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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My Life to Live

1962 프랑스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상영시간 : 83분

개봉일 : 2005-12-23

감독 : 장 뤽 고다르

출연 : 안나 카리나(나나) 사디 레보트(라울) more

  • 네티즌8.08

그녀의 삶은 누구의 소유인가?

고독과 슬픔으로 빚어진 여자 나나
그녀의 삶은 누구의 소유인가?


레코드 샵의 점원으로 일하는 나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배우를 동경하는 파리지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힘든 삶 속에서도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돈을 빌려가고 소식이 없는 동료, 영화업자들에게 소개해주겠다며 나나를 이용하려는 에이전시 직원... 결국 나나는 삶의 고단함 속에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나나는 우연히 남편에게 버림받고 거리의 여자가 된 옛 친구 이베뜨를 통해 포주 라울을 소개받는다. 나나 역시 생존을 위해 이베뜨처럼 거리의 여자가 되지만 삶에 대한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면서 나나도 프로페셔널한 거리의 여자로 자리 잡는다. 그런 나나에게 새롭게 사랑이 찾아오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계획하지만 포주 라울은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채고, 다른 조직에 팔아넘기려 하는데...
한 여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자본의 위력. 그녀의 삶은 누구의 소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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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100년의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논문이 쓰여지고 있는 감독. 비평가로, 감독으로. 자신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드라마틱한 생을 살아온 감독. 장 뤽 고다르의 이름을 빼고 현대 영화사를 얘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

성찰과 형식미로의 승화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패기 넘치는 실험의 결과물이라면, <비브르 사비>는 그러한 패기와 실험이 성찰과 형식미로 승화되기 시작한 작품. <비브르 사비>는 한 여자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세계에 의해 창녀로 전락하는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고다르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몰입하지 말라,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면, 명암을 구별하기 어두운 배경 속에서 어렴풋이 한 여자의 옆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첫 장면부터 고다르는 주인공 나나의 앞, 옆, 뒷모습을 다짐하듯 보여주며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여자의 생”에 관한 것임을 -마치 Vivre Sa Vie(그녀의 생을 살다)라는 제목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에게 남겨진 것은 이 영화의 불행을 바라보며 얻는 나긋나긋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녀를 불행으로 몰아간 세상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고다르의 의도이기도 하다. “몰입하지 말라,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 <비브르 사비>가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이론이 가장 본격적으로 또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영화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매력
안나 까리나의 유혹 - 그리고 미셸 르그랑의 선물
고다르의 이런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비브르 사비>에는 관객들이 “거리두기를 두기가 불가능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주인공 안나 까리나의 카리스마적인 매력. 연인이자 아내, 그리고 “예술가”고다르의 뮤즈였던 안나 까리나는 그녀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비브르 사비>의 단 한 장면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영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다.
두 번째는 <쉘부르의 우산>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낸 명장. 미셸 르그랑의 음악. 나나를 스쳐간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배반하지만, 풍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르그랑의 메인 테마만은 끝까지 그녀의 곁에 남는다. 또한 나나가 소녀처럼 춤추는 당구장 시퀸스, 거리의 총성과 까페 안의 상황을 리듬에 맞춰 분절해 긴박함을 표현한 장면 역시 <비브르 사비>만이 줄 수 있는 매혹이다.


작품해설 : 고다르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근사한 영화

전 세계 평론가들로 하여금 고다르의 천재성을 찬양하게 한 영화가 <네 멋대로 해라>라면 <비브르 사비>는 일반 대중들에게 고다르를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보여준 고다르의 파격성은 <비브르 사비>에서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장치와 시네마 베리떼적 접근을 통해 객관적 시선으로 발전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한 여자의 삶이다.

첫 번째 Keyword: 브레히트

12장으로 분리된 블록구조, 의도적인 사운드의 분절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감성’을 방해하고 이성을 끌어낸다. 이런 면에서 <비브르 사비>는 브레히트 적 거리두기 장치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또한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된 영화로 꼽힌다.
<비브르 사비>(자기 생각대로 산다는 뜻, 미국에서는 It's My Life, 영국에서는 My Life to Live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의 첫 장면은 등을 돌리고 앉은 두 남녀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배우들의 앞 또는 옆얼굴을 보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두 남녀의 뒷모습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 당혹스러움 속에서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영화에 몰입하지 말라.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라.
사회에 의해 파멸되는 한 여자의 삶이라는 내러티브는 브레히트에서 도입한 성공적인 거리두기 장치를 통해 멜로로 전락할 위험을 모면한다. 12장으로 분리된 블록구조, 의도적인 사운드의 분절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감성을 방해하고, 이성을 끌어낸다. 이런 면에서 <비브르 사비>는 브레히트 적 거리두기 장치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또한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된 영화로 꼽힌다.

