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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염방' 렁록만 감독, 배우 왕단니·유준겸
이주현 2021-10-28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을 기억하라

령록만 (사진제공 Edko Films Ltd.)

홍콩의 전설적 가수이자 배우 매염방(1963~2003). 에드코 필름의 빌 콩이 제작하고 <콜드 워>(2012)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렁록만 감독이 연출한 매염방의 전기영화 <매염방>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지난 10월15일 부산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영화는 매염방의 삶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들을 짚으며 한명의 여성으로서, 당당하고 진취적인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담아낸다. 1982년 <TVB> 주최 신인가요제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해 매력적인 중저음의 음색과 과감한 스타일로 독보적 길을 개척한 뮤지션 매염방의 이야기는 사랑의 실패로 인한 상처, 폭력 사건에 휘말려 해외로 도피해야 했던 암흑기, 무명 시절부터 소중한 우정을 이어온 장국영과의 이야기 등으로 채워진다.

영화를 떠받치는 두축은 매염방과 홍콩이다. 영화에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홍콩의 모습이 담겨 있다. 렁록만 감독은 “홍콩의 지난 시절을 보여주는 게 우리의 큰 숙제였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홍콩의 한 영화평론가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이 매염방이라면 남자주인공은 홍콩이다.’ 영화 제작진의 생각을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매염방>의 홍콩 개봉을 앞두고 렁록만 감독과 주연배우들을 화상으로 만났다. 매염방과 장국영 역할은 모두 이제 막 영화 경력을 쌓기 시작한 신인배우 왕단니와 유준겸(테렌스 라우)이 맡았다. 영화가 설득력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두 배우의 몫이 크다. 렁록만 감독과 배우 왕단니·유준겸이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 보내온 매염방과 장국영 그리고 홍콩의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 매염방과 장국영이라는 특별한 캐릭터를 연기한 소감은.

유준겸 <매염방>은 내게 좋은 시작이 되어준 영화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장국영과 매염방 선생님이 활동했던 시절을 잘 알지 못했는데,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모습을 많이 찾아봤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아갈 수 있어 소중한 작업이었다.

왕단니 촬영 들어가기 전 6개월 동안 춤, 노래, 연기 연습을 했다. 제대로 연기 훈련을 받은 셈이라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기초를 다졌다는 생각이 들고 배우로서 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 임하는 과정에선 사명감이 제일 중요했다. 매염방 선생님의 정신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

- 영화에는 다양한 매염방의 모습이 담겨 있다. 초반엔 자수성가한 스타로서의 매염방, 중간에는 큰언니 매염방, 후반엔 홍콩의 딸 매염방의 모습이 뭉클하게 그려진다.

렁록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매염방의 한평생, 그 많은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 안에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얘기한 세 가지 모습, 세 가지 단계는 매염방뿐만 아니라 많은 홍콩 사람들이 함께 겪은 일이라 생각한다. 즉 1960년대에는 홍콩 사람들 다수가 자수성가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홍콩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엔 매염방도 큰언니가 되어 있었고, 각자의 영역에서 노력해온 홍콩 사람들 역시 성과를 얻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의 매염방은 홍콩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자선사업에 힘을 보탰고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 홍콩의 딸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그에게 그만큼의 존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실제로 침사추이에는 매염방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매염방뿐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온 모든 홍콩 사람들이 다 함께 겪은 여정이 아닌가 싶다.

- 큰형님의 서사는 많았지만 큰언니의 서사는 그간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젊은 여성 관객은 당당하고 진취적이며 품 넓은 큰언니 매염방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까 싶다.

렁록만 빅 시스터의 이미지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매염방이 언제 진정한 큰언니가 되었는지, 그 시기가 언제인지 리서치를 많이 했다. 매염방 역시 승승장구만 했던 건 아니다. 그 또한 삶의 역경을 겪는데, 영화에서 집중했던 역경과 전환기는 불미스러운 일로 태국으로 도피해야 했던 시절이다. 태국에 머물다가 홍콩으로 돌아온 뒤 매염방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도 그런 내용의 대사를 담았다. “이제 아티스트로서의 모습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그때부터 매염방은 공익사업과 자선사업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 마음속에서 진정한 언니, 진정한 롤모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왕단니 (사진제공 Edko Films Ltd.)

- 무엇보다 캐스팅이 중요한 영화다. 지원자가 3천명이 넘었다던데,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렁록만 매염방 역은 진정성을 제일 중요하게 봤다. 매염방도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에 매염방을 연기하는 배우도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을 본 왕단니 배우가 첫 리허설을 하러 왔을 때 현장의 스탭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과거 매염방이 현장에 들어올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정말 그런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리허설을 시작했는데, 왕단니가 매염방의 노래를 부르자 현장의 많은 스탭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왕단니 배우의 진정한 마음을 본 것 같았다.

