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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출간한 소설가 박상영, "소설의 코어 중 하나가 공간이라고 믿는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19-08-12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의 표지는 2종으로 제작되었다. 자동차 일러스트가 있는 표지는 나가이 히로시의 시티팝 음반 커버 일러스트를 사용했고, 껴안은 남자들 일러스트 표지는 전나환 작가가 올랜도 총기난사사건 때 기부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포스터 <Pray for Orlando>를 썼다. 두 이미지 모두 박상영 작가가 골라 편집부에 보낸 것들이다. <슬픔과 눈물의 투움바 파스타>를 비롯한 수많은 2차 창작 제목을 보유했던 전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교훈을 떠올려 단편들의 제목 역시 미리 표제작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 쓰는 단계에서부터 네편의 소설이 한권으로 묶일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는 점까지, 박상영의 아이디어대로 구현된 책이 <대도시의 사랑법>인 셈이다. 진지하다가, 웃기다가, 울적해지는 영과 그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박상영은 사랑하는 대도시방콕과 상하이, 무엇보다 서울에 바친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어떤 소설을 가장 좋아하나.

=나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제일 좋아하는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구나 하는 걸 많이 느낀다. 다들 답이 달라서 신기하다. <재희>가 가장 좋다는 분들도 있고,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 좋다는 분들이 제일 많은 것 같고, 퀴어 당사자 분들은 <대도시의 사랑법>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동료 작가들은 마지막 작품(<늦은 우기의 바캉스>)을 제일 좋아하더라. 글쓰기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라서 그런지.

-청탁도 많이 쌓여 있을 듯한데.

=등단하고 3년 동안 책 두권 내는 게 정상적인 스케줄은 아니라고 느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은 32년간 쌓아온 삶에서 가져다 쓴 것들이었다. 새로 쌓기도 해야 하는데 떠밀리다시피 여기까지 온 느낌도 있어서 중심을 못잡는 듯하다. 지난 6개월간 <대도시의 사랑법>을 내는 게 생활의 한 축이었고 다른 한축은 요양, 재활이었다. 요즘 운동은 매일 한다. 황정은 작가 말이 “작가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 있다면 척추기립근이다”라고 하더라. “등근육의 힘으로 쓴다”고. 나도 몇년간 새벽에 글쓰고 회사도 다니면서 허리와 등이 다 고장났다. 그걸 복구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중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자학적이고 우울한 화자가 시니컬한 말을 하는데, 제자리걸음하는 느낌이 없다. 사랑 이야기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문학이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를 두고 전에 없이 고민이 많은 시대가 되었다. 이성애의 경우, 폭력을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사랑 이야기를 많이 쓰는 이유가 있을까.

=20대 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 86세대 명사가 강연을 할 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식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나는 의존적인 성격이기도 해서 20대 동안 열렬한 연애를 많이 이어갔고, 글을 통해 사랑, 연애라는 관념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성숙하기 위해 연애를 한다는데 실제로는 그냥 소진되고 사라지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소진해버리는 느낌이 주는 매혹도 있다.

=원래 성격이 비관적이고 우울한 편이다. 순간에 충실하려고 했고. 작가로 데뷔한 게 29살 때였고 그때까지는 연애를 쉰 적이 없었다. 데뷔한 뒤로는 연애 사건이 완벽하게 끝났다. 그 이전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를 쓰기도 했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진짜 좋아서 그렇게 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를 성찰하고 돌아보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 나보다 나이 어린 독자들이 내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사랑 이야기라서뿐 아니라 그런 느낌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아서인 듯하다. 꿈꾸는 게 많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게 없더라도 버티는 게 삶이더라.

-그래서 계속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시켜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인상도 받았다. 소설을 읽고 나서 박상영 작가를 친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듯하다. 자전적 성격이 들어간 소설이라.

=나는 사교성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겁이 많고 사람을 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형이다. 그런데 글에 나타난 나라는 사람을 보고 쉽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 그럴 때가 불쾌하다. 나를 기성세대와 대비되는 젊음이라는 코드로 소비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희극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우울한 서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외피만이 소비되는 듯해서. 피드백이 쌓이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느낀다. 퀴어 당사자 분들이 “내 현실 연애 같다”고 해주실 때는 좋다.

-‘대도시의 사랑법’인 동시에 ‘서울의 청춘 지리학’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서울 곳곳에서 공간의 개성을 잘 살린 이야기가 생동감 있다. 생활감이 강해서 좋았다. 당신에게 서울이란 어떤 곳인가.

= 10대 때는 서울이 내게 이데아였다. 고향(박상영 작가는 대구 출신이다.-편집자)이 갖고 있는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서울 지리를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캐릭터만큼이나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코어 중 하나가 공간이라고 믿어서 공간 세팅에 신경을 많이 쓴다. 12~13년간 내가 느꼈던 공간들의 특색을 실어서 옆집 이야기처럼 읽히기를 바라고 썼다.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갔다”(<대도시의 사랑법>)는 문장을 좋아하는데 서울의 데이트가 진짜 그렇기 때문이었다. 어디 좋다고 하면 거기 갔다가, 넘쳐나는 인파를 보면서 다시 오지 말자 그랬다가. 방콕과 상하이는, 방콕이 갖는 아시아의 성소수자들의 성지라는 느낌이 있잖나. 불교문화가 주는 너그러움도 있고. 그런 것들을 최대한 잘 보여주고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감각으로 느끼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

-다음 작품으로 염두에 둔 것이 있나.

=누가 나에게 ‘사회파 퀴어소설’이라고 하던데. (웃음) 그게 맞는 거 같다. 내면 얘기만 쓰면 재미가 없다. 다음 소설은 장편이 될 예정인데 IMF 외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이전이나 이후 세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의 프리퀄 느낌으로. 꼭 내 얘기는 아니겠지만 경험담을 많이 섞어서 정치적인 얘기를 써보고 싶다.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작가가 됐고.

-향후 계획은.

=내 문학의 본령은 추리소설이다. 그걸 잘 쓸 자신이 없어서 못 쓰고 있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 온다 리쿠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명작도 좋지만 <끝없는 밤>을 비롯해 어딘가 핀이 나간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소설을 꼭 써보고 싶다. 지도교수가 이장욱 선생님이었는데, 내 작품을 ‘질병과 광기의 문학’이라고 했다. 병리학적으로 미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웃음) 모든 사람들이 다 핀이 나가 있는. 나부터가 그렇다. 괴짜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쓰는, 멋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속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대도시의 사랑법>

‘영’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주인공인 네편의 사랑 이야기. <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편이 실렸고, (주인공처럼 이름에 ‘영’이 들어가는) 박상영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앞의 두편과 뒤의 두편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상한 것을 쪼개 집필하고 발표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방콕까지, 영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시를 새롭게 알아간다. “이렇게 불을 끄고 방에 있으니까요. 우주에 우리 둘만 남겨져 있는 기분이에요.” 이 말에 ‘웃었다’ ‘폭소했다’ ‘멋쩍어했다’도 없이 영이 “아, 형, 제발요”라고 응수하는 순간, ‘웃긴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죽이고 어딘가에 묻어버린 옛사랑의 기억이 현재형으로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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