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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상영회의 신기원,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에 다녀왔습니다
임수연 2018-12-06

이것은 새로운 영화 관람 형태가 될 것이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27주기였던 지난 11월 24일, 전국 CGV 및 메가박스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영화를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극장이 마련한 상영.-편집자.) 회차는 명절 연휴 KTX만큼 예매 전쟁이 치열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 회차가 ‘광란의 축제’가 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프레디 머큐리 기일이 일종의 ‘약속의 날’이 됐기 때문이다. 싱어롱의 인기에 힘입어 메가박스는 아예 24일 노래를 유도할 ‘프로 떼창러’를 미리 모집해 전국 메가박스 8개 지점 MX관에 8명씩 배치하는 이벤트까지 열었다. 유독 잘 노는 관객이 많이 모인다는 메가박스 코엑스 MX관과 CGV영등포 스크린X관은 별칭까지 생겼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맥스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실제 열렸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이름을 따서, 이들은 팬들에게 각각 ‘코블리’, ‘웸등포’라고 불린다. 24일 메가박스에서 오후 5~6시 영화를 관람한 관객에게는 스페셜 포스터도 배부했지만 안타깝게 기자는 그 표를 구하지 못했다. 눈물을 머금고 대신 ‘웸등포’ 취소 좌석이 풀릴 때마다 열심히 클릭했고, 이미 결제 중인 사람이 있다느니 하는 열 받는 문구와 싸워야 했다. 마침내 오후 상영 티켓을, 그것도 뒤에서 두 번째 줄로 어렵사리 구하는 쾌거를 이뤘다. 역시 직업 기자의 집념은 위대하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극장 안으로 막 들어갔을 때, 솔직히 말해서 실망스러웠다. 인터넷상의 요란한 후기가 과장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의 얼굴이 이보다 더 수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여기가 ‘웸등포’라고 했는데! 객석에서 영국 국기가 등장했다느니 사람들이 북을 치고 탬버린을 흔든다느니 하는 후기를 분명 보고 왔거늘 그런 돌발행동이 벌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은 퀸의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가 등장하는 ‘이십세기폭스’ 로고가 뜰 때였다. 데이비드 보위가 화면에 나오거나, 웸블리 스타디움에 가득 모인 관중을 비출 때는 드디어 탬버린 군단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퀸 멤버들이 싸우는 중에 <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멜로디가 처음 나올 때, 매니저였던 폴 프렌터와 헤어진 후 <Under Pressure>가 흘러나올 때, 제스처를 따라하기 좋은 <Fat Bottomed Girls> 공연 장면 등 사람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액션을 취하고 싶은 만큼 취했다. 물론 관객 참여형 노래 <We Will Rock You>가 나올 때는 모두가 발을 굴렀다.

싱어롱 상영이지만 오로지 노래에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영화를 통째로 암기한 관객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프레디 머큐리(래미 맬렉)가 “화난 도마뱀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거나 멤버들이 싸우다가 “커피머신은 안 돼”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반 박자 먼저 웃음이 터졌고, <Bohemian Rhapsody>는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의 기타 소리에서부터 환호하더니, 문제의 가사 “갈릴레오 피가로~”를 로저 테일러(벤 하디)가 녹음할 때 “Higher!” “How many more Galileo’s do you want?” “Who even is Galileo?” 같은 대사는 실시간으로 따라했다. 로저 테일러가 작곡한 <I’m in Love with My Car>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한 로저 테일러의 각종 트리비아까지 섭렵했다는 의미다.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은 <라이브 에이드> 시퀀스를 보기 위해 가는 거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 속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극장 맨 뒤로 올라가 놀 준비를 하던 일부 관객은 “앞줄도 빨리 일어나세요”를 외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그렇게 하나둘 관객이 일어나더니, 두 번째 곡인 <Radio Ga Ga>가 시작할 때는 극장에 모인 200명 관객이 모두 기립한 상태가 됐다. 야광봉, 탬버린, 심지어 어디선가 국악기 소리도 들려왔다. 각자 자리에서 막춤도 췄으며, ‘에-오’를 비롯한 프레디 머큐리의 모든 퍼포먼스에 웸블리 스타디움을 채운 관객과 똑같이 반응했다. <We Are the Champions>는 그야말로 화합의 장.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얼싸안고 노래를 하다 기차놀이까지 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처음이었다.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 <Don’t Stop Me Now >와 <The Show Must Go On>은 ‘싱어롱’ 상영회에서 앙코르에 해당한다. 영화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에-오’를 자체 소환하던 관객은 놀이가 끝나자 갑자기 서로 내외하며 처음의 수줍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싱어롱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열기를 띤 것은 아니다. 1주차에는 “‘싱어롱’을 하러 갔다가 ‘싱어론’(sing alone)을 했다”거나 “용기를 내어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어떤 아저씨에게 혼났다”라는 식의 후기가 더 많았다.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은 내용에 집중하느라 노래를 부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n차 관람을 하는 관객이 늘어나는 2주차부터는 반응이 확 달라졌다. 영화의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고, 어느 부분에서 웃고 반응해야 하는지 학습한 관객이 상영관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퀸의 노래가 폭발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주효했다. 팬덤형 애니메이션 극장영화의 ‘응원 상영’ 문화에서도 멤버별 야광봉을 모두 챙겨가서 손가락마다 낀다거나 애니메이션 속 인물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이는 극소수 마니아들의 문화다. 보통의 한국인은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오는 곡을 최소 3개 이상 알며, 싱어롱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도 훨씬 많아진다. 또한 싱어롱 문화의 폭발적인 인기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입소문에도 기여했다. 염현정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마케팅팀 차장은 “싱어롱 관객이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관객의 버즈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퀸을 아는 40, 50대 관객은 자발적으로 극장에 올 수 있지만, 20대 관객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지금은 20대 예매율이 가장 높다. 이들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이벤트 관람이 가져온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메가박스에 따르면 관람객 중 20대 31.6%, 30대 26.9%로 전체 관람객의 58.5%를 차지한다. 이는 최근 새로운 여가활동 트렌드 등이 겹치면서 2030세대가 극장을 덜 찾게 됐다는 업계의 분석과 대비된다.

넷플릭스가 극장 영화를 위협하고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보헤미안 랩소디>는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것이 ‘시네마’와 관련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염현정 차장은 “이 문화는 영화 관람보다는 콘서트를 즐기는 것에 가까운 문화 형태다. 극장 관람의 조금 다른 형태로 싱어롱이 만들어진 건데, 관객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 한편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에 힘입어 MBC는 12월 2일 늦은 밤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재방송을 결정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를 싱어롱으로 즐기려는 유형의 관객은, 이 방송 역시 평범하게 집에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상에는 이 방송을 호프집에 모여서 보지 않겠느냐는 식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극장이나 TV보다 유튜브를 좋아한다는 세대가 만든, 새로운 극장 영화 트렌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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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가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