왕단니 진정한 마음으로 여러 번의 캐스팅 리허설에 임했는데 감독님이 그 부분을 알아봐줘서 감사하다.

렁록만 장국영 역할 또한 매염방 못지않게 캐스팅이 중요했다. 캐스팅 시작 전에 스탭들에게 홍콩에서 잘생긴 사람으로만 데리고 오라고 얘기할 만큼 장국영 캐릭터는 외모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요구가 있었다. 당시 장국영은 홍콩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준겸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장국영의 예술가적 기질, 감정 기복이 심하기도 한, 섬세하고 솔직한 모습이 그에게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다. 홍콩 사람들의 마음속에 장국영은 소중한 인물로 남아 있다. 그러니 관객은 눈을 부릅뜨고 이 사람이 잘하나 못하나 지켜볼 것이다. 유준겸이 기대 이상으로 연기를 잘해줘 고마웠다.

유준겸 감독님이 홍콩의 최고 미남들로만 오디션을 봤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기 힘들 것 같다. (웃음) <매염방>이라는 영화 덕분에 스스로를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연기하면서 감독님이 ‘지금 딱 장국영의 아티스트적 면모가 보이는 것 같아’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이런 모습이 내게도 있구나’ 하면서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장국영이 공연에서 <我>라는 곡을 부르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사람들은 사랑할 줄은 알지만 스스로를 사랑할 줄은 모른다. 이 노래를 듣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 말이 인상 깊었다. 장국영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했으며 그래서 큰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유준겸 (사진제공 Edko Films Ltd.)

- 두 배우의 기억 속 매염방과 장국영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만의 매염방, 나만의 장국영을 창조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왕단니 리서치를 많이 했다. 공연, 뮤직비디오, 인터뷰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매염방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격과 말투를 알 수 있었다. 얘기할 때는 언제나 분명하고 당당했다. 비록 매염방이 슈퍼스타로 활동하던 시대를 놓쳤지만, 자선사업에 힘쓰고 사회에 공헌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후반부 공연 장면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매염방은 멈추지 않는 사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염방이 어떤 사람인지 마음으로 먼저 안 다음에 연기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준겸 나 역시 장국영의 영상 중에서 인터뷰가 가장 도움이 됐다. 인터뷰를 보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장국영이 스스로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몸짓, 말투, 눈빛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단체로 공연할 때도 장국영에게 포커스가 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잘 캐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장국영은 음양의 기운 중 음의 기질이 강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깨지기 쉽고 약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마저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약한 모습,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마저 자신의 모습이라고 보여주는 솔직함도 인상 깊었다. 사실 감독님이 우리에게 자주 했던 얘기는 무조건 모방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단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눈빛이나 말투, 몸짓을 통해서 이 역할을 재창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화에 임했다.

- 실제로 매염방과 장국영이 등장하는 과거 영상이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렁록만 과거의 실제 영상을 편집해 넣는 게 원래의 계획은 아니었다. 촬영 끝나고 후반작업을 하는데 편집기사가 제안했다. 전기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영상을 영화에 넣음으로써 사람들이 매염방과 장국영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특별한 감정을 더 잘 느끼게 된다면 그런 방식도 좋을 것 같았다.

- 지금 봐도 파격적인 매염방의 패션을 공들여 되살려냈다.

렁록만 매염방의 패션 센스는 특별했다. 당시 의상을 담당했던 패션 디자이너 에디(영화에선 고천락이 연기한다)와 함께 매염방은 홍콩의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다. 홍콩 사람들은 매염방을 여러 이미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백변(百變) 매염방’이라 부른다. 매염방은 진취적이고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아티스트라는 이미지가 있고, 그것은 매염방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매염방의 레전드 의상은 훨씬 많지만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 의상만 영화에 담았다.

- 만약 매염방 혹은 장국영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렁록만 이 질문에 관해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을 짐작하는 것보다, 그저 먼 훗날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칭찬이든 질책이든 다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다.

유준겸 내 생각엔 두분이 유쾌하게 감독님을 놀리지 않을까? (웃음) 렁록만 감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네가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고 장난칠 것 같다. 아끼는 후배 대하듯이. 매염방과 장국영, 두분의 인생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일부를 담은 거니까. 무척 기특해하고 기뻐할 것 같다.

왕단니 코로나19로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이므로 이 영화를 통해 선생님의 긍정적 에너지가 전해지지 않을까 싶고, 그런 점에서 매염방 선생님도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 정말 나중에 어쩌다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선생님을 한번 안아보고 싶다.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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