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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Kim Sooyong)

1929-09-2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5.9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9-09-23
  • 사망2023-12-03
  • 성별

소개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4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 근무(국군 홍보영화 연출)
1958년 극영화 <공처가>로 데뷔. 이후 100여편이 넘는 극영화 연출.
1983년 청주대 예술대 교수
1986년 <허튼소리>로 검열파동 격은 후 잠정은퇴

# 대표작 <갯마을> <화려한 외출> <중광의 허튼 소리> <토지>

한국영화 감독들이 대개 그렇지만 김수용은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그가 ‘튀는’ 감독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척 많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수용은 109편의 영화를 찍었으며 그중에는 수작도 있고 태작도 있다. 그러나 그는 60년대 한때 ‘한국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란 별명을 들을 만큼 한국영화 형식에 새로운 지평을 도입한 장인이었다. 60, 70년대에 김수용이 만들었던 모든 영화에는 팍팍한 시대의 긴장을 이겨내는 생기와 재기, 그리고 창의성이 있었다. 29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김수용은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58년 흑백영화 <공처가>로 데뷔했으며 6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김수용은 한국영화에 세갈래 길을 터놓았다. 한국영화가 신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는 한국과 서양의 근대문학에서 원작을 빌려와 타예술에서나 추구하는 것이라고 봤던, 인간과 사회가 만나는 모습을 한국영화 화면에 잡아냈다. 오영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갯마을>(1966),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원작인 <안개>(1967), 차범석의 희곡을 영화로 만든 <산불>(1967) 등을 비롯해 김유정, 김동리 등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영화로 옮겨졌다. 김수용의 안내에 따라 60년대 한국영화는 ‘문예영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예영화라는 명칭에 문학에다 예술적 향취를 적당히 입힌 영화라는 비아냥거리는 의미가 숨어 있다면 김수용의 어떤 영화는 그 함정에서 벗어났다. <안개>는 극적인 경제성장의 문턱에 접어들면서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60년대 한국사회의 어둡고 권태로운 풍경을 행동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좇는 세련된 감수성으로 담아냈다.

김수용이 두번째로 터놓은 길은 한국영화의 현대화. 72년 유신이 시작되고 한국영화가 몰락의 길로 치달았던 암울한 시대에 김수용은 <안개>에서 시도했던 영화표현의 현대적 방법론을 조금 더 유려한 방법으로 치고나갔다. 이야기를 싣는 극적 도구로 편집과 촬영과 음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얘기인지 선명히 가닥이 잡히지 않아도 인물의 내면풍경과 사회의 접점을 유연하게 잡아내기 위해 딱 부러지는 이야기는 없지만 편집과 촬영의 효과를 최대한 추구하는 모더니즘영화의 실험을 추구한 것. 73년에 제작됐으나 검열 때문에 창고에 묻혀 있다가 77년에 개봉된 <야행> (1973)과 역시 같은 해에 개봉된 <화려한 외출>(1977)은 이야기의 인습적인 흐름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들어간 편집과 촬영으로 한국영화의 표현영역을 한 차원 넓힌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70년대의 내 영화에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시도 있다. 적어도 몇장면에는 시가 있다. 나는 그 당시 더이상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지겨웠다. 그래서 편집과 촬영과 음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김수용이 곧이곧대로 자기의 내부에 숨어 있는 현대영화의 감수성을 풀어놓기엔 당시의 한국사회가 너무 팍팍했다. 김수용은 항상 가벼운 흥행영화와 작가영화를 병행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김수용은 세번째로 터놓은 길에서 때로는 누구도 무서워 말하기 꺼리는 한국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냈다. 81년 작품인 <도시로 간 처녀>(1981)는 버스안내양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묘사했기 때문에 검열에서 큰 상처를 입었으며 항상 장인적인 감성을 잃지 않았던 김수용은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극의 끝은 87년 작품인 <중광의 허튼 소리>(1987). 중광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10여군데가 잘려나갔고 감독은 그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잠정은퇴의 길을 택했다.

김수용은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영화에 수많은 수작 목록을 보탰지만 <중광의 허튼 소리> 이후에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일본 자본으로 만든 <사랑의 묵시록>(1995) 이후 그는 저예산으로 <침향>(1999)을 연출했다. 세월의 흐름에 묻혀 그의 이름은 퇴색해가고 있지만 그가 60, 70년대에 만든 몇몇 영화는 한때 전성기 한국영화의 뛰어난 유산으로 남았다.
- <씨네21 영화감독사전>(2002)

1988년 예술원회원
1995년 <사랑의 묵시록>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