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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예술과 무대와 직업과 사람
오지은(뮤지션) 2021-08-12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최근 음악 다큐멘터리를 두편 보았다. 하나는 에단 호크 감독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고 다른 하나는 밴드 메탈리카의 8집 앨범 작업기를 담은 <메탈리카: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다.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두 영화를 묶어서 영화제에 상영한다면 누군가는 프로그래머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빼면 두 영화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브람스의 간주곡 A장조, 작품번호 118의 2번의 정서와 메탈리카의 곡 <Master of Puppets>의 정서만큼 다르다. 무대에 서길 포기하고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의 삶과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를 매일같이 들었다 놨다 하는 밴드의 삶만큼 다르다. 4시간을 연습해도 안되면 8시간을 연습하면 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피아노 선생과 어제부터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채 10만명 앞에서 공연하는 록스타만큼 다르다.

물론 대화의 톤도 다르다. 세이모어 선생은 작고 하얀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클래식 음악 평론가가 된 제자를 만나 조곤조곤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 메탈리카 멤버들은 앰프가 가득 쌓인 LA의 창고에서 단어마다 Fxxx를 붙이고 삿대질을 하며 음악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익숙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생소한 얘기를 해보겠다. 메탈리카는 1981년에 결성됐고 83년에 낸 첫 앨범부터 이미 최고였다. 86년에 나온 3집 《Master of Puppets》는 세상을 뒤집었다. 메탈리카에 대한 호불호는 제쳐두고 이 밴드가 메탈이라고 하는 장르 문법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직 감이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해 숫자를 꺼내자면 메탈리카의 앨범은 지금까지 1억3천만장 팔렸다. 한 장르의 신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 다큐를 보니 상당히 별로인 것 같지만.

<메탈리카: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의 감독은 처음에는 거장들의 작업기를 담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음악은 이런 놀라운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14년을 함께한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가 팀을 나가고, 팀에는 큰 균열이 생긴다. 메탈리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월 4천만원을 주고 심리상담사를 고용하는데, 그때부터 이 영화는 충돌하고 절망하고 붕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관객은 연주하는 메탈리카보다 심리상담사를 두고 테이블 앞에 둥그렇게 앉아 상대방의 멱살을 잡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을 고르는 메탈리카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8집 앨범은 2003년에 나왔고 영화는 2004년에 공개됐다. 당시 내 귀에는 한국 메탈 맨들의 곡소리가 들렸다. “우리 형들이 이럴 리가 없어….” 이어지는 말은 더 놀라웠다. “메탈리카가 팔려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다니….” 마치 오래 믿고 있던 종교가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다. 메탈리카가 그레고리 성가라도 만든다고 생각한 걸까? 대중음악이란 뭘까? 설마 록은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냐하면 저항의 음악이자 젊음의 상징이니까… 아… 록이여….

메탈리카가 싸우는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20년간 같은 사람들과 한 부서에서 일했는데, 딱 3명 남은 팀원이 전부 갑부에 슈퍼스타다. 프로젝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왔고, 사람들은 다음 프로젝트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길 기대한다(동시에 엄청나게 망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신적인 위치에 있지만 결국은 인간이라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 하하호호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관계는 최악이고,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창고에 들어가서 연주를 시작하는데 보컬은 드러머의 연주가 싫고, 드러머는 보컬의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에 안 든다.

빠직빠직하는 분위기가 싫은 리드기타는 달관한 표정으로 서핑을 하러 간다. 리스너들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닥다리 느낌은 주지 않으면서, 유행에 편승하는 느낌이 없으면서, 신선함은 있으면서, 자기 복제가 아닌 좋은 노래로 가득 찬 명반’이 나오길 바란다. 이 무슨 청기 올려, 백기 내리지 마, 그리고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 같은 말인가. 그래도 해내야 한다. 그 장르의 신이니까.

록계에는 27살 클럽이라는 말이 있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만 27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게 좀 잔인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27살에 죽었지?”하고 눈을 빛내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천재의 요절은 간단히 미화되고 소비된다. 27살을 넘겼든 그렇지 않든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행복하게.

개인적인 문제도 겹쳐서 보컬 제임스 헷필드는 재활원에 들어가고 작업은 1년간 중단된다. 술과 마약과 로큰롤의 시간은 끝난 것이다. 그가 발레 학원에 간 어린 딸을 안아주는 장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의 메탈리카는 그렇지 않아! 아니다. 저 사람이 바로 메탈리카다.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1927년생이다. 그는 클리포드 커즌 같은 대가 밑에서 공부하고 1969년에 데뷔하는데 협연 상대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였다. 그리고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다 1977년에 연주자 생활을 접고 선생이 되기로 한다. 다큐는 그가 몇십년 만에 다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앞 영화에서 맥주 냄새와 땀 냄새가 났다면 이 영화에서는 구석에 누가 향이라도 피운 듯 고고한 향이 난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경외한다. 음악에 담긴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 같다. 마치 수도승처럼. 주변에 많은 뮤지션이 이 다큐를 보고 감동했고 나 또한 그랬다. 어느 정도냐면 영화를 본 그다음주에 중고 영창피아노를 집에 들이고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을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여기다. 그는 왜 무대를 등졌을까. 그가 닫아버린 상자는 무엇이고 왜 닫아야만 했을까.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번스타인은 음악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 무대의 계단에서 내려왔다. 메탈리카는 10만명의 관객이 기다리고 있는 무대 계단에 다시 제대로 오르기 위해 그 야단법석을 피웠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너무 사랑하기에 음악에 잡아먹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 말미에 드러머 라스 울리히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성공했어! 건강한 마음으로 이렇게 공격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단 걸 증명했어!” 그는 진심으로 기뻐보였고 반도의 인디 뮤지션인 나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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