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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검정고무신'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송정율 감독의 '라떼는 말이야' 스토리
이주현 2020-11-20

3대가 함께 울고 웃고 슴슴한 이야기의 힘, <추억의 검정고무신>과 송정율 감독 스토리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이 <추억의 검정고무신>으로 돌아왔다. TV와 영화를 모두 감독한 송정율 감독은 추억의 TV만화를 다수 만든 원로 애니메이션 감독. 송정율 감독을 전화로 만나, <검정고무신>과 ‘옛날 옛적’ 얘기를 들었다.

라떼는… 고무줄놀이, 딱지치기, 비석치기, 술래잡기가 흔하디흔한 일상의 놀이였다. 신발 멀리 던지기를 할 땐 헐렁한 아빠의 검정 고무신만 한 게 없었다. 비 오는 날에도 척. 신고 벗기도 척척인 고무신. 고무신에 얽힌 추억 하나쯤 있다면 <추억의 검정고무신> 속 에피소드들이 정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추억의 검정고무신>은 ‘라떼의 추억’을 눈치 보지 않고 꺼낼 수 있게 해준다.

2000년부터 KBS에서 방송됐던 인기 TV애니메이션 시리즈 <검정고무신>이 <추억의 검정고무신>으로 극장에서 처음 공개된다. 원작은 1992년 <소년챔프>에 연재된 만화 <검정고무신>(글 이영일, 그림 이우영·이우진)으로, 1960년대 서울에 사는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아동용 만화다. ‘추억 회상’이라는 컨셉은 아이들에겐 호기심을, 어른들에겐 향수를 안겨주는데, 그 덕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연령층에 두루 소구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만화 연재를 시작으로 하면 무려 28년 만에 극장판이 만들어진 셈이고, TV애니메이션을 기점으로 해도 무려 20년 만에 기영이네 가족은 스크린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TV애니메이션에 이어 <추억의 검정고무신>까지 만든 송정율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기쁘다고 해야 할지,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10년 넘게 극장용을 제작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잘 안됐다. 투자에 어려움이 생겨 TV애니메이션도 3기 이후 더이상 만들어지지 못하고 10년이 흘렀는데(TV용으로 1, 2, 3기가 만들어지고 10년 뒤인 2015년에 4기가 나왔다.-편집자) 지금은 또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추억의 검정고무신> 같은 작품은 아이들이 단체관람하며 깔깔거리고 봐야 재미가 배가되는데, 그런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긴 공백을 깨고 완성된 <추억의 검정고무신>은 옴니버스 형태를 취한다. 막내 여동생 오덕이를 임신한 엄마와 가족 이야기 <오덕이의 탄생 사연>, 애지중지하던 운동화 때문에 우물에 빠지는 기영이 이야기 <기영이의 운동화> 등 총 7개의 에피소드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이어져 있다. TV용과 마찬가지로 <추억의 검정고무신> 역시 ‘그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2D애니메이션을 고수한다. 역시나 핵심은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오는 재미.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신으셨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으로 시작하는 주제가의 가사처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이전의 ‘옛날 옛적’ 이야기는 낯설고도 친근하다.

송정율 감독이 1980~90년대 작업한 주요 작품에는 산울림이 주제가를 부른 극장용 애니메이션 <슈퍼삼총사>, TV 만화영화 붐을 일으킨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등이 있다.

송정율 감독이 1980~90년대 작업한 주요 작품에는 산울림이 주제가를 부른 극장용 애니메이션 <슈퍼삼총사>, TV 만화영화 붐을 일으킨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등이 있다.

송정율 감독이 원작 만화를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꼬비꼬비>를 함께한 고 민영문 KBS PD와 ‘추억 회상물’을 기획하며 두편의 원작 만화를 놓고 고민했는데, 하나는 <검정 고무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건빵 한봉지>였다고 한다. <건빵 한봉지>는 1970년대 시골 마을의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주인공인 명랑만화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검정고무신>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스토리가 더 좋았다고 할까. 내가 어렸을 적 경험했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었고, 실제로 애니메이션에 내 경험도 많이 반영했다.”

1946년생인 송정율 감독의 유년 시절은 영화 속 기영이, 기철이 형제가 보낸 1960년대와 겹친다. 영화의 에피소드 중 <극장구경>이 있는데, 송정율 감독 또한 입장료가 10원이던 시절 변두리 극장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자주 봤다. “서울에 와서 처음 본 영화가 <해저 2만리>. 그걸 동시상영관에서 봤다. 고등학생 때는 돈이 없었으니까 개봉영화는 바로 못 보고 변두리 극장에서 동시상영으로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 속 닮은 캐릭터는 기철이가 아닌 기영이라는데, 그 이유는 “기영이처럼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송정율 감독이 1980~90년대 작업한 주요 작품에는 산울림이 주제가를 부른 극장용 애니메이션 <슈퍼삼총사>, TV 만화영화 붐을 일으킨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등이 있다.

송정율 감독이 1980~90년대 작업한 주요 작품에는 산울림이 주제가를 부른 극장용 애니메이션 <슈퍼삼총사>, TV 만화영화 붐을 일으킨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등이 있다.

