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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배우 전여빈 - 표현의 희열
조현나 사진 오계옥 2021-04-22

전여빈은 현재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배우다. 지난 2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에서 에너지 넘치는 변호사 홍차영으로 새로운 면면을 드러낸 뒤, 4월 9일 공개된 <낙원의 밤>에서는 냉철한 인물 재연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연기한 재연은 총기 불법 브로커 쿠토(이기영)의 조카로, 제주도로 내려온 태구(엄태구)와 함께 지내는 인물이다. 태구가 “총을 잘 쏘던데”라고 하자 재연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라고 답한다. 그처럼 재연은 슬픔으로 주저앉는 대신 서슬퍼런 총구를 겨누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질주한다.

재연이 “정통 누아르의 변곡점이 되어줄 것”을 직감한 전여빈은 온전히 재연이 되기도, 또 완전히 타자화시켜 바라보기도 하며 재연에게 입체감을 더했다. 끝없이 튀어오르는 차영과 한없이 가라앉은 재연 사이에서 배우 전여빈의 세계가 다시 한번 확장했음을 실감한다. 상반기에만 두 작품을 선보이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전여빈과 마주 앉아 나눈 대화를 전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누아르 장르를 좋아하는 편인가.

=누아르 장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홍콩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을. <낙원의 밤>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도 당시의 향수가 느껴지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누아르영화가 마침내 들어왔구나 싶었다. 재연이 남자였으면 정통 누아르였을 텐데, 여성이라는 점에서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직감했다.

-재연을 들여다보니 어떤 점이 인상적이던가.

=이 친구는 구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구원도, 누군가의 도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나갈 뿐이다.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재연이 바라는 성취가 정말 재연의 숨통을 틔워줄까 싶어서였다.

-고등학생 시절이 등장하는 등 재연은 극중 전사가 가장 자세히 설명된 인물이다. 그만큼 몰입도 빨랐을 것 같은데.

=맞다. 재연에 대한 묘사가 빼곡해서 따라가기 쉬웠다. 재연이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뭔가를 더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해하기 충분했다. 또 박훈정 감독님이 되도록 시간순대로 촬영을 진행해주셔서 감정을 순조롭게 쌓아갈 수 있었다.

-재연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연이어 목도한다. 매 순간 상실과 슬픔을 표현하는 게 주요했을 것 같다.

=그런데 재연이 상실 혹은 죽음을 감당하는, 그리고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을 익힌 사람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들이 너무 빠르게 다가오니까 스스로 받아들이고 정리할 시간이 없는 거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니 오히려 단념하고, 가속도를 높여 자신의 마지막 선택을 향해 가는 거지. 하지만 이미 다 상처입어 찢겨진 마음인데 그 선택 이후로 해갈이 됐을까 싶다.

-완전히 재연에 몰입하다가도 계속 재연에게 거리를 두고 답한다는 느낌이 든다. 촬영 때도 두 가지 시선을 같이 가져갔나.

=음,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촬영할 동안에는 실제 내 감정이라 착각할 정도로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기도 하고, 또 완전히 타인처럼 분리해 바라보기도 한다. <낙원의 밤> 촬영을 할 땐 재연 자체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촬영 도중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내 삶을 사는 지금은 또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간 상태다. 그래서 더 여러 방면으로 재연을 바라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몇 장면을 빼놓곤 계속 엄태구 배우와 함께했다. 다른 인터뷰를 봐도 굉장히 친해진 것 같던데 엄태구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엄태구 배우는 극에 대한 몰입도가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 차승원 선배가 엄태구 배우를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가졌다면 저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는데,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좋은 동료를 보며 느끼는 건강한 자극과 반성이 있었다.

-태구와 재연은 단순한 우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다. 둘 사이의 관계, 그리고 태구에 대한 재연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나.

