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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윈터바텀 (Michael Winterbottom)

1961-03-29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2

/

네티즌6.9

기본정보

  • 다른 이름마이클 윈터보텀;마이클 윈터보톰; 마이클 윈터바텀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61-03-29
  • 성별

소개

<b>잉그마르 베르히만과 빔 벤더스를 통해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다!</b>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1961년 3월 29일 영국의 랭커셔의 블랙번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브리스톨 유니버시티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TV 분야에서 편집자, 드라마, 영화 연출 경력을 쌓는다. 1988년 잉그마르 베르히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비로소 영화의 매력에 눈을 떴으며 빔 벤더스, 켄 로치, 피터 그리너웨이, 프랑소와 트뤼포, 마틴 스콜세지 등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빔 벤더스의 로드무비 <도시의 앨리스>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영화. 윈터바텀이 영화작업에 뛰어드는데 동기를 제공한 베르히만은 이후에도 일종의 역할모델로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베르히만은 제작비를 투자받는데 연연하지 않고 항상 적은 예산으로 작업했지만 가족처럼 같은 스텝들과 꾸준히 일했고 직접 쓴 시나리오로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 거장이다. 윈터바텀은 자신의 꿈도 훌륭한 스텝들과 함께 오래오래 많은 영화들을 찍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소수의 스텝들과 적은 예산을 가지고 지난 11년 동안 12편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부지런한 감독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를 영국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b>예측불허. 소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에너자이저!</b>

베르히만이 일관된 주제를 평생 변주하는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면, 윈터바텀은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영화화하는데다가 각각의 작품의 완성도도 나무랄 데가 없다. 도저히 다음 작품을 예측할 수 없는 그의 영화들은 항상 새롭고 도발적이면서도 새로운 미학적 성취를 향한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1995년 앤드류 이튼과 함께 레볼루션 영화사를 설립한 이후 처음으로 만든 영화 <버터플라이 키스>는 퀴어 시네마와 포스트 느와르의 관습을 차용한 로드무비로 레즈비언 연쇄살인범의 무용담을 통해 섬뜩한 광기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토마스 하디의 고딕 소설을 변형한 빅토리아 시대의 비극적 가족 이야기 <쥬드>,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웰컴 투 사라예보>, 또 한번 하디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서부영화 <클레임>을 발표했으며, 조이 라이더와 뉴 오더와 같은 영국 펑크 음악의 인기밴드들을 산출한 전설적인 클럽 하시엔다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영화 <24시간 파티 피플>을 통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감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b>관용과 자비의 정신을 모토로 한 2003년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
<인 디스 월드>를 통해 세계적 거장으로 도약하다</b>

9.11 사태 이후 심각하게 냉각되는 국제사회에 대한 우려 속에서 영화를 통해 더 큰 인류애로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이룰 것을 꿈꾸며 관용과 자비의 정신을 모토로 내건 제 53 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비롯한 3개 부문을 수상한 <인 디스 월드>는 윈터바텀을 명실공히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린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실제 정사 장면과 그 수위로 인해 포르노 논란에 휩싸인 영화 <나인 송>으로 화제를 모았던 윈터바텀. 그의 현란한 필모그래피는 이제 대니 보일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감독이라는 평가를 뛰어넘어 21세기가 낳은 첫 번째 세계적 거장이라는 평가로 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