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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심보선(시인) 일러스트레이션 다나(일러스트레이션) 2019-10-23

과거 영화에서 범죄자들의 범법 행위는 그들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정당화되곤 했다. 예컨대 영화 <오발탄>에서 삶의 희망을 박탈당한 주인공에게 은행털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관객이 범죄자들에게 감정이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무고한 시민을 해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불가피하게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결국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 언제부턴가 미국영화에서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미치광이들이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연쇄살인마 자체가 아니라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재능을 찬미한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가 사이코패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겠는가. 그런데 최근 개봉한 <조커>의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보다 적극적이다. 사람들은 주인공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에게 감탄한다. 하지만 관객은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그 동일시가 과해서 그런가? 영화 <조커>에 대한 비난은 윤리적 색채를 띤다. 한 영화평론가는 “윤리적 기만”이라는 표현을 썼고 미국에서는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가 일기도 했다. 과장하자면 경찰이 평론가와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나는 총으로 관객을 보호할 테니 당신은 펜으로 그렇게 해주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와 동일시라.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나부터 솔직해보겠다. 나는 예전에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았을 때 영화가 군중의 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고 속으로 ‘민중을 뭘로 아는 거야?’라는 불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군중 폭동 장면을 보고는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커의 복수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짜릿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객도 마찬가지리라. 관객은 영화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윤리적 거리를 유지한다. 다만 영화가 드러내는 세상, 불평등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조커에 대한 동일시는 세상에 대한 반감에 비례한다. 세상은 분명 부정의하다. 더 분명한 것은 그 부정의를 교정할 방법 또한 없다는 것이다.

짐작건대 영화 <조커>를 호평하는 관객은 나를 포함해 상당수 우울한 이들로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좋은 세상과 비참한 현실의 거리가 좁혀질 수 없다는 어두운 인식이 우울함의 뿌리이다. 우울한 사람이 다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윤리적인 사람은 우울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조커처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지만 조커처럼 질문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야?” 이것이 과연 망상에서 비롯된 질문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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