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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히든픽처스] 영화로 떠나는 휴가
송경원 2020-08-07

독립영화 숨은 명작 발굴하는 히든픽처스 8월의 선정작

영화진흥위원회와 <씨네21>이 함께 진행 중인 히든픽처스의 8월 선정작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히든픽처스는 독립예술영화와 관객의 소통의 장을 넓히고자 숨은 명작들을 발굴하고 관객에게 알리는 독립예술영화 온라인 유통지원 사업이다. 8월의 히든픽처스는 시대를 조망하고 힘겨운 일상을 위로해줄 개성 만점의 영화 11편(장편 1편, 단편 10편)으로 꾸려졌다. 8월 히든픽처스는 7월 30일(목)~8월 28일(금)까지 LG U+tv 히든픽처스 특집관과 U+모바일tv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장마와 무더위로 지쳤다면 이제 영화 속으로 휴가를 떠나보자. 영화를 향한 모험, 영화를 통한 휴양은 계속된다.

[장편]

<우리 손자 베스트> 감독 김수현 출연 동방우, 구교환, 김상현 제작연도 2016년

시대의 단면을 예리하게 담아낸 영화는 간혹 예언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수현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우리 손자 베스트>는 2016년 한국 사회 밑바닥에 쌓여가던 문제들을 기발하게 비틀어낸 블랙코미디다. 소방공무원이 꿈이라고 떠들어대는 교환(구교환)은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언제나 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그는 인터넷커뮤니티 ‘너나나나베스트’에 게시물을 올리는 낙으로 산다. 한편 탑골공원을 휘저으며 종북 좌파 척결을 외치는 자칭 70대 애국지사 정수(동방우)는 어버이별동대 대장 활동에 여념이 없다. 정수는 탑골공원에서 ‘매국노인’들과 싸우던 중 우연히 교환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이른바 애국 활동에 함께 열을 올린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헬조선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어떻게 뭉치고 혐오를 퍼트리는지 그 과정을 비틀어 전달한다. 일간베스트와 어버이연합 등 실제 커뮤니티들을 소재로 활용하되 다큐멘터리처럼 딱딱하게 접근하는 대신 기발한 상상력과 도발적인 표현으로 풍자의 영역을 넓혔다. 김수현 감독 특유의 실험적인 영상언어로 뒤틀린 시대를 관통해낸 문제작이다. 각자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시대의 불안한 초상은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온다. 때론 유쾌하고 대체로 서글픈, 시대를 향한 도발적 유희. 독립예술영화에 바라는 개성과 에너지가 펄떡이며 살아 있다.

[단편]

<레오> 감독 이덕찬 출연 박예영, 최용진 제작연도 2019년

꿈에는 비용이 든다. <레오>는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첼로를 팔아야 하는 첼리스트의 이야기를 그린다. 은애는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첼리스트지만 생계를 위해 꿈을 접고 취직을 준비중이다. 과거를 정리하고자 첼로를 팔기로 결심하지만 막상 첼로를 사겠다는 연락을 받자 만감이 교차한다. <레오>는 현실이란 벽 앞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화다. 언제나 은애의 어깨 위에 놓였던 첼로 ‘레오’가 사라졌을 때 역설적으로 꿈의 무게, 현실의 애달픔이 섬세하게 전달된다. 푸념 대신 속으로 삼킨 무거운 한숨의 무게가 느껴지는, 절제된 연출이 돋보인다.

<친구> 감독 곽기봉 출연 황영국, 김준형 제작연도 2018년

대개 감정은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들에겐 미움이나 분노, 질투도 느끼기 어렵다. <친구>는미성숙한 학생들의 사연을 통해 우리가 주변을 질투하고 미워하게 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중학생 상규와 민선은 게임기를 사러갔다가 양아치들에게 붙잡히는데 싸움 잘하는 형이 있다는 이유로 민선만 돈을 뺏기지 않는다. 그러자 상규의 분노와 복수는 돈을 뺏은 양아치들이 아닌 친구 민선을 향한다. 영화는 우정 혹은 집착의 어두운 면을 치밀하게 따라간다.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내 손이 닿는 범주의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사회적 통찰로 확장되는 영화다.

<모범시민> 감독 김철휘 출연 윤세현, 오강진 제작연도 2018년

청소를 하지 않은 지 꽤 오래돼 보이는 경마장 화장실, 말끔한 양복 차림을 한 남자가 들어온다. 갓 출근한 신입사원처럼 보이는 남자는 화장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이내 청소를 시작한다. 얼굴에 오물이 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청소를 하던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질 때쯤 영화는 예상 밖의 진실을 들이밀며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 영화는 선의가 깃든 도덕적인 행동처럼 보이는 일들이 실은 절박한 욕망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기발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짧고 간결한 형식으로 인간의 욕망, 그 밑바닥을 더듬는 영리한 영화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작.

