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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의 네오클래식] 난니 모레티의 '나의 즐거운 일기'

영원한 아웃사이더의 유랑 일기

<나의 즐거운 일기> Caro Diario

감독 난니 모레티 / 상영시간 100분 / 제작연도 1994년

‘나는 자급자족한다.’ 1976년 스물세살의 청년 난니 모레티가 발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의 제목이다. 그로부터 21년 후, 모레티는 정말로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는 영화인이 된다. 제작에서부터 각본, 연출, 배급,상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1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사이 그는 무명감독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고, 자신의 주도하에 영화 제작사와 극장, 배급사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강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이 꿈같은 과업의 장본인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하는 소심한 남성이다. 1994년에 발표한 <나의 즐거운 일기>는 독보적인 영화인이자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모레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의 영화 여정의 중요한 변화를 알리는 작품 이기도 하다.

‘모레티’라는 장르

영화는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나의 베스파’에서 감독 모레티는 베스파를 타고 한적한 8월의 로마를 돌아다닌다. 사람들의 춤추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옛 정취를 잃어가는 거리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기도 하며, 지나치게 폭력적인 미국영화를 보고 나서는 호평을 쓴 평론가를 찾아가 괴롭히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2장 ‘섬들’에서는 대본 작업을 할 곳을 찾아 친구 제라르도와 함께 이탈리아 섬들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어느 섬은 이미 관광지로 변해버렸고, 어느 섬에서는 모든 가정이 과도하게 육아에 몰두하며, 또 어느 섬에서는 과대망상에 빠진 시장 때문에 작업에 방해를 받는다. 마침내 두 사람은 조용한 한 섬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나, 제라르도는 TV를 볼 수 없는 환경을 참지 못하고 이내 떠나버린다. 3장 ‘의사들’에서 모레티는 가려움증에 시달리다가 로마의 유명한 피부 전문의들을 찾아 나선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형식적인 진료만 한 후 갖가지 약을 처방해주는데, 아무리 약을 먹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체중마저 줄어든다. 우연히 그는 폐에서 악성종양을 발견해 수술을 받고, 뒤늦게 가려움증과 체중 감소가 폐종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처럼 세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를 아우르는 뚜렷한 줄거리나 기승전결 구조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담담하게 나열되는 에피소드들에는 삶의 구체적인 순간들과 인간의 미묘한 심리에 대한 감독의 깊은 통찰이 새겨져 있다. 또 동시대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분명한 견해도 깔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식적으로도 매우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는데, 감독이자 주인공인 모레티의 존재 덕분에 영화는 객관적 시점과 주관적 시점을 자유로이 오가고, 현실과 상상, 다큐멘터리와 픽션, 자서전과 허구 사이의 경계도 절묘하게 넘나든다. 수시로 흘러나오는 다양한 정서의 음악은 영화의 분절적인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모레티는 영화 <4월>(1997)에서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일기’ 형식을 적극 활용한다. 노트나 종이에 일기를 쓰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고, 일기의 내용을 직접 읽는 듯한 내레이션을 영화 내내 쉬지 않고 들려준다. 마치 삶의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언어로 혹은 이미지로 끊임없이 고정시킨다. 또 실제로 그가 경험한 암 치료의 기록 영상을 영화 중간에 삽입해 앞뒤 장면들과 교묘하게 꿰어맞추는데, 이를 통해 재현과 실재의 경계도 가볍게 무너뜨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영화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완벽하게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투적 풍자에서 포용의 희비극으로

모레티는 단편영화 시절부터 거침없는 논쟁가였다. 그가 구현한 인물들은 불안과 신경과민에 시달렸지만, 구태에 사로잡힌 이탈리아영화계를 정면으로 비판했고(<좋은 꿈>(1981)) 사고를 멈춘 채 스스로 우민화되어가는 이탈리아인들을 조롱했다(<비앙카>(1983)). 또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한 이탈리아 좌파를 비난했으며(<빨간 비둘기>(1989)), 베를루스코니를 비롯한 우파 부유층의 탐욕은 언제나 극렬한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거칠고 공격적이었던 그의 태도는 <나의 즐거운 일기>를 기점으로 분명한 변화를 보여준다. 논쟁과 싸움 대신 일상의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어가, 세심한 관찰과 차분한 숙고로 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의견을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 그는 전통과 개성을 버리고 점점 더 획일화되어가는 로마의 모습에 씁쓸해하고, 패배 의식에 젖은 68혁명 세대의 자조적인 태도에 답답해한다. 한때 이탈리아영화를 대표했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충격적인 죽음의 현장이 흉물스러운 기념비만 남긴 채 버려져 있는 것에 황망해한다. 자식 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관광에 모든 것을 걸거나 혹은 현재를 부정한 채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는 섬들의 모습은 현대 이탈리아 사회를 축소해놓은 것과 같다. 또 30년 동안 대중문화를 멀리하다가 미국 TV드라마에 단번에 빠져드는 학자의 허세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기 위해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의사들의 권위주의도 그만의 방식으로 희화화한다.

그런데 소소하면서도 예리한 모레티의 현실 비판은 그의 솔직한 자아비판 덕분에 더 큰 힘을 얻는다. 그 누구보다 지적이고 진지한 영화감독인 그는 영화 초반부터 온갖 종류의 대중가요와 춤에 빠져 있으며, 로마를 산책하는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빌스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가 무시당하기도 한다. 또 의사들의 무성의한 말들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고, 신화적 의미가 함축된 장소인 스트롬볼리섬 분화구에서 친구와 큰 소리로 미국 드라마에 대해 떠드는 경박한 일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자신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그의 겸허한 태도는 타인의 권위의식뿐 아니라 자신의 권위의식 또한 용납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반권위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이탈리아인들의 정신을 병들게 했던 선민의식과 권위주의를 그 근본까지 도려내 없애버리고 싶은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여기에,그의 독특한 유머가 더해지면서 신랄한 풍자는 인간미 넘치는 해학으로 탈바꿈한다.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모순들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깨달으면서, 날카로웠던 그의 비판은 어느덧 위로를 동반하는 포용의 언어로 변모한 것이다.

“바다를 떠돌 때만 마음이 놓여.” 영화 중간 지중해의 섬들을 돌아다니다 지친 모레티가 선상에서 혼자 내뱉는 말이다. 어쩌면 이 짧은 독백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압축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파솔리니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과 맞서며 분투해온 그의 영화 여정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숱한 난관과 흔들림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모레티는 이 영화에서 고독한 유랑을 즐기며 세상을 향해 줄곧 어떤 시선을 보낸다. 이후로 그의 영화들이 보여줄 시선,변함없이 도전적이면서도 연민과 공감을 담은 그만의 시선을 선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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