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리뷰] '크루엘라'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빌런
조현나 2021-06-02

반은 화이트, 반은 블랙인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강렬한 레드 립.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한 크루엘라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특유의 신경질적인 태도와 집착은 크루엘라의 강렬한 인상에 두려움과 반감을 얹는다. 한편 의문도 든다. 어떤 과거를 보냈기에 저런 광기를 지니게 된 것일까. 원작에선 크루엘라의 전사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크루엘라>는 빈칸으로 존재하던 크루엘라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크루엘라(엠마 스톤)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건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서다. 그전까진 어머니의 부탁으로 상대적으로 평범한 ‘에스텔라’로 살아간다. 에스텔라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오히려 학교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에스텔라의 어머니는 에스텔라가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런던으로 이주한다. 사고로 어머니와 헤어진 뒤로, 크루엘라는 재스퍼(조엘 프라이)와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와 함께 런던의 길거리를 누비며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역설적이게도, 이 순간 에스텔라의 뛰어난 패션 감각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는 다양한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재스퍼, 호레이스와 변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리버티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한 에스텔라는 런던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바로네스 남작 부인(엠마 톰슨)을 만난다. 남작 부인은 에스텔라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자기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들인다. 능력을 인정받으며 즐겁게 일하던 중 에스텔라는 남작 부인의 실체를 깨닫고, 이를 계기로 마침내 크루엘라로 변화한다.

<크루엘라>의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에스텔라’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추가했다는 것이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는 내외면이 완연하게 다른 인물이다. 가령 에스텔라가 개성 강한 괴짜라면 크루엘라는 폭주하는 반란자에 가깝다. 영화는 그런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패션에 대한 열정을 크루엘라의 중심에 위치시킨 것도 눈에 띈다. 열정을 꽃피울 능력까지 지닌 크루엘라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빌런이 되어 등장한다.

크루엘라와 남작 부인의 대립도 흥미롭다. 두 사람의 전쟁은 누가 더 신선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내놓느냐의 싸움이다. 패션계의 판을 짜고 다시 뒤엎는 과정을 크루엘라 역의 엠마 스톤과 남작 부인 역의 엠마 톰슨, 두 ‘엠마’가 긴장감 있게 이어간다. 엠마 톰슨은 지나치게 냉철하고,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남작 부인의 특징을 얄미우리만치 잘 살려 연기한다. 그리고 엠마 스톤은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이 “정교하게 춤을 추듯 미묘한 측면을 표현했다”라고 극찬할 정도로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를 유려하게 묘사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최고의 제작진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아이, 토냐>로 제75회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감독이다. 라이벌 폭행 사건으로 스캔들에 휩싸인 피겨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삶, 즉 악녀라 불리던 인물의 이면을 조명해냈던 것처럼 <크루엘라>에서도 크루엘라의 다양한 면면을 비추는 데에 집중한다.

두 주인공이 패션 디자이너인 만큼 의상 디자이너의 활약이 중요했을 터. <전망 좋은 방>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제니 비반이 의상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는 총 277벌의 의상을 제작했는데 그의 50년 필모그래피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고 한다. 배우들과 제작진의 노력으로 새로운 빌런 크루엘라가 탄생했다. 원작의 불편감은 덜어내고 탄탄한 상상력과 서사를 더해 충분히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CHECK POINT

디올과 펑크록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크루엘라를 떠올릴 때 1970년대 펑크록 가수 블론디를 떠올렸고, 제니 비반 의상감독은 디올에서 영감을 얻어 남작 부인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디올과 펑크록. 크루엘라와 남작 부인의 의상 디테일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크루엘라>의 또 다른 재미 요소다.

영화를 풍성하게 채우는 음악들

<크루엘라>는 1970년대 음악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약 2천곡 중 50여곡을 골라냈다. 영화에 삽입된 블론디, 더 클래시, 퀸, 도리스 데이 등의 음악은 빈틈없이 영화를 메우며 지속적으로 리듬감을 부여한다.

1970년대 건물의 코너까지 재현하다

프로덕션팀은 1970년대 런던을 재현하기 위해 약 130개의 세트를 준비했다. 145년 전통의 리버티 백화점, 남작 부인의 패션 회사, 에스텔라의 은신처 등 영화 곳곳에 건물의 기둥과 소품까지 완벽히 구현하려 한 프로덕션팀의 노력이 녹아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