=로맨스는 아니고 오히려 인류애적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서로의 가엾은 상황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동료가 생긴 거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물들어가지 않나. 촬영을 이어가면서 극증 재연과 태구로서, 그리고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갖는 고민들이 서로 잘 통했다. 그런 점이 촬영을 할 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재연의 외형은 어떻게 완성했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의상도 주로 노란색, 보라색이라 흑백의 정장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의상이나 메이크업은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을 철저히 따랐다. 처음 배우들이 분장하고 의상을 입고서 대사를 했을 때, 감독님이 정말 극중 인물들이라고 믿게 됐다고 하시더라. 내가 재연의 외형을 준비하며 느낀 건, 재연이 정말 누군가에게 내세우거나 돋보일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란 거였다. 자신의 목표와 끓어오르는 감정을 잘 갈고닦으며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 그런 게 꾸미지 않은 모습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느꼈다. 볼수록 재밌더라, 이 친구.

-총기 연습은 어떻게 했나.

=사격장에 가서 연습하고 총기 소지 실장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다. 총의 반동 같은 것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금방 단련됐고 실장님에게도 칭찬받았다. (웃음) 이후로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임했다.

-후반부에 오롯이 재연이 책임지는 신은 실로 에너지가 대단했다.

=그 신은 실제로 마지막에 촬영해서 분노가 찰 대로 차고, 용광로처럼 마음이 달궈져 있는 상태였다. 이 분한 마음을 어떻게 어리석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시뮬레이션을 오래해왔고 총기 연습도 열심히 했지만, 무엇보다 텐션 조절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현장에 임하니 그 분위기와 액션팀들의 반응이 소름 끼칠 정도로 바로 흡수되더라.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촬영이 끝난 후로는 몸이 되게 힘들었다. 재연이 원하던 일을 했는데도 감정적으론 오히려 허탈하고, 스스로에게 버려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바닷가 신은 나중에 따로 찍었는데 이미 내 신체가 이전의 정서를 기억하고 있어서 몸이 다시 덜덜 떨렸다.

-드라마 <빈센조> 이야기도 해보자.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변호사 홍차영은 지금까지 맡아온 캐릭터 중 가장 결이 다른 인물이다.

=처음 <빈센조> 대본을 읽었을 때도 연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이 어느 정도 나와서 차영이란 인물을 구성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는데 볼수록 정말 많은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쉽지 않겠다 싶었지만, 같은 이유로 욕심이 났다.

-그 많은 면들을 표현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차영의 변화와 성장에 중점을 뒀다. 차영은 1~3화, 4화, 5~10화, 11~16화, 그리고 16~20화로 디테일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굴곡이 많고, 그만큼 세밀하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초반엔 안하무인처럼 보였으면 했다. ‘부를 쥔 권력자들을 변호하는 것도 결국 내 일을 하는 건데, 그걸로 왜 지탄받아야 하나’, 그런 뻔뻔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또 아빠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차영의 전사를 계속 되뇌었다. 아빠를 존경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어떻게 성공에 목매게 됐는지. 아빠의 죽음 이후에는 차영이 다크 히어로로 변해가는 과정을 차곡차곡 보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차영의 발랄함을 표현하는 건 어땠나. 전여빈 배우에게 이런 면도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차영의 발랄함은 사실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받아들이고 연기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다. 자신이 속했던 로펌에서 아버지를 살해했고, 성공만 바라보고 커온 사람이니 주변에 친구도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아끼던 후배가 알고 보니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는 장 회장이었다. 어찌 보면 차영도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복수하겠다고 겨우 버티고 있는 거지. 그런 점에서 재연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여배우는 오늘도>부터 <낙원의 밤> <죄 많은 소녀> <멜로가 체질> <해치지않아> <낙원의 밤> <빈센조>와 차기작 <글리치>까지,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낙차가 큰 시도를 지속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춘기 시절엔 내 감정을 숨기고 센 척하는 게 멋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게 나를 병들게 하는 거란 걸 알았다. 배우를 꿈꾸게 된 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직접 해보니 그런 표현들이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러니 갇히지 않고 더 무한히 사유하고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도 처음 만나는 인물과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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