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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귀한 사람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오지은(뮤지션) 2021-04-01

일러스트레이션 EEWHA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런 날이 오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남성의 날은 없냐고 따지는 사람부터 모든 여성을 사랑하고 찬미합니다!류의 메시지를 보내며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는 대기업까지. 전자에게는 더이상 설명을 해줄 기력이 남지 않았고 후자의 경우엔 진짜로 그런 마음인지, 현재 그 기업의 여성 고용 비율은 어떤지, 여성 임원은 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아이스크림이 처음 만들어진 날! 이런 것까지 기념하면서 세계 여성의 날은 기념하지 않는 한국에서 제일 큰 포털사이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무 이런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좀더 본질에 집중해보도록 하겠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환경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고 이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시기는 프랑스의 경우 1946년, 영국은 1928년, 미국은 1920년이다(참고로 미국의 남성 흑인 노예의 경우 1870년이다). 스위스는 1971년, 가장 늦은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이다. 한국은 1948년. 이런 말을 적다 보면 머릿속에서 말이 들린다. ‘그러니까 지금은 참정권이 있다는 거잖아. 옛날 여자들이 희생했다는 건 알겠어. 근데 네가 무슨 차별을 받았어? 이런 얘기를 자꾸 왜 해?’ 그럼 나는 기운이 빠진다. 계속 제자리를 도는 질문의 반복.

여하튼 그런 세계 여성의 날이다. 임파워링, 영감, 그런 단어를 떠올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3일 변희수 하사가 죽음을 택했고, 2월 24일에는 활동가 김기홍이, 2월 8일에는 극작가 이은용이 같은 길을 택했다. 그리고 언론에 나오지 않는, 다른 귀한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왜 죽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나는 신이 아니라 알 수도 없고 쉽게 말을 얹을 수도 없다. 하지만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왜 죽었고, 나는 언제 죽고 싶어지는지에 대해. 그들은 모두 트랜스젠더였다.

변희수 하사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 꿈이었고 2017년에 하사가 되었다. 군에서는 탱크를 몰았다. 유일하게 A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유능한 군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녀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로 우울증을 앓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2019년 11월의 일이었다. 함께 일하는 소속 부대원들은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2020년 1월 강제 전역을 당했다. 군의 사유는 ‘심신장애 3급’. 육군은 그가 전투력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장애로 분류한 것이다. 유엔은 군의 조치가 국제인권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지만, 군은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울의 이유를 직시하고, 어떤 길이 더 자신다워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하였으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있었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사회가 변화할 기회를 만들어냈다. 인터뷰에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앞에 나서서 싸우는 것에 두려움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하하.’ 기갑의 돌파력, 이 사람은 정말 군인이구나. 나는 생각도 못할 말과 자세다. 인터뷰는 2020년 3월이었다.

아이콘이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이름과 얼굴을 내놓고 신념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그녀를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본 것은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특출나게 대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서주는 덕에 세상이 바뀌는 걸 거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강하니까 상처도 덜 받을 거야, 하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정정하겠다. 그녀는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 맞고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어떤 말이든, 어떤 상황이든 괜찮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마음이 편할 뿐이다.

그리고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저 인터뷰를 하고 1년 뒤였다. 사람이 탱크가 아닌데, 기갑의 돌파력을 어떻게 가지겠는가. 23살이었다. 뒤늦게 한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지고, 일자리가 안 구해져 조바심이 날 것 같다.” 코로나 시국의 트랜스젠더. 아이콘이 되어버린 사람의 그림자. 나를 더 슬프게 만든 것은 그녀가 이미 지난해 11월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극작가 이은용의 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2020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했다. 2020년 12월의 일이었다. 2020년 동아연극상의 작품상도 받았다. 2021년 1월의 일이었다. 이은용 작가의 첫 작품이었고 수상 소감으로는 “생존하는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이 작품을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다시 보니 ‘생존하는’이라는 단어가 묘하지만 그때는 봐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수상 경력을 나열하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죽다니’하고 추모받아 마땅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듯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도는 아니다. 단지 첫 작품으로 큰 상을 두개나 탄 작가가 그다음 달에 죽음을 택한 마음을 감히 짐작해보니 너무 슬퍼서다.

녹색당의 비례대표로 알려진 활동가 김기홍은 원래 기간제 음악 교사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학교에 돌아가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 문제가 있는 글을 인터넷에 적었고 그 일로 비례대표직을 사퇴했다.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예전에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열심히 살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다. 그만 두드려 맞고 싶어서,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서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고 한다. 촘촘한 혐오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얼마 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퀴어 퍼레이드를 보지 않을 권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누군가가 나를 보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드러나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변희수가, 이은용이, 김기홍이 죽지 않길 바랐지만 나에게 그들의 삶의 무게를 계속 견디라고 주문할 권리는 없다. 그냥 상상해본다. 변희수가 다시 탱크를 몰고, 그 안에 에어컨이 없다고 불평하는 상상. 이은용이 다음 작품을 고민하고 발표하는 상상. 김기홍이 제주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힘을 주는 상상을 해본다.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명복을 빕니다.

일러스트레이션 EEW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