 다른 배우들과 비슷한 포부를 안고 출발했다. 그 시절 연기를 하려는 대부분 젊은이들이 그랬듯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주성치는 TVB 방송사에 원서를 냈다. 처음엔 떨어졌지만, 대신 TVB에서 운영하는 연기 수업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성치는 양조위와 동급생으로 연기를 배우는 한편 밤에는 또 다른 연기 수업에 출석했고, 결국 1년 뒤엔 어린이 프로그램 사회자를 맡게 됐다. 말로 먹고살게 된 것이다. 영화를 할 때는 좀 다르게 가보려고도 했다. 그의 데뷔작 <벽력선봉>은 <첩혈쌍웅>에 출연한 배우 이수현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였다. 주성치는 이 영화로 금마장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곧 방향을 틀어 코미디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가 10년 가까이 유지한 연기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 계기는 왕정이 연출한 코미디영화 <도성>이었다. 주윤발의 <정전자>를 무자비하게 패러디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지배한 홍콩영화의 비장미가 일순에 증발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서두이기도 했다. 이어 주성치는 91년 고등학교에 위장 잠입한 경찰 이야기인 <도학위룡>으로 홍콩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세웠고 단순한 배우 이상의 영향력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서극을 필두로 한 일군의 영화인들이 정통 무협영화에 SFX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붐을 일으켰을 때, 주성치는 과감하게 무협을 코미디로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30년 전 만들어진 영화를 패러디 겸 리메이크한 <심사관>과 중국 뮤지컬을 영화화한 <당백호점추향>이 그중 수작이었다.

주성치에게 이 영화들이 의미 깊은 이유는 항상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던 소망이 그 자신의 손으로 실현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림축구>가 대사보다 액션의 비중이 높은 데 대해 “내 전작들은 대사가 많았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동세대 소년들처럼 이소룡을 동경했고 무술인이 되고 싶어했다.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는 동경을 버리지 못했다. “내 모든 영화에는 조금이라도 액션이 들어 있다”는 그의 말처럼, <당백호점추향>은 무공을 숨긴 천재화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코믹하면서도 정교한 액션을 선보인다. 주성치가 연기한 화가 당백호가 몇분 만에 대작 한편을 완성하는 장면은 수십년 동안 축적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홍콩 액션의 저력을 과시하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꿈을 좀더 근접한 형태로 완성하기 위해 주성치는 운동을 계속해왔다. 몇년 전만 해도 그리 능숙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는 킥복싱과 권투를 거쳐 자유 격투기를 연마하고 있다. 그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소림축구>는 주성치가 최초로 스턴트를 직접 해낸 영화. 머릿속에 자리한 이미지를 CG와 무술의 깜찍한 조화로 이루어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욕심까지 함께 성취한 것이다. 오래 간직한 정서가 알싸하고 소년 같은 무술인의 꿈이 귀여운 <소림축구>는 주성치 최대의 야심작이자 성공작이다.

젊음이 모이는 곳, 성치해외유한공사

홍콩 번화가의 큰길에서 약간 숨어 들어간 주성치의 영화사에 처음 들어서면, 주성치가 비장하게 흰 옷자락을 휘날리는 <식신>의 포스터가 정면으로 눈에 들어온다. 황금 콤비 주성치와 오맹달이 하나같이 최고의 영화로 꼽는 <식신>은 <희극지왕> <소림축구>와 함께 미국 영화사 미라맥스에 판권이 팔린 주성치의 영화 중 한편이다. 성치해외유한공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풍경이다.

사무실에 널려 있는 물건들이나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 역시 지금 홍콩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이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각각 5만부가 팔려나갔고 인터뷰 전날 3권이 나온 <소림축구> 만화책, 화이트 보드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다음 프로젝트의 시놉시스,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주성치에게 조언을 청하는 젊은 영화인들. 그 풍경은 활짝 열린 사무실 창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나뭇잎처럼 싱싱한 녹색으로 빛나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주성치는 영화를 하는 동안 내내, ‘팀’을 만드는 데 골몰해왔다. 방송사 동료로 만난 오맹달은 주성치가 “우리를 같은 영화에서 보는 것이 지겨워도 할 수 없다. 정 못 보겠으면 오맹달 말고 나만 봐 달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조연이다. <첫사랑>을 감독하기도 한 갈민휘는 주성치가 <행운일조룡>에서 주연 자리를 양보할 만큼 아끼는 후배고, 오군여는 매우 망가진 형태로 나타나는 주성치의 기묘한 경의를 얻어온 중견 여배우다. 장백지나 막문위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주성치는 자신이 발굴하기 전엔 누구도 이들을 큰 역에 캐스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자부했다. 그는 “내가 아니었다면 막문위와 장백지는 지금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왕국과도 같은 주성치의 팀이 막강한 까닭은 끊임없이 멤버를 갱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능력있는 인재들이 후진을 키우지 않은 채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실을 한탄했다. 그래서 그는 1년 가까이 <소림축구>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손보면서, 대륙과 홍콩 양쪽의 신인을 발굴했다. 이소룡 닮은 골키퍼 진국곤과 먹보 사제 역의 임자총은 모두 신인배우고 이 영화로 급속하게 인기를 얻었다. <소림축구> 처음과 끝에 잠깐 등장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여배우 이훼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웃음과 눈물, 액션으로 자기 세계를 완성하고 있는 주성치는 그 받침대로 젊음을 택한 것이다. 인구 700만명의 홍콩이 빈곤하다 해도, 성치해외유한공사 사무실은 그 얇은 층의 인력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회사의 다음 영화는 쿵푸를 소재로 한 영화. 주성치가 각본과 감독, 주연을 모두 맡을 이 영화는 <소림축구>로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주성치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외롭다는 고백이 평생을 갈 거라고 믿지 않으며, 한번 실패나 성공이 전부라고 믿지도 않는다. “될 때까지 웃기겠다”는 것만이 결코 변하지 않을 그의 신조다. 홍콩=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울트라 폭소 히어로, 주성치 웃음공작실 탐방기

▶ 주성치의 최대 영웅과 우리가 보지 못한 주성치 영화들

▶ 주성치는 어떻게 아시아를 사로잡았나

▶ 주성치 인터뷰

▶ <소림축구> 조연 4인이 털어놓는 우정과 웃음의 `<소림축구> 외전`

▶ <소림축구>의 부대효과

▶ 주성치의 친구·동료·스승, 배우 오맹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