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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장> 미키 데자키 감독 - 가짜뉴스는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9-07-25

“일본 아베 총리의 무역제재 조치로 도리어 <주전장>이 홍보된 것 같다.” <주전장>을 만든 미키 데자키 감독이 언론시사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주전장>은 현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문제적인지 드러내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역사 수정주의자들, 이들의 생각을 대변하며 미국에서 선전 활동을 하는 미국인들, 일본과 한국의 진보적 학자와 활동가들을 전방위적으로 만나 그들의 논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2세이며, <주전장>은 그의 첫 영화다.

-올해 4월 도쿄에서 <주전장>이 개봉했다.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이 거세다고.

=그들이 고소를 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력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데. 진짜로 폭력이 발생하면 극우세력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질 테고 영화는 더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불신과 의심을 조장해 영화를 깎아내리려 한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지금의 극우세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영화를 만든 나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있는데, 내가 다닌 대학원에 찾아가 졸업논문을 찾아보려 한 사람도 있고, 예전에 유튜브에 올린 코미디 영상 ‘일본 여학생들의 짜증나는 말들’을 두고 내가 마치 일본 여성을 싫어하고 차별하는 사람처럼 해석해 퍼뜨리기도 했다. 당시 ‘백인들의 짜증나는 말들’, ‘미국인들의 짜증나는 말들’ 같은 시리즈가 유튜브에서 유행했다. 내가 만든 것도 그런 유행을 따라 만든 영상이었다. 지금은 그 시리즈가 얼마나 바보같은 유머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영상을 내렸다. 내가 더이상 그런 유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건데 이를 두고 극우세력들은 영화 개봉 직전에 이 영상을 삭제했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력이 특이하다. 대학 프리메드 과정에서 생리학을 전공했고, 일본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고, 유튜버로 활동했고, 지금은 영화감독이다.

=대학에서 전공을 여러 번 바꿨다. 컴퓨터공학과 회계를 공부하다 대학 3학년 때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일본에 갔다. 그때까지는 돈을 벌어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데 관심이 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동안 내 삶을 돌아보게 됐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생리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명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다시 일본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고, 타이에서 1년 정도 승려로 수행했다.

-‘메다마 센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메다마는 눈알이라는 뜻인데.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만화 캐릭터 메다마 오야지로 핼러윈 코스튬을 한 적 있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하고 싶어 머리에 메다마 오야지 탈을 쓰고 방송했다. 거대한 메다마 탈을 쓰니 숨을 쉴 수가 없어 두 번째 방송부터 벗었다. (웃음)

-유튜브에서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뤘다가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그들이 왜 이토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감추려 하는지 궁금해져 <주전장>을 만들게 된 것으로 안다. 다큐멘터리의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작업을 시작했나.

=처음엔 순수한 다큐멘터리, 내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했다. 누군가는 일단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고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그건 정직하지 못한 방식 같았다. 결론을 먼저 내리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든지 다 들어보고 난 다음에 그걸 내 나름의 이야기로 엮어나가고 싶었다.

-얘기한 것처럼 <주전장>은 정반합의 논증 형식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려는 태도가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극우세력들은, 이 영화가 균형 잡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균형이라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왜 이건 넣었냐, 왜 이건 넣지 않았냐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양쪽의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 미친 영향이 있나.

=이점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한국, 일본, 미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정체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한국인이거나 일본인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미국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세계의 역사 관점을 바꾸려 한다. 현재 일본계 미국인 2, 3세대들, 젊은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데,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나와 인터뷰를 한 건 나를 이용해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꾸려 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해왔던 이들을 만날 땐 남자라는 것도 도움이 됐다. 한국 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의 경우 일본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크다. 내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확실히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라는 사실이 이 이슈를 시작부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실체와 그들의 큰 그림까지 파헤친다.

=여성, 인권, 역사, 정치 등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건 역사가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쓰여지는 현실이다. 어떻게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들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졌고, SNS를 요령 있게 잘 이용한다. 그렇게 신빙성이 떨어지고 전문성이 없는 이야기, 이른바 가짜뉴스들이 온라인과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정보 차가 크기 때문에 이 영화를 접하는 양국 관객의 반응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일본 관객 중엔 진보적 학자들의 의견을 듣고 놀라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주요 미디어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의견을 지배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를 알게 돼서 놀랐다는 감상도 있다. 서로의 논리를 앎으로써 한일 양국간 더 나은 이해가 생기길 바랐고,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도 사라지길 바랐다. 상대방이 이유 없이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 상대에 대한 반발심은 커지게 되어 있다. 그걸 논리적 차원에서 이해하면 적대감과 증오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 영화로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정한 건 없는데, 일본의 정치사회와 관련한 이슈가 될 것 같다. 지금으로선 한일 역사 인식의 차이와 관계된 문제에선 좀 떨어져 지내고 싶다. (웃음)

-지금 생활의 기반은 미국인가, 일본인가.

=잠시 일본에 주차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6개월 뒤엔 또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다시 절에 들어갈 수도 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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