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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처 알려지지 않은 해방 이후부터 90년대 이전의 시간들 '보드랍게'

“김순악, 김순옥, 왈패, 사다코, 데루코, 요시코, 마츠다케, 위안부, 기생, 마마상, 식모, 엄마, 할매, 미친 개, 술쟁이, 개잡년, 깡패 할매, 순악씨….”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가 불려온 이름들의 호명과 함께 시작된다. 활동가들은 할머니의 무뚝뚝한 성격을 기억하는 한편, 그같은 언행 뒤에 숨어 있는 깊은 슬픔과 아릿한 설움 또한 헤아린다. “내 이야기해가지고 ‘어이구 그랬구나, 하이구 참 애묵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할머니의 생전 구술 증언의 한 구절에서 비롯된 영화의 제목은 그의 삶을 부드럽게 응시하고 따듯하게 어루만지려는 영화의 태도를 드러낸다. 1928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944년 16살에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만주의 위안부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유곽과 기지촌, 식모살이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두 아들을 얻었지만 혼자가 되었고, 말년에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과 교류하며 아름다운 압화 공예 작품들을 만들었다.

<보드랍게>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해방 이후부터 90년대 이전의 미처 알려지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간 미디어가 자주 다뤄온 위안부 피해 ‘소녀’와 투쟁하는 ‘할머니’ 사이의 ‘침묵의 시간들’은 개인의 삶을 무참히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회적 흉터들을 환기한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몰입도를 높였고, 여성 활동가들의 증언록 낭독을 통해 기록 너머의 질문을 던진다. <마이 플레이스>(2013), <파란나비효과>(2017), <퀴어053>(2019) 등의 다큐멘터리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생생하게 포착해온 박문칠 감독의 연출작으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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