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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것, 나의 스토리텔링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1-12-08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유태오가 돌아왔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자신의 첫 영화 <로그 인 벨지움>과 함께.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벨기에의 한 호텔에 고립됐던 유태오는 두려움과 무력감에 침체되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주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카메라에 담긴 1년의 시간을 토대로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이 탄생했다. 시나리오부터 엔딩곡 <Overwhelming>까지 <로그 인 벨지움>에는 그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음악과 연기, 영화 모두 스토리텔링의 영역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유태오를 보며, 배우라는 직업으로 한정할 수 없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실감했다. “아직 들려주지 못한 150여개의 멜로디가 있고, 여전히 전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배우이자 감독 유태오. <로그 인 벨지움>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리어 아직 모호하게 남아 있는, 유태오라는 세계의 또 다른 영역이 궁금해졌다.

배우로서 출연한 작품이 아닌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가 개봉하는 기분은 사뭇 다를 것 같다.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로 민낯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웃음) 그만큼 관객과 더 친밀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태오닉 모’(TeoNik Mo)라는 영화사를 차렸다. ‘태오’와 팬클럽 애칭인 ‘모모’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가 담겼나.

처음부터 태오와 니키, 모모를 넣고 싶었고 그 셋을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Movie, Movement 등의 의미도 함께 담았다.팬데믹으로 벨기에 호텔에 갇히면서 <로그 인 벨지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몇년간 바쁘게 달려왔고 2주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도 있었을 텐데, 촬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 팬데믹이 터졌을 때 모든 스탭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국경이 폐쇄되고 비행기표가 취소된 채 혼자 호텔에 머물면서 많이 외롭고 무서웠다. 그때 마침 히스 레저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런 유명한 배우는 사람들이 아카이빙된 영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주는데 (만약 내가 여기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싶었다. 그때 막 드라마 <머니게임>이 방영되던 차였고, 특별히 인지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였다. ‘내가 여기 있다’고 기록하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고, 그걸 편집하다보니 영화가 됐다.

평소 셀프캠으로 영상을 많이 찍는 편인가.

그렇진 않다. 하지만 이동식 삼각대와 조명, 배터리와 핸드폰은 항상 챙겨 다닌다. 혹시 오디션 제의가 들어오면 바로 찍어서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지난 5~6년간 계속 스스로를 찍고 있었던 거다.

원래 연출에 대한 꿈이 있었나.

직업적으로 봤을 때 연출자는 디렉터, 감독이지 않나. 그런 거라기보다 스토리텔링에 욕심이 있다.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도 결국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어서였다. 미래에는 그게 어떤 직업으로 연결될지 모르겠지만, 스토리텔링은 계속 하고 싶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과 편집, 음악과 연기까지 모든 걸 혼자서 진행했다. 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자유로웠을 것 같은데.

육체적으론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외로움, 두려움,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정말 정신없이 찍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재밌게 보여주려면 어떤 구성이 있어야 하니까 대략 머리에 구성을 그려놓고 계속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찍은 거다. 혹시나 뭔가 걸리지 않을까 하면서. (웃음)

가장 고민이 된 지점은 무엇이었나.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로케이션과 미술. 고립된 상황에서 한계가 있으니까 그 안에서 최선을, 최대한을 뽑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연기의 연결에도 엄청 신경 썼다. 내가 1인2역을 맡았으니 한 캐릭터를 더 부각시키려면 시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런 기술적인 면들을 공부했고, 내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1인2역 연기의 경우 대사나 상황을 디테일하게 준비한 것 같던데 혹시 중간에 즉흥적으로 연기한 부분도 있었나.

두 캐릭터를 한 프레임에 넣지 못하니까 즉흥연기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듯한 판타지를 보여주는 게 숙제였다. 그래서 사전에 시나리오를 적어가며 신경을 많이 썼다.

평소 상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혹시 영화처럼 또 다른 자아와 대화하는 상상도 해본 적이 있나.

자아와는 매일 소통하는 것 같다. 배우자가 옆에서 보고 혼자 중얼거린다고 한 소리 한다. 스스로에게 뭘 컨펌받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한 생각을 말하면 그것에 관해 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내가 계속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말하다보니 좀 이상한 사람 같네. (웃음)

그럼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연출했다기보다 평소의 모습이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까.

그렇진 않다. 내가 또 다른 나를 실제 시각화해서 객관적으로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게 나로서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 다른 자아와 이야기를 나눌 때 영어, 독일어, 한국어로 대화한다. 영어의 경우 오디션을 볼 때, 독일어는 과거의 나와 이야기할 때, 한국어는 미래와 꿈에 관해 이야기할 때로 각기 상황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릴 때부터 여러 언어의 영화를 보며 자랐다. 그중엔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도 있었고, 가령 왕가위 감독 작품의 경우 독일어로 더빙된 버전을 봤다. 정체성이 분리된 채 영화를 봤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들이 내 감수성을 건드린다. 돌이켜보면 여러 언어를 사용한 작품은 있어도 한 언어는 미래, 또 다른 언어는 현재를 상징하게끔 설정해 표현한 영화는 못 본 것 같다. 다국의 문화를 경험한 나에게 언어는 무엇이며 어떤 상징성이 있고, 또 그게 날 어떻게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그 모든 걸 포함한 것이 나라고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편집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어떤 것이었나.

현실 세계에서 상상의 세계의 경계로 넘어가는 장면이 만족스러웠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와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갔구나’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성공한 것이지 않나. 사람들이 나의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에 공감해줄 때 굉장히 만족감을 느꼈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첫 데뷔작을 자평한다면.

관객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 것을 보여줬다는 데에 만족한다.

별점을 매긴다면 5개 만점에 몇개를 주고 싶나.

★★★. 미술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첫 영화치고 진솔하게 소통했다는 점에서 3개까지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생각해본 차기작도 있나.

작품으로 접근한다면 스토리텔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항상 많다. 매일 차를 타고 오갈 때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일단 배우로 돌아왔으니 연기에 더 집중을 하고 싶다. 나중에 내 이야기가 무엇으로 꽃피울지는 나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Past Lives> 촬영차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 현장은 한국 현장과 어떻게 다르던가.

촬영은 뉴욕에서 진행했고, 좋은 크루들을 만나 좋은 독립영화를 찍고 왔다. 현장에 가니 <Past Lives>를 ‘전생’이라고 표기해놨더라.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5~6년 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의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지만 거품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최근엔 그 변화의 흐름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다른 인터뷰에서 쉴 때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 주로 ‘내가 어떤 캐릭터를 해야 신선할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로그 인 벨지움>도 갑작스레 주어진 휴식에서 시작된 작품이고. 삶과 일의 경계를 뚜렷이 구분 짓지 않는 편인가.

그렇다. <Past Lives> 때도 다른 배우들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배우자도 아티스트다 보니 나도 나와 내 삶을 아티스트로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스토리 차원에서 보면 연기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다. 다른 지휘자를 위해 좋은 악기가 되어주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내 악기를 통해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꿈에 관해 묻고 싶다. 영화에서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했는데 현재도 그런가. 요즘 유태오가 꾸는 꿈이 있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내 개인 삶에 대한 꿈은 꾸지 않는다. <Past Lives>를 준비할 때는 내가 맡은 인물에 관해 꿈을 꿨고, 이제 다음 작품인 넷플릭스 시리즈 <연애대전>을 준비하면서 남강호에 관해 꿈꾸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게 내 인생이고, 내 운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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