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music
[Music] 때로는, 흐르는 대로 - 전진희 《Breathing》

일하는 자들은 자주 자신의 몸을 고무줄 다루듯 한다. 끊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당겨보는 것이다. 줄이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지고 위태로움을 감지해도 ‘아직은 늘어나니까’ 더 당겨본다. 툭! 끊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나서야 내 몸과 마음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경험은 인생 1회차의 누구라도 겪어봤을 비극. 처음부터 알고 조절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한계라는 것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알기도 어렵거니와 정신적·육체적 불능의 상태를 증명해야만 휴식을 허락하는 노동환경에서는 자꾸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앞서 말한 비극을 경험하고도 거기서 얻는 결론이 오래가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체력은 물론 당면하는 문제의 종류도 달라지니, 때맞춰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그에 맞게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기예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능숙해지지 않는 자기 돌봄의 과업 앞에서 무력해져본 사람이라면 전진희가 올해 초 발표한 음반 《Breathing》에서 희망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갑자기 찾아온 불안장애로 모든 일을 중단한 채 지내야 했던 시절, 그는 방 안에 오래 머물며 아무런 목적 없이 건반을 눌렀다. 마치 살기 위해 숨을 쉬듯, 손이 가는 대로 연주한 것이다.

<Breathing in April>을 시작으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이 독백 같은 음악들은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었고, 그렇게 2년여 동안 시리즈로 이어진 28곡 중 13곡을 골라 완성한 게 이 《Breathing》 앨범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태생적 배경이 음악적으로도 분명히 다른 지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뮤지션이 곡을 쓸 때 반영하는 최소한의 의도- 사람들의 귀에 흔적을 남기겠다거나 특정한 심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가 없다보니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은 멜로디와 전개에 있어 뚜렷한 방향성을 드러내지 않는데, 덕분에 듣는 입장에선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기보단 충분한 여유를 갖고 내 호흡대로 음악을 느끼게 된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노트와 긴 잔향 속에서 깊고 천천히 숨을 고르는 것, 이보다 더 나를 정성스레 대하는 행위가 있을까.

PLAYLIST+ +

권월 《그때의 생각》

영국에서 작곡을 전공한 권월의 연주곡 음반. 일렉트로닉 그룹 ‘F.W.D(포워드)’로 활동하다 군 제대 후에는 피아노를 기반으로 한 솔로 프로젝트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음반에 담긴 32곡은 권월이 2018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살면서 마주한 사건과 생각을 그때그때 일기 적듯 음악으로 표현한 것. 1분~3분 사이의 특별한 서사 없는 음악이 명상적으로 들린다.

전진희 <어디에 있나요>

2017년 가을에 발표한 전진희의 정규 1집 《피아노와 목소리》의 타이틀곡. 해당 앨범에는 디어클라우드의 나인, 곽진언, 이영훈 등 다수의 뮤지션이 객원 보컬로 참여했으나 이 곡은 전진희가 직접 불렀다.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노래도 ‘말하듯’ 한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