열두 번 좌절하고 열두 번 생각한다: 객관적 시선을 위한 12개의 블록 구조
전통적인 의미의 시퀸스가 미리 주어진 인과관계를 가진다면, <비브르 사비>의 12개의 장들은 각각 독자적이며 그 안에서 연결된다. 따라서 관객은 지나간 장면과의 인과관계가 아닌 화면의 현 상황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분절성은 또한 기존 내러티브의 기승전결 개념을 파괴한다. 각 장마다에서 나나는 좌절하고 그 좌절들의 결합체가 영화종반의 죽음을 극대화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러한 블록구조 속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그녀의 삶을 관찰하고 그녀 삶의 비틀린 측면들을 낱낱이 분석하게 된다.

주제를 위해 의도된 사운드의 분절
이러한 내러티브의 해체는 사운드의 사용에서 보다 명확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처음 23초 동안 음악이 흐른다. 이어지는 25초는 무성의 상태다. 자막이 시작된 지 48초 만에 정면쇼트로 바뀌면서 동시에 음악이 다시 시작되고, 24초 동안 계속된다. 마치 하나의 짝짓기와 같은 무성- 유성의 각 쇼트들은 이 시퀸스를 통틀어 계속된다. (음악-22초/무성-25초/음악-24초/무성-16초/음악-26초/무성-21초의 순서) 관객은 이러한 내러티브의 분절에 의해 영화 속에 몰입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받고 그 결과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 영화 속의 문제들 - 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고다르가 바라본 매춘은 다르다.
<비브르 사비>에서 매춘은 관객에게 볼거리가 아닌 관객들이 생각할 거리이다. 고다르는 호텔과 길에서 이루어지는 매매춘의 일과를 빠른 편집으로 설명하고, 매춘의 역사와 매춘법 조항, 그리고 이와 관련된 통계숫자들을 열거함으로써 관객들 각자가 매춘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관객은 종종 제 3자의 입장을 강요당한다. 풀과 나나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도록 한다든가, 나나가 마담에게 쓴 편지를 등장인물이 아닌 관객이 읽도록 하는 점. 남자손님이 같은 방에서 다른 창녀와 함께 있는 동안 등을 돌리고 있는 나나를 보여주는 것들이 그 예이다. 관객은 이러한 고다르의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 매춘의 가혹함 속에서 몰락해가는 한 여자의 삶을 보다 더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두 번째 Keyword: 시네마 베리떼

<비브르 사비>는 고다르가 “나는 허구에 진실을 주기 위해 좀 더 기록적으로 시작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극과 기록이 함께 한다. 허구와 다큐멘터리를 결합하면서 고다르는 내러티브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빼냈으며, 현장에서 녹음된 음향만을 사용했다. 또한 촬영에서도 클로즈업보다 롱 쇼트를 선택하고, 확장된 미장센(롱테이크와 슬로우팬)을 사용했다. 고다르가 “모든 것은 거기에 있어 수정할 것이 없었다.”라고 언급했듯이 <비브르 사비>는 주어진 환경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담아낸다. 실내의 촬영에서도 인공적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광을 고집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출되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은 사운드에서 더욱 분명하다. 보통 영화 속에서 주크박스의 음악이 들리는 경우, 레코드에서 테이프에 직접 녹음한 뒤 베이스음을 약간 증폭함으로써 현장효과를 내는데 반해 <비브르 사비>의 주크박스 음악은 현장에서 녹음되었다. 길거리의 차 소리, 그릇 닦는 소리, 다른 손님들의 잡담, 당구알 소리들도 카메라워크와 절묘하게 연결되어 예상외의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비브르 사비>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장면중 하나인 기관총 난사 장면은 총소리의 분절에 맞춰 장면들이 커트됨으로써 영상과 사운드의 완벽한 일치를 보여준다.
사실성에 대한 고다르의 집착은 예상치 않은 효과를 얻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나가 처음으로 매춘행위를 시작할 때 방 바깥에서 우연히 대형트럭의 소음이 들려온다. 이 소음은 드라마상의 감정고조와 일치한다. 라스트 씬에서 나나가 죽는 순간 황량한 거리의 침묵 속에 인근병원으로부터 총소리가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한다. 절묘한 순간포착으로 어떤 연출보다 효과적인 음향을 얻어낸 것이다.

세 번째 Keyword: 나나 혹은 안나 까리나

나나라는 이름은 에밀 졸라(Emille Zola)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 르노와르(Jean Renoir)감독의 영화 <나나 Nana>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비브르 사비>의 여주인공 나나 역시 주변 환경에 의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몰락한다.
이러한 나나의 몰락과정은 브레히트적 거리두기와 시네마 베리떼의 사실성에 의해 더욱 임팩트 있게 전개된다. 카페에서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그녀가 남편과 헤어졌음을 알게 된다. 레코드 가게에서는 대사를 통해 동료점원에게 돈을 떼였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나나가 집에서 쫓겨난 후 경찰서에서 심문 받는 다음 장에서 관객들은 나나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 가를 짐작하는 것이다.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고다르의 연출은 창녀로서의 나나를 보여주는 데에도 적용된다. 나나가 첫 고객을 상대할 때 그녀는 금전거래에도 서투르고 고객의 키스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나나는 능숙하게 돈을 흥정하는 ‘프로페셔널’로 변화한다.
나나를 통해 고다르는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가지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카페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베뜨와 옆 테이블의 다정한 연인을 대조시켜 사랑의 허상을 드러내고, 고객을 기다리는 나나와 <엑소더스>포스터, 팔려가는 나나와 <줄 앤 짐>포스터를 대조시켜 인간의 가치가 묵살되는 사회 속에서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11장에서 인용되는 포우의 단편은 이 영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장면에서는 책으로 입을 가린 청년의 목소리대신 고다르의 나레이션이 등장하는데, 화가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희생되는 여성을 이야기하며 안나 까리나를 클로즈업시켜 보여주고 있다. 청년을 고다르에 이입시켜본다면 이 장면은 나나가 아닌 그의 아내인 안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까리나가 고다르의 아내라는 것을 참작할 때 그녀의 죽음은 사회적 원인뿐 아니라 고다르의 예술적 이유로 정당화되며, 그의 아내를 모델로, 예술작품으로 변환시켜 죽인 것이다.

