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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Sergei M. Eisenstein)

1898-01-2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8.7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98-01-23
  • 사망1948-02-11
  • 성별

소개

불과 7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50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많은 미완성 작품과 논문, 그림, 여타 창작물을 남겼으며 영화뿐 아니라 연극, 회화, 심리학, 중세 민중극, 일본 가부키, 문학에 두루 통달했던 에이젠슈테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가장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이자 예술가이자 ‘몽타주이론’이라는 고전 영화이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1898년 라트비아에서 부유한 유대계 토목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에이젠슈테인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를 습득했다. 10살 때는 생애 최초로 구입한 서책인 도미에의 화집을 애지중지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1917년 알렉산드리스키 극장에서 상영한 <가면무도회>를 보고 연극에 뛰어들었다. 1919년 적군에 지원해 전쟁 한복판에서도 코미디 델라르테와 프로이트, 파블로프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무대관계 스케치를 제작했다. 에이젠슈테인은 혁명 전부터 유명한 연극인이었으며, 혁명 후에는 새 시대를 대표하는 연극연출가였던 프세볼로트 메이어홀드 밑에서 사숙하고 혁명 후의 러시아 전위예술가집단의 영향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내공을 가다듬었다. 에이젠슈테인이 예술적 수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은 ‘몽타주’였다.

에이젠슈테인이 23년 몽타주이론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을 때 옛 소련 정부의 신경제정책은 경제를 안정시켰고 소브키노 블록에 영화사들이 통합됐다. 몽타주는 소련영화의 지배양식이 됐다.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은 몽타주의 교과서인 <파업 Strike>(1924)과 <전함 포템킨 The Battleship ‘Potyomkin’>(1926)으로 삽시간에 인민감독으로 떠올랐다. 러시아 혁명사를 영화로 만들려던 에이젠슈테인은 우선 구상중인 다섯편의 에피소드 가운데 첫번째 에피소드인 <파업>에 착수했고 다른 에피소드로부터 <전함 포템킨>과 <10월 October> (1928)이 나왔다.

장편영화 데뷔작인 <파업>으로 에이젠슈테인은 옛 소련영화를 ‘혁명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플롯이나 드라마를 없앴으며 집단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파업>의 내용과 주제는 단순하다. 파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고용주들은 어떻게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해 파업을 종식시키려 했는가, 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화면구성과 편집을 통해 영화에 위대한 극적인 힘을 불어넣는 에이젠슈테인의 감각은 명불허전이다. 기계의 움직임과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정확한 음악적 리듬으로 결합한 에이젠슈테인의 수학적 몽타주 감각은 가공할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전함 포템킨>은 차르체제에 대항한 1905년 1차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에이젠슈테인은 서사적인 작품을 만들려던 애당초의 구상을 포기하고 포템킨호의 반란과 오데사항구의 계단에서 포템킨호를 환영하는 시민들이 코사크 기병대에 학살당하는 사건만으로 영화의 플롯을 좁혔는데 전세계적인 환대를 받았다. 5막으로 구성된 <전함 포템킨>은 무성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미학적 이상의 완결체이다.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장면으로 후대에 칭송받았던 오데사 계단 학살장면은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의 방법론’이란 논문에서 주장한 몽타주의 5가지 유형이 모두 들어 있다. 오데사 계단에서 학살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화면길이를 가속도가 붙는 리듬으로 점점 짧게 편집한 것은 ‘운율의 몽타주’이며, 차르 군대의 직선적인 행진과 공포 속에서 흩어지는 군중의 무질서한 움직임을 대비되도록 편집한 것은 ‘율동의 몽타주’이다. 빛과 그림자, 밋밋한 평면과 입체감 나는 화면의 대비 등을 보여주는 ‘음조 몽타주’는 계단에 비친 차르 군대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에 묻혀 아들을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좋은 예다. ‘배음의 몽타주’는 운율, 율동, 음조 몽타주가 합해져 여러 갈등의 울림이 전해지는 효과를 낼 때 발생하는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며 끝으로 ‘지적 몽타주’의 실례는 잠자고 있다가 포효하며 일어나는 사자상을 연속적인 세 화면으로 편집해 억압에 항거하는 민중의 비유로 삼은 것을 꼽을 수 있다.

<10월>은 10월혁명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 도에 넘치는 형식적 유희의 과잉으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위대한 형식주의자 에이젠슈테인의 왕성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17년의 노동자 봉기와 동궁 습격을 다룬 줄거리는 숨막힐 듯한 스펙터클이지만 케렌스키 정부의 무능을 표현하기 위해 공작새, 조각상이 든 화환, 사원의 우상, 가면, 흙으로 빚은 인형 등을 몽타주한 장면 같은 것은 특히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원래 <전선>이란 제목으로 기획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Old and New> (1929)은 <10월>의 제작일정에 밀려 29년에야 햇빛을 보았다. 농촌의 기계화와 집산주의 운동을 다뤘지만 농부에 대한 묘사에 공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에이젠슈테인은 농촌의 삶을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것으로 담으려 했지만 봄의 환희와 임산부의 배를 비교하는 몽타주라든가, 농촌에 유피분리기가 들어오는 장면에서 농부들의 긴장과 기쁨을 담아내는 장면의 정교한 몽타주는 지나치게 지적이어서 오히려 건조한 느낌을 줬다.

<멕시코 만세 Que Viva Mexico>(1932)는 엄밀한 의미에서 에이젠슈테인의 작품이 아니다. 31년 에이젠슈테인은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의 제작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지만 에이젠슈테인을 불신한 싱클레어가 촬영 막바지 단계에 제작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에이젠슈테인이 귀국한 후 싱클레어쪽은 임의로 이 영화를 편집해 몇편의 영화를 만들고 그 필름을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알렉산더 네프스키 Alexander Nevsky>(1938)는 에이젠슈테인이 ‘사운드 영화 선언’에서 주장한, 화면과 음향이 대위법적 효과를 내는 수직의 몽타주를 실천한 작품이며 또한 영화의 회화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이반 대제(1, 2부) Ivan the Terrible>(1945, 1946)는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의 업적과 맞먹는 것을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3부로 예정된 전체 기획이 무산됐지만 <이반 대제>는 에이젠슈테인 몽타주 미학의 결정체이다. 충돌과 갈등을 도상화한다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적 기획은 이 영화의 2부에서 색채를 통한 실험의 단계까지 나아갔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