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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1939-04-07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8.2

/

네티즌7.9

기본정보

  • 원어명Francis Ford Coppola
  • 다른 이름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9-04-07
  • 성별

소개

코폴라만큼 심한 부침과 영욕을 경험한 사람도 드물다. 그의 전성기는 70년대였다. <대부>로 영화사의 흥행기록을 깨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비평적 찬사를 잃지 않았고, 미국에서 예술영화 붐이 일었던 70년대 중반에는 미국 예술영화의 최전선에서 <대화> 같은 걸작을 빚어냈다가 <지옥의 묵시록> 이후엔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몰락한 뒤, 안간힘을 써왔지만 다시는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코폴라는 마틴 스콜세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악동(무비브랫)으로 불렸다. 현장이 아니라 대학에서 먼저 영화를 배운 엘리트 영화광 출신답게 이들은 유럽예술영화풍의 작가주의영화나 영화사적 지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영화를 선보였다.

뉴욕 변두리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UCLA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코폴라는 무비브랫 중에서도 가장 지적인 배경을 지녔다. B급영화의 대부인 로저 코먼에게서 영화실무를 배우며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만들기도 했던 코폴라는, 1963년 코먼이 프로듀서를 맡은 최초의 장편영화 <디멘시아 13 Dementia 13>을 만든다.

1966년 UCLA의 지원으로 부모의 과보호 아래 자라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넌, 이제 어른이야 You’re a Big Boy Now>를 2년 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와 첫 인연을 맺는다.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만든 첫 영화 <피니언의 무지개 Finian’s Rainbow>(1968)는 많은 제작비를 들였으나 흥행에선 실패했다. 억눌려 살다가 가출하는 여인의 이야기 <레인 피플 The Rain People>(1969)은 개인적 취향이 강한 소품이지만 깔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몇 작품의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있던 코폴라는 1972년 <대부 The Godfather>를 만들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의 흥망을 다룬 마리우 푸조 원작의 영화가 코폴라에게 맡겨진 것은 이탈리아계라는 것이 감안된 선택이었다. 코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연출을 맡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쥐게 됐다.

‘한시대와 마피아에 관한 웅장한 서사시’라는 비평적 찬사도 쏟아졌다. 2년 뒤에 만든 <대부 Ⅱ>는 오스카상 6개 부문을 석권하며 “1편보다 더 위대한 속편”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비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두 대작보다 그에게 더욱 명예로운 작품은 <대화 The Conversation>(1974)였다. 도청으로 먹고 사는 한 미국인의 창백하고 불안한 생활을 묘사한 이 영화는 “미국 대중영화와 유럽 예술영화의 좋은 점을 고루 가진 걸작”이라는 평가 속에 코폴라를 미국 예술영화의 기수로 부상시켰다.

상업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코폴라의 기세는 7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제작사 조에트로포사를 창립해 젊은 감독들의 제작을 도와주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지옥의 묵시록 pocolypse Now>(1979)의 악몽을 거치면서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되는 것처럼 보였다.

베트남전쟁의 경험을 그야말로 악몽으로 묘사한 <지옥의 묵시록>은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제작비 3천만달러를 들인 <지옥의 묵시록>은 촬영시한을 끝없이 어겨가며 필리핀 정글에서 1년을 보낸 코폴라와 제작진 전부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고 그들의 이상한 몰골은 매스컴의 화젯거리로 다루어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제작비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가진 지나친 자기탐닉증에 비판적 언사를 보냈고, 코폴라도 이를 수긍했다.

80년대 들어 코폴라는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원 프롬 더 핫 One from the Heart>(1982) <럼블 피시 Rumble Fish> (1983) <아웃사이더 The Outsiders>(1983) <카튼 클럽 The Cotton Club>(1984) <페기 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1986) <병사의 낙원 Garden of Stone>(1987) <터커 Tucker: The Man and His Dream>(1988) 등을 내놓으며 쉼없이 작품활동을 했지만 어느 것도 70년대의 미학적 성취에도 상업적 성공에도 전혀 미치지 못했다.

마치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만든 <대부 Ⅲ>(1990)는 어설픈 안간힘이라는 비아냥만 낳았다. 안쓰러운 그의 안간힘은 계속돼 <드라큘라 Dracula>(1992)를 낳는다. 팀 버튼의 고딕 미장센과 <샤이닝>의 공포를 결합하고 MTV적 속도감까지 불어넣으려 했으나 이 영화 역시 스타일과 주제의식이 어울리지 못하는 범작에 머물렀다.

4년 뒤에 내놓은 <잭 Jack>(1996) 역시 범상한 휴먼드라마였다. 다만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1997)는 정의감을 버리지 못하는 젊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단순한 드라마지만, 인물 묘사와 극의 리듬에서 대가다운 원숙함을 보여, 이후 코폴라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든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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