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1946-01-2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6

/

네티즌7.7

기본정보

소개

데이비드 린치는 컬트 영화감독에서 주류 영화감독으로 부상한,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미국영화의 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감독이다. 린치의 장편영화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가 77년 가을 뉴욕의 시네마 빌리지 영화관에서 개봉됐을 때 첫날 관객수는 25명, 둘째날은 24명이었지만 81년까지 꾸준히 장기상영했고 급기야 심야극장의 인기 상영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레이저 헤드>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소수의 지지를 받던 린치는 <엘리펀트 맨 The Elephant Man>(1982)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면서 단박에 주류영화의 복판에 진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90년 린치가 연출한 텔레비전 시리즈 <트윈 픽스>는 미국 전역에서 굉장히 성공했다. 평론가 짐 호버만이 “70년대에 대학생들이 심야극장에 가서 <이레이저 헤드>를 봤다면 90년대에는 텔레비전으로 토요일 저녁에 <트윈 픽스>를 본다”고 평했던 대로 린치는 비주류의 컬트를 대중문화의 유행으로 만들어놓은 괴력의 소유자다.

린치는 46년 미국 몬태나주의 미술라에서 과학자 아버지와 사고가 개방적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 린치는 보스턴예술학교에 진학했지만 낙제했으며 유럽에 갔다가 열흘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버지니아로 가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취직한 지 며칠 만에 해고당하면 다른 직장에 취직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필라델피아로 가서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를 다녔다. 이때부터 린치는 처음으로 흥미를 갖고 68년 <알파벳>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다. 대학을 나온 후에는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거기서 16mm 단편영화 <할머니 The Grand-mother>(1970)를 찍었다. 그러고는 대도시를 무대로 기형아를 낳은 젊은 부부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궁리하다가 71년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원래는 6주 안에 촬영을 마치려고 했지만 제작기간이 5년 넘게 걸렸고 77년에 가서야 영화를 개봉할 수 있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이레이저 헤드>다.

두번 보기 힘든 내용과 이미지로 채워진 <이레이저 헤드>는 개봉 당시 언론의 악평에다 흥행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심야극장에서 인기있는 컬트영화가 됐다. 평범한 듯 보이나 그 안에서 솟구치는 이상향의 세계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린치의 재능에 주목한 감독이자 제작자인 멜 브룩스는 린치를 할리우드로 초청해 <엘리펀트 맨>의 연출을 맡겼다. 이 영화는 19세기에 실존했던 존 머릭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역시 기괴한 것을 사랑하는 린치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존 머릭은 끔찍한 외모를 지닌 기형적인 인간이지만 다른 어떤 인간보다도 마음이 지순하다. 그러나 존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잔인한 대접을 받으며 죽어간다. 린치의 다음 작품은 SF영화 <사구 Dune>(1984)였다. 스파이스라는 물질을 둘러싸고 미래세계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다룬 영화였는데 내용도 어려웠고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86년 작품 <블루 벨벳 Blue Velvet>(1986)은 <이레이저 헤드>의 계보를 이어 평화로운 미국의 어느 소읍을 배경으로 미국 중산층 내부의 음침하고 병적인 일상을 담았다. 그리고 린치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89년에 제작을 시작한 <트윈 픽스 Twin Peaks> 텔레비전 시리즈는 공전의 히트였고 90년에는 ‘컬트의 왕’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1990)이 칸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사회의 변두리에서 빙빙 돌며 악취미로 대중을 공격하는 컬트 린치는 중산층의 잘 정돈된 행복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미국사회의 집단 무의식 속에 짓눌려 있을 것 같은 악몽의 이미지를 곧잘 끌어와 영화로 만든다.

악몽의 영화적 테제는 <로스트 하이웨이 Lost Highway>(1997)에서처럼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없애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는 파격적인 이야기 실험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평론가 조너선 로젠바움은 후기 린치의 영화가 “엘비스 프레슬리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옛날 문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체계적인 유희를 즐기며, 컬트영화의 공격성은 많이 누그러뜨렸다”고 질책했지만 그렇다 해도 린치의 영화는 인생이 아무 문제가 없고 평온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대다수 할리우드영화의 멋과는 다른 재미를 추구했다.
특히 중산층의 정신병적인 심리적 긴장을 읽어내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데이비드 린치가 현대 미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영향력은 평론가 짐 호버만의 논평으로 잘 요약된다. “린치는 일부 비평가들에게 스필버그의 달콤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책을 제시했다. 지식인들은 스필버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황당함을 린치에게서도 느꼈다. 그러나 스필버그 식의 환상은 아니다. 린치는 스필버그적 세계관에 대한 분명한 해독제를 제공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