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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 변모하는 사랑의 형태를 그려낸 영화... 원작과의 차이점은

어느 날, 대학생 영석(남주혁)은 길에 쓰러진 한 여자를 돕는다. 고장난 휠체어와 여자를 리어카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준 영석에게 여자는 밥을 먹고 가라 권하고, 영석은 얼떨결에 밥을 얻어먹게 된다. 여자의 이름은 조제(한지민). 폐지 줍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조제는 헌책에 파묻힌 채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 조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영석은 종종 조제를 찾아와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조제 또한 영석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설레는 시간도 잠시, 낯선 감정에 마음이 저릿해진 조제가 뒷걸음질을 치고, 조제의 닫힌 문 앞에서 영석 또한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고 영석은 다시 조제의 집에 찾아간다. 조제와 영석의 재회는 서로를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고, 두 사람은 전보다 더 깊은 애정을 나누게 되지만, 보통의 연인이 그러하듯 이들 또한 점차 사랑의 끝을 감지해간다.

<조제>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과 이누도 잇신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원작의 설정과 전개를 전반적으로 뒤따르지만, 원작에만 오롯이 기대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부터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최악의 하루>(2016), <페르소나-밤을 걷다>(2018) 등 섬세한 시선으로 사랑과 감정과 관계를 이야기해온 김종관 감독이 자신만의 감성을 더해 오늘날 한국의 풍경 안에서 조제와 츠네오(영석)를 그려냈다고 일컫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원작 영화의 위력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특히나 조제라는 캐릭터의 독특한 매력, 연인의 만남과 이별 과정 같은 영화의 매력 요소들은 자연스레 원작과 비교 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이처럼 유명한 원작을 리메이크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음에도, 원작 소설과 영화가 가진 ‘인간에 대한 시선, 깊은 인간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언급처럼 <조제> 속 두 사람의 사랑은 남녀의 뜨겁고 열렬한 애정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고 온도가 차츰 달라지며 자연스레 모양과 형태가 바뀌어간다.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상대의 상처를 기꺼이 끌어안는 공감과 교감을 지나, 서로의 현실과 상황을 이해하고 식어버린 마음까지 인정하며 아픔을 보듬는 인간애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비단 조제와 영석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무수한 연인들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게 될 아릿하고 쓰디쓴 성장통이기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조제>에는 원작과 달리 주인공들에게 추가된 몇 가지 관계와 설정들이 있는데, 이는 리메이크작으로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지점이지만 한편으론 종종 주인공들의 감정선 속에 다소 인위적으로 삽입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극중 조제가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일상적 순간 속 세밀한 감정을 그려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한 영화인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영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원작 배우들의 신선함만큼은 아니지만, 한지민과 남주혁은 각자 최선의 연기를 통해 역할에 차분히 녹아들었다. 조제역의 한지민은 <미쓰백>에 이어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다 만나게 된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역할을 맡았는데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조제의 양면성을 능숙하게 연기하며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끈다. 남주혁이 맡은 대학 졸업반 영석은 조제만큼 남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잔인한 현실감 속에서 씁쓰레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역할이다. 남주혁은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 취업 준비생의 위축감, 자신을 억눌러야 하는 답답함, 삶과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담담함 등을 적절하게 연기하며 영석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CHECK POINT

프랑수아즈 사강

자신을 ‘조제’로 불러달라는 여자. ‘조제’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극중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조제는 영석에게 사강의 소설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놀이공원과 수족관

조제의 집부터 골목길, 고물상, 헌책방, 대학교, 고시원, 스코틀랜드 등 조제와 영석이 다양한 모습으로 오가는 여러 공간이 등장하지만,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놀이공원과 수족관이다. 놀이공원과 수족관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해 두 사람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며 특별한 무드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기능한다.

다시 만난 두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의 호흡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함께했던 두 사람은 <조제>를 통해 스크린에서도 풋풋하고도 애틋한 연인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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