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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이 재현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
김소미 2020-06-03

'잘 만든' 가학성의 위력

온라인상에서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을 말할 때 자주 발견되는 표현은 ‘사이다 전개’ 그리고 ‘마라맛’이다. 마라맛은 강하고 자극적인 막장의 ‘매운맛’에서 진화해 어딘가 고급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감상을 맛에 비유하기 시작한 것은 말초적인 자극에 익숙해진 요즘의 창작-소비의 형태를 표상한다. 하이라이트 구간을 인터넷 클립이나 밈으로 흡수하기 좋은 상황에서 화제성을 노리는 드라마들은 이 맛의 지표에 의거한 채 폭력과 가학에 둔감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의 하이퍼리얼리즘을 내건 두편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을 보면서 캐릭터 재현과 폭력 묘사에 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싶어진 이유다. 여기에 한국 막장 드라마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지는 것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적 부의 묘사, 여성을 향한 멸시 등이 버무려지면 사방에서 폭죽처럼 불편함이 터져나온다. 여기저기, 해로운 것을 장르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가 넘쳐난다.

새로운 막장이라는 함정

<부부의 세계>에서 데이트폭력을 일삼던 박인규(이학주)가 늦은 밤 지선우(김희애)의 집에 난입한 장면은 느닷없이 1인칭 가상현실(VR) 체험을 방불케 하는 시점숏으로 전환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온갖 사고와 복수를 컨벤션으로 삼는 막장 드라마에 윤리적 척도를 들이대는 건 얼마간 무용한 일이다. 차라리 작품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풍토, 중년 여성을 주 시청자로 상정한 드라마가 비스듬히 흡수한 페미니즘적 변용을 살펴보는 것이 합당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TV드라마에 만연한 여성 수난기의 일부로 치부하기 힘들 정도로 <부부의 세계>는 여성을 처벌하고 가해하는 장면을 과하게 전시한다. 그래서 지선우의 이미지를 가해자의 시점으로 재현하면서까지 노린 효과를 구태여 따져보려 한다. 우선 배우 김희애의 표정을 생생히 마주하게 만들면서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이 경우는 비판 또한 쉽다. 원초적인 자극만을 추구한 나머지 미학적으로도 실패했다고 덧붙일 수 있다. 두 번째의 더 우려스러운 효과는 가해자 시점의 쾌락을 훔쳐보는 관음의 발생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여서 더 치졸하고 섬뜩하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묻지마살인 등 여성이 취약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회는 사건을 지탄하는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에 이입한 서술을 일삼지 않았던가. 맥락 없이 전환되는 박인규의 시점숏과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은 어떻게 다른가. 여기엔 어떤 유효한 기능도 의도도 없다. 그것은 불쑥 튀어나온 시선의 습관이고, 검열의 부재다.

<부부의 세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는 잘 알려진 대로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병원 부원장인 지선우가 한국 불륜 드라마에서는 드물게 처음부터 남편보다 유능한 여성이었다는 점에 있다. 가부장제 코르셋은 여전하되 잘난 전문직 여성의 등판, 찌질한 남성성의 부각이 새로운 쾌감과 리얼리티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부부의 세계>의 결정적 속임수이자 함정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드라마는 지선우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의 위치에 올려둔 뒤,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 과도하고 맹목적인 괴롭힘을 퍼붓는다. 학대받는 지선우는 물론이고 성공한 지선우 또한 애초부터 철저히 대상화된 존재다. <부부의 세계>가 안기는 스트레스는, 불쾌한 이미지와 긴장감 같은 표면적 차원이 아니라 지선우처럼 성공한 여자도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교묘한 공포심 유발에 근거한다. 또 지선우가 비장한 얼굴로 변호사 사무실의 창가에 서서 이태오(박해준)의 폭행으로 피멍이 든 얼굴을 드러낼 때, 괴한의 침입이 있던 다음날에도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범인 찾기에 몰두할 때, 거기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트라우마나 고통의 징후가 거세돼 있다. 누아르 장르에서 신체적 손상을 입은 남성 캐릭터를 건조하게 묘사할 때, 그 이면에는 주인공의 액션에 기반한 대등한 폭력이 있다. 그러나 여성을 향한 일방적 폭행이 있었을 뿐인 <부부의 세계>는 사후적인 리액션 없이 그저 지선우를 열차에 태워 다음 행선지로 보낸다.

구조적 문제는 사라지고 잔인한 묘사만이

한편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은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n번방 사건의 가해자를 연상시키는 인물에게 작품 전체를 내어준다. 10대 남성주인공 오지수(김동희)는 성매매 앱을 개발해 얼굴 없는 포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실재하는 사회의 암부를 담아냄으로써, 문제를 알리고 경각심을 고취하겠다는 제작진의 논리는 명확하다. 그러나 이 사회고발을 향한 ‘진정성’에는 재현과 묘사의 권력에 대한 착오가 있다. 지금 내가 논의해보고 싶은 것은 재현 자체를 거부해야만 하는 대상도 있는가 하는 문제다. 모든 스토리는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자는 언제나 자신의 스토리부터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도 범죄자가 ‘박사’로, ‘평소에는 내성적이고 성실했던 인물’로 불리는 일이 쉽고 빈번하다. <인간수업>의 오지수는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책임감도 부족한 자신의 아버지를 극복하려 하고, 학교는 그를 모범생이라 부른다.

여성을 가학적으로 고문하는 변태 성욕자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10대 서민희(정다빈)가 온몸이 묶인 채 재갈을 물고 공포에 떠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노출된다. 이윽고 여자를 구하러 달려오는 이는 어렵게 용기를 낸 포주 오지수다. 역할 갈등에 시달리는 미숙한 범죄자이자, 자신보다 약자를 구해내는 구출자로서 오지수는 그렇게 완벽한 서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실패한 아버지, 평범함을 꿈꾸며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 앱으로 청소년을 불러내 고문하는 변태, 돈 많은 마담 애인에게 기생하면서 살인마 ‘덱스터’를 흉내내는 철없는 조폭, 참전 후 뒷골목의 삶을 사는 중년의 왕철(최민수)까지. <인간수업>이 공들이는 것은 범죄, 로맨스, 코미디, 액션을 오가며 남성 캐릭터를 장르적으로 낭만화하는 것이지 애초의 포부처럼 그들의 실제와 이해, 혹은 시스템의 탐구가 아니다. 만약 10대 포주를 반영웅으로 묘사한 장르물을 만들어야 했다면, <인간수업>은 차라리 무능한 아버지와 가난이라는 가부장제의 자격 미달적 요소와 싸우는 오지수가 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하필이면 여성을 착취하는 일을 택했는지 그 구조의 본질을 건져 올렸어야 했다. 엔딩에서 인물들에게 기계적 단죄를 배치하지만, 10부를 거치면서 이미 감정에 도취된 드라마는 주인공을 응징한다는 교훈을 낳기도 전에 비장미 가득한 화면부터 앞세운다.

보여주지 않아도 아는 것과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것, 흥미를 위해 용인되는 수준과 그렇지 않은 것은 과연 존재하나. 재현할 수 있는 인물과 묘사의 수위는 어떻게 도출할 수 있나. 거기에 정답이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예술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일까. <부부의 세계>는 여성의 현실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를 얕본 채, <인간수업>은 재현의 대상을 택하는 당위를 설득하지 못한 채 폭력에 몰두하느라 ‘잘 만든’ 찜찜함을 남겼다. 잔뜩 매운 가학과 착취의 잔상을 지우려면, 이제 다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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