<갓건담> 감독 이준섭 출연 김현목, 이상운, 차미정 제작연도 2019년

준섭은 어린 시절 건담 피규어가 가지고 싶었지만 사이가 나빴던 부모의 이혼으로 진즉에 포기한 채 자랐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50번째 생일, “네 아빠는 자 연인도 아니고 아직도 머리를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냐, 너가 가서 확 좀 잘라버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아빠를 만나러 간다. 준섭은 어떻게든 아빠를 꾀어 이발을 시키려고 머리를 굴려본다. <갓건담>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챙기는 가족의 일상을 담은 관찰일기 같은 영화다. 언뜻 답답하고 불우한 상황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깨알 같은 디테일 덕분에 시종일관 유쾌하다. 밉다가도 웃음 한번에 상대를 보듬는, 관계의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늦은 휴가> 감독 나상진 출연 이상희 제작연도 2019년

선아는 오랜 고시 생활을 접고 첫 직장에 들어간다. 제대로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쉬어가라는 권유에 선아는 친구였던 진향에게 몇년 만에 용기내어 연락한다. 진향은 그런 선아에게 완규를 소개시켜준다. <늦은 휴가>는 남들처럼 살기 위해 주변의 시선에 적응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놓을 수 없었던 인물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진향과 사귀었던 선아는 좀처럼 마음을 접지 못해 괴롭다.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정의내리지도 설명하지도 않는 영화는 그저 그들이 지나왔던 순간들의 공기, 그 애틋함을 담아낸다. 제2회 이화영화제, 제19회 한국퀴어영화제 상영작.

[단편]

<teach me> 감독 김민주 출연 이학주, 이수경, 서현우 제작연도 2016년

준열은 학원에서 인정받는 인기 강사다. 그는 인터넷 강사로 성공하고 싶지만 학벌 콤플렉스가 늘 발목을 잡는다. 이에 준열은 재수학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 예은에게 전 과목 만점을 받게 만들어 자신의 간판으로 삼으려 한다. 재수생이란 압박감에 모든 것이 불안했던 예은은 준열의 특별과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결과에만 집착하는 관계는 점차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teach me>는 전쟁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을’들의 서글픈 발버둥을 그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사와 재수생의 모습은 성공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도태와 낙오에 대한 불안에 가깝다. 이학주, 이수경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전봇대, 당신> 감독 이진우 출연 이만구, 장경숙 제작연도 2014년

가장 개인적인 것이 실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전봇대, 당신>은 체신부 공무원에서 시작해 KT에서 38년간 근무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조용히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KT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던 아버지가 민영화 이후 다른 부서로 좌천을 반복하더니 결국 인터넷 설치기사가 되어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묵묵하게 따라간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담담하게 읊조리는 가운데 아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애정, 안타까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공감을 더한다.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끼우는 행태에 대한 고발과 함께 차분한 위로를 전하는 작품.

<눈의 마음: 이후> 감독 김소영 제작연도 2018년

<눈의 마음: 이후>는 1910~20년대 고려인의 삶의 조각들을 모아 그 기억을 스크린 위에 재소환한다. 조선인 여성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스탄게비치의 족적을 따라 재구성된 이 작품은 역사적 장소와 이미지들을 스크린 위에 모은 일종의 아카이빙 작업이다. 디아스포라 연구자로서 김소영은 고려인의 이주와 정착에 관한 ‘망명 삼부작’(<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선보였는데, 이 다큐는 고려인들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제의 혹은 헌사. “슬픔이 나를 데려온 곳,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눈의 마음”이라는 내레이션에 애상이 깃들어 있다.

<갈라파고스> 감독 허범욱 목소리 출연 조민수, 김민지, 정형준 제작연도 2019년

소년은 엄마를 죽였다. 충격적인 이미지로 문을 여는 <갈라파고스>는 2011년 엄마를 죽이고 8개월 동안 시체를 방치한 고3 남학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성적에 대한 강박과 부모의 학대 속에서 극한상황으로 내몰린 소년의 심리는 다양한 방식의 작화를 통해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비극이 일어난 현재를 다룰 땐 회색빛 스케치의 2D로, 상상의 세계를 그릴 땐 3D로, 과거를 표현할 땐 스톱모션을 활용한 퍼펫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소년의 마음이 점차 인형이 되어간다. 현재와 과거, 꿈과 내면을 넘나드는, 애니메이션다운 상상력과 다양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레버> 감독 김보영 목소리 출연 정승필, 강태영 제작연도 2018년

한 남자가 낯선 이로부터 기묘한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남자는 작은 방에 앉아 헤드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종이에 쓰인 번호대로 레버를 당긴다. 헤드폰이 고장난 어느 날, 평소대로 레버를 당기던 남자는 자신이 레버를 당길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걸 알게 된다. <레버>는 자신도 모르게 사형을 집행하던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의 딜레마를 되묻는 애니메이션이다. 자신의 일이 타인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낯익은 질문이지만 개성 넘치는 작화와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 어두운 색감을 통해 한층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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