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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F #8호 [인터뷰] '출마선언' 토마스 폴로 감독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10-29

대의민주주의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토마스 폴로 감독은 아르덴 지방의 소도시 레뱅 시장 선거에 배우 로랑 빠뽀를 출마시키는 과감한 계획을 세운다. 본격적으로 선거 캠프를 꾸리고 선거 운동에 뛰어들면서 배우가 정치인인 척하는 것인지, 혹은 그가 정말로 정치인이 되어버린 것인지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설정만 놓고 보면 극적 상황을 유도하기 위한 용감한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제작진의 연극은 민주주의를 겨냥한 거대한 정치 실험으로 변모해간다. 첫 장편영화를 만든 토마스 폴로 감독을 만나 보다 내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어떻게 이런 기획을 추진하게 됐나.

= 처음에는 아주 클래식한 다큐멘터리를 생각을 했었다. 준비 과정에서 다이렉트 시네마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개입하는 영화를, 보다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작은 규모의 소도시에서 열리는 지방 선거에 실제로 출마한다면 프랑스 민주주의 선거 체계를 분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페르디난드 플라메, 밀라노 알폰시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이 영화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 1번 국도>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그 영화에서 염세적 구 혁명주의자 닥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미국 1번 국도 주변에 있는 실제 사람들을 만난다.

- 아르덴 지방의 소도시 레뱅을 무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처음엔 인구 6만 명 정도의 따이(tailly)라는 소도시를 떠올렸다. 지금도 아버지가 살고 있고 할아버지가 30년 동안 실제 시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 너무 잘 아는 곳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민주주의보다는 가족들이 다른 지역민과 맺고 있는 사회관계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일반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논하기 위해 그보다 규모가 큰 레뱅이라는 도시를 선택하게 됐다. 레뱅은 주변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골짜기 밑에 강이 모여드는 분지가 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작은 왕국 같다. 산업적으로 발전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40년간 프랑스 좌파 정당이 항상 집권했기 때문에 정치활동과 노조 행위도 활발했다.

-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모호하게 섞인 작품이다. 촬영 과정에서 주민들이 이 상황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나.

= 말씀하신 부분 때문에 처음부터 명확한 규칙을 세우고 들어갔다.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로랑 빠뽀는 배우이며, 이 사람이 진짜 시장으로 선출되면 시장을 그만둔다는 점을 여러 루트를 통해 알렸다. 우리와 함께 놀면서 연기를 하자고, 영화적이면서 어쩌면 위험할 수 있는 정치 게임을 즐기자고 주민들을 초대했다.

- 영화는 대의민주주의가 과연 최선인지 질문을 던진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 영화를 통해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같은 개인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과연 ‘민주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만큼의 시스템을 우리가 실제로 확보하고 있을까? 어쩌면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출마 선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약속을 하지만 실제 자신들이 대표해야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데, 로랑 빠뽀는 무엇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주민들이 각자의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환상을 깨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코로나19 때문에 이 실험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 로랑 빠뽀가 진짜 시장으로 당선됐으면 어땠을까.

=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것 같은데.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집필할 땐 그런 상상을 하면서 걱정하기도 했는데 실제 선거 운동을 경험하고 현실 정당의 모습을 지켜보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오히려 초반에 가졌던 불안감을 가볍게 떨쳐낼 수 있었다.

- 아무래도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권력이 강한 나라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의 현 정치 상황은 어떤가.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 영화는 항상 그 시대상을 건드릴 수밖에 없고 <출마선언>에도 현재 프랑스 정치가 많은 부분에서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분배의 불평등, 대통령 중심의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불만을 갖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이 나온다.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싶었다.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너무 오래 지속해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거다. 예를 들어 고대 아테네 시대처럼 제비뽑기를 통해 뽑힌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고 그들의 지혜를 모을 수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출마선언>은 당신의 첫 번째 연출작이다. 차기작으로 어떤 소재를 고민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 있는 어느 성벽을 살펴보고 있다. 1980년경 독일에 의해 건축됐던 유물인데 그 주변에 원숭이 등 유인원을 연구하는 곳, 감옥, 그리고 공원이 생겼다. 옛 문물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