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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자 김소형 감독 - 퍽퍽한 삶에도 희망은 있다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0-07-16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희극지왕(코미디), 절대악몽(공포, 판타지), 4만번의 구타(액션,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장르를 나눠 프로그래밍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올해로 19회째를 맞았다. 이번에는 부문별 최우수작품상 수상작만 선정되고 대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편의 영화를 출품해 여러 차례 단상에 오르며 관객에게 각인된 감독이 있다. 한국인 할머니와 일본인 손녀의 첫 만남을 담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작품상, 일하는 시간이 달라 마음도 엇갈리는 연인을 그린 비정성시 부문 <우리의 낮과 밤>으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김소형 감독이다. <우리의 낮과 밤>은 김우겸 배우에게 연기상을 안기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김우겸 배우와 짝을 이뤄 연기도 선보인 김소형 감독과 수상작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7월 1일 막을 내린 제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영화제를 마무리한 소감을 듣고 싶다.

=얼떨떨하고 붕 뜬 기분으로 며칠을 지냈다.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이번 영화제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감독으로서 어떤 경험이었나.

=새로운 방식 덕에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본 것 같아 감사하다. 하지만 온라인 상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영화제와 감독간 소통이 잘 안된 부분도 있었다. 배급사들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 영화제 자체가 과도기라는 걸 느꼈다. 앞으로 감독으로서 내 작품의 상영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싶더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졸업작품이기도 한 <우리의 낮과 밤>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일하는 시간이 달라 함께하기 어려운 연인인 우철(김우겸)과 지영(김소형)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성인이 된 후로 쭉 일을 했는데도 계속 돈이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푹 자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건강히 살 수 있었으니까. 일을 해도 돈이 없고, 일을 안 해도 돈이 없다면, 일 때문에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놓지 말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인물들이 커튼을 매만지며 빛을 받거나 가리는 신이 많다. 무척 은유적으로 다가왔다.

=건강을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하지만 밤에 일하는 우철은 낮에 잠을 자기 위해 빛을 차단해야 한다. 반면 낮에 어두운 공간에서 일하는 지영은 빛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빛을 원하면서도 계속 멀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고 싶었다.

-연인이 머무는 집이 풍기는 분위기도 아련했다. 일렬로 정렬된 파스텔톤의 옷, 잔잔한 무늬의 패브릭, 단정히 놓인 조명에서 지난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취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의 흔적이 느껴졌다.

=내가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이다. (웃음) 생활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인물의 취향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방의 구조, 커튼 색을 바꾸는 식으로 미술에 신경 썼다. 당시에 보고 느낀 것을 최대한 담고 싶었고, 그때의 고민이 담긴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직접 출연도 했다.

-원래 연기에 관심이 있었나. 이전 연출작에서도 배우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우연히 동기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너무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라 연기를 계속하고 싶더라. 학교를 다니며 총 네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를 제외한 세편에 다 출연했다. 상대 배우인 동시에 감독으로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점이더라. 한때 연기 열정이 타올라 프로필 사진도 찍었는데 기회가 되면 연기를 더 해보고 싶다.

-엔딩크레딧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석양을 뒤로한 채 바다에서 둘만의 춤을 추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따로 춤 연습을 했을 것 같은데.

=스포츠댄스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하다 포옹에 가까운 포즈로 춤을 끝낸다. 마지막엔 결국 함께한다는 느낌이 좋아 스포츠댄스를 넣기로 했고, 김우겸 배우와 레슨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너무 정열적이기보다는 귀엽고 가벼운 느낌의 안무를 짜달라고 부탁드렸다. (웃음)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는 일본영화대학 학생들과 작업했다. 어떻게 진행된 프로젝트인가.

=한예종에서 매년 진행하는 한일 합작 프로젝트다. 격년으로 한해는 한국 감독이 일본에 가서, 한해는 일본 감독이 한국에 와서 현지 스탭들과 영화를 찍는다. 지난해가 한국 감독이 일본에 가는 해였는데, 욕심이 생겨 급하게 쓴 시나리오가 운 좋게 뽑혀서 5월에 졸업영화를 마치고 여름에 일본에 갈 수 있었다. 일본어는 아주 기본적인 정도밖에 못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언어 차이에서 오는 인물들간 소통의 어려움을 잘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 할머니 정연(김자영)은 일본어 선생님이었고, 일본인 손녀 안(가나이 다마키)은 한국 아이돌에 관심이 많지만 둘 다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이들이 간신히 이어가는 대화는 서로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기보다 어떻게든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읽혔다.

=둘 다 서로의 국가에 호감이 많은 상태인데 타의에 의해 가족이 되었으니 서로 미워하는 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지점을 언어로도 표현을 하고 싶어서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긋나고, 알아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는 라스트신으로 이어지는 산울림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산울림의 노래 덕에 잊고 지낸, 포기해온 낭만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런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 싶었고, 이 곡이 여름에 너무나 잘 어울려 골랐다.

-김창완의 목소리로 대변되는 특유의 정서가 있지 않나. 느끼하지 않게 예쁜 말을 건넨다고나 할까. 이번 수상작들에서도 그런 태도가 느껴진다.

=희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삶이 퍽퍽하게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잡아야 하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에게도 그걸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이런 작품들을 만든 것 같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

=중학생 때 집이 어려웠고, 친구들과 관계 맺는 것도 어려워했다. 주로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볼 때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보고 나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힘든 게 아니라, 영화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삶에 영향을 줘서 너무 좋았다. 막연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취업을 빨리 하고자 전혀 다른 전공으로 진학했다. 그래서 스무살에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떠올라 일을 하면서 한예종을 준비했고, 합격하고부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영화인이 되고 싶나.

=정말 솔직히 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영화인이 되고 싶다. 오랫동안 영화를 꿈으로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낭만적인 얘기는 뒤로 두고 이걸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좋겠다. 그러면서 정직함을 잃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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