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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6411> 민환기 감독과의 만남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21-10-21

그는 시대와 겨루려 했던 사람이다

<노회찬6411>은 고 노회찬 의원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육성으로 시작한다. “남은 인생을 어디에 바쳐야 할까. 대중과 함께해야겠다, 자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소외된 그런 노동자들과 함께해야겠다, 라고 거기서 결심을 완전히 굳혔습니다.” 그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결심을 굳힌 곳은 어느 조용한 산속 암자였다.

민환기 감독은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남긴 여러 방송 인터뷰와 기록 영상,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정치인 노회찬이 평생을 갈고닦아온 ‘진보정치’의 궤적을 한편의 영화로 옮겨 담았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순간을 들춰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회찬6411>은 정치인 노회찬의 일대기가 곧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패션업계의 노동 행태에 맞선 젊은이들을 다룬 <미스터 컴퍼니>, 제주 최초 여성 도지사에 도전한 고은영씨에 관한 영화 <청춘 선거> 등을 연출했던 민환기 감독에게서 <노회찬6411>의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었다.

- 연출자로서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무거운 소재와 주제가 담긴 작품이다.

= KBS측에서 관련 영상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명필름쪽에 제안했다. 당시 나는 명필름과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지체되면서 이 영화를 작업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 영화 제목 표기가 특이하다. 이름과 숫자 사이 간격을 붙여 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땐 <노회찬, 6411>이었다. 쉼표와 띄어쓰기에 어떤 의도를 담았나.

= 제목에 대해서는 ‘노회찬재단’과 상의를 했다. 노회찬이라는 상징성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견이 없었다. ‘노회찬’과 ‘6411’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보이도록 표기한 것 같다. 영어 제목은 내가 <The Man with High Hopes>라고 지었는데 노회찬이란 사람과 어울리는 또 다른 제목이라 생각했다. 한글 제목과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노회찬은 그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야심가였다. 야망이 있었고 동시에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정치인이 야심을 실현하려면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데, 지지를 얻기 위한 행동을 여느 정치인과는 조금 다르게 했던 것 같다.

- 구성과 편집을 자제하고 기록 영상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으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노회찬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오랫동안 품고 살았던 마음을 오롯이 담기 위한 목적이었나.

= 연출자의 의도가 조금 더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영상이 거의 없었다. 영상 소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취사 선택이 가능하니 연출자의 의도를 전달하기 수월하다. 이번 영화의 소스 영상들은 대부분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은 것들이었다. 생전에 노회찬 의원이 많은 영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의 인터뷰가 곳곳에 등장하는 이유도 노 의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록 영상과 인터뷰를 가지고 내가 고민한 지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구조였다.

- 인간 노회찬의 개인적인 일상이 드러나는 자료는 없었나. 과거 <씨네21>과 나눈 인터뷰를 찾아보면 대단한 영화광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런 사적인 모습이 좀더 담겼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철저한 분이었다. 남긴 영상 자료가 없다. 그가 평생 취미로 삼았던 첼로를 켜는 영상도 없다. 방송에 출연해서 남긴 연주 장면이 전부다.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당시에는 3시간짜리 판본이었다는데 127분짜리 극장 상영 버전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 3시간 버전에서는 노 의원을 지금보다 더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 운동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증언을 남긴 사람들을 일종의 캐릭터로서 끌고 가 노 의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표정을 영화적으로 담으려 했던 것 같다.

- 영화의 시작과 끝을 어떤 영상 소스를 사용해서 열고 닫으려 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했다. 록 사운드가 깔리는 현란한 오프닝 영상 다음에는 노회찬 의원이 청년 시절에 한달 동안 기거했던 암자로 들어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도 그 암자의 나무에서 멈춘다.

= 그는 시대와 겨루려 했던 사람이다.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개인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시대의 분위기와 시대의 결정이란 것은 개인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인데 노회찬이 다른 정치인과 달랐던 점은 그가 과거에 고독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고 그것이 대의보다는 개인적인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게 제일 중요했던 사람. 원칙이나 접근방식이 성공보다 중요했던 사람. 어떻게 하면 세상의 다른 생각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암자에 기거했던 한달이란 시간도 상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책을 들고 홀로 고독하게 말이다. 그의 죽음도 그렇게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그런 면을 담으려 했다.

- <노회찬6411>을 연출하면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 2008년 진보신당을 창당해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원구 병에 출마했을 당시 노 의원이 시민들과 만나는 장면은 방송에 쓰였던 상영본으로 원본이 없다. 지하철역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그 순간에 노 의원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원본이 있었다면 더 길게 썼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마이너한 진보운동을 하던 정치인이 처음으로 시민들과 만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모두가 나름의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고 복잡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시민들의 솔직한 마음을 확인한 선거였다. 비록 선거에서는 졌지만 정치인 노회찬에게는 희망을 안겨준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유세 버스 위에서 눈물 흘리던 노 의원의 모습을 보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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