송정율 감독은 만화로 시작해 애니메이션에 정착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다주신 만화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을 읽으면서 “만화로 이렇게 가슴이 설렐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참고로 <추억의 검정고무신>의 <극장구경> 에피소드에서 기영이와 친구들이 극장에서 동시상영으로 보는 영화가 신동우·신동헌 형제의 ‘총천연색’ 장편 만화영화 <호피와 차돌바위>(1967) 그리고 <해저 2만리>다.

1970년대, 문하생 생활을 하고 순정 만화 <소꿉장난> 등을 그리기도 했던 송정율 감독은 만화를 탄압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만화가의 길을 포기한다. “1970년대에 만화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만화 앞에는 무조건 ‘불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다 TV뉴스에 불량한 저급 문화라며 만화책을 태우는 장면을 봤다. 내가 만든 만화가 타고 있었다. 그래서 절필했다. 그때 수입이 없어 이틀을 꼬박 굶은 적도 있다.”

송정율 감독이 1980~90년대 작업한 주요 작품에는 산울림이 주제가를 부른 극장용 애니메이션 <슈퍼삼총사>, TV 만화영화 붐을 일으킨 <아기공룡 둘리> <옛날 옛적에> 등이 있다.

배추도사 무도사, <라면과 구공탄>…‘레전드’의 탄생

이후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송정율 감독은 유현목 감독의 영화사 유프로덕션에서 제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으로 감독 데뷔한다.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다. “<별나라 삼총사>(1978)의 흥행세가 꺾이지 않아” 극장에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한 것이다. 1980~90년대엔 TV애니메이션 제작에 집중했다. 그 당시 어린이들을 TV앞에 불러모았던 KBS의 대표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옛날 옛적에> <꼬비꼬비>에 송정율 감독이 참여했다. <꼬비꼬비>와 <옛날 옛적에>는 창작애니메이션이란 점에서 송정율 감독이 남다른 애정을 가지는 작품이다. 구름을 타고 등장하던 <옛날 옛적에>의 배추도사, 무도사도 송정율 감독이 만든 캐릭터다. 재밌는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지 마침 <검정고무신>의 기영이 머리도 배추도사 머리처럼 뾰족뾰족하다.

송정율 감독이 직접 그린 <검정고무신> 콘티와 캐릭터 드로잉.

송정율 감독이 직접 그린 <검정고무신> 콘티와 캐릭터 드로잉.

추억의 만화영화들은 하나같이 인상적인 주제곡을 가지고 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로 시작하는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나 <날아라 슈퍼 보드>의 주제가 <치키치키차카차카>는 전주만 들어도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잘 아는 송정율 감독 또한 직접 주제곡 및 삽입곡의 작사를 했다. 대표적인 게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콜이 부르는 <라면과 구공탄>, 이른바 ‘라면송’이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와 쌍벽을 이루는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바로 라면송의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이 아닐까. “열정을 가지고 작품을 하니까 노랫말도 만들고 싶어지더라. 아쉽게도 음악적 소질이 없어 작곡은 못했다.

<라면과 구공탄>의 경우, 우리 시대만 해도 가스레인지가 없었다. 구공탄으로 난방도 하고 취사도 했다. 라면도 구공탄에 끓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라면을 좋아했고, 실제로 사무실에서 라면을 자주 끓여먹었기 때문에 그 노래가 탄생할 수 있었다.” <라면과 구공탄>은 30년 넘도록 저작권료가 들어오는 신기하고 고마운 노래라고. 이뿐 아니라 <검정고무신> <옛날 옛적에> <슈퍼삼총사>의 주제가와 삽입곡도 송정율 감독이 직접 작사했다. 그리고 이때는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유명 가수들이 많이 불렀는데, <슈퍼삼총사>의 주제곡은 산울림이 불렀고, <검정고무신>의 주제곡은 <은하철도 999> <축구왕 슛돌이> <미래소년 코난> 등 숱하게 만화영화 주제곡을 부른 가수 김국환이 불렀다.

송정율 감독이 직접 그린 <검정고무신> 콘티와 캐릭터 드로잉.

반세기 동안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보고 달려온 송정율 감독의 “창작 욕구”는 여전히 뜨겁다. <검정고무신>에 대한 애정도 아직은 놓을 생각이 없다. 송정율 감독은 옴니버스 형태가 아닌 장편 스토리로 <검정고무신>의 또 다른 극장판을 준비 중이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하고 싶은 걸 다 이룰 순 없을 텐데, 그래도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검정고무신>은 오래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스펙터클하거나 그림이 화려하거나 기술이 현란하진 않아도, <검정고무신>의 슴슴한 맛은 부담 없고 정겹다.

송정율 감독

필모그래피 2020 <추억의 검정고무신> 2000~15 <검정고무신> 1995 <꼬비꼬비> 1990 <옛날 옛적에> 1990 <날아라 슈퍼보드> 1990 <로티의 모험> 1987 <아기공룡 둘리> 1982 <슈퍼삼총사> 1979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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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주)형설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