감독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1930~)

그가 도착하던 날, 이곳의 언론들은 “얼마 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전 작품이 상영될 때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고다르가 이곳에 왔다.”고 흥분했다. 로카르노 영화제와 스위스 정부가 헌사하는 금표범상을 수상하러 무대에 오른 고다르는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은 아랑곳없다는 듯, 금표범상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옆에선 집행위원장에게 맡긴 채 상금 2만 프랑이 든 봉투를 국제사면위원회(AMNESTY)에 바로 넘겨주었다. 약간 오만함이 깃든 초연함, 역시 고다르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영화 평론가 임안자씨의 95년 로카르노 영화제 스케치 중에서)

고다르의 영화는 변화무쌍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래서 그의 영화는 바로 그 자신의 주장했던 작가(auteur)라는 틀로 작품을 들여다보려는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알파빌>같은 SF가 있는가하면 뮤지컬 코미디를 차용한 <여자는 여자다>같은 작품도 있고, <중국 여인>의 강도 높은 정치적 발언과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같은 짙은 서정이 그의 영화세계에서 공존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변혁”뿐일 것이다. 기존 관습에 대한 부정, 주류문화에 대한 부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걸어온 길까지도 부정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고다르는 항상 ’변혁‘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로부터 고다르를 구분 짓는 기준이다.
1930년 프랑스 빠리에서 출생한 고다르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청년시절 씨네마떼끄 프랑세즈를 드나들면서 고다르는 후에 모두 감독으로 데뷔해 누벨바그의 주역이 된 프랑소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에릭 로메르(Eric Rohmer),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자끄 리베뜨(Jacques Rivette)등을 만났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을만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접하고 토론하면서 영화적 감각을 키웠다. 1950년<가제트 뒤 씨네마 Gazette du cinéma>에 한스 루카스(Hans Lucas)라는 필명으로 영화 평을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고다르는 1952년에 <까이에 뒤 씨네마>의 주요 평론가로 등장했고 2년후 인 1954년에는 편집진으로 활약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고다르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의 젊은 비평가들은 그때까지 유럽평단에서 등한시해왔던 존 포드(John Ford),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 등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에서 상업주의 시스템에 굴복되지 않은 일관된 스타일을 발견하고 이들을 작가(auteur)로 추앙한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이후 영화 비평론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는 작가주의의 시포가 된다. 한편 고다르는 미국의 B급 영화들의 “경제적인” 제작 시스템 - 즉흥에 가까운 연출,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는 평면적 화면 - 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점 역시 이후 고다르의 작품의 주요한 미학적 모티브가 된다.
비평가로서 “칼보다 강한 펜”을 휘두르며 몇 편의 단편영화를 찍던 고다르가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집어든 것은 1969년,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는 발표 즉시 격렬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같은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의 감독상, 음향상, 촬영 상을 석권하며 고다르는 일약 세계 영화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이후 알제리 전투로 혼란된 사회상을 표현한 <작은 병사 Le Petit Soldat>, 뮤지컬의 경쾌함을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여자는 여자다 Une Femme est Femme>, 인간을 상품화시키는 사회 속에서 파멸되는 한 여자의 삶을 탁월하게 영상화한 <비브르 사비 Vivre Sa Vie>, 현대 문명을 예리하게 파헤친 SF물 <알파빌 Alphaville>,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묘사한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e>등 일련의 문제작들을 내놓으면서, 고다르는 누벨바그 실험정신의 대명사로 대두된다.
1967년 발표한 <주말 Le Week-end>은 고다르의 영화가 정치적 색채를 띄기 시작한 전환기적인 작품. 고다르는 이 작품에서 주말에 휴식을 갖는 한 부르주아 커플을 통해 자본주의의 혼돈과 잔인성을 가차 없이 고발한다. <주말>에서 싹을 틔운 고다르의 사회주의적인 성향은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모티브로 한 <중국여인 La Chinoise>에서 결정을 이루는데, <주말>과 같은 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 고다르가 당시 얼마나 모택동의 사상에 매료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일례이다.
1968년 이후, 고다르는 당시 <까이에 맑스 - 레닌주의자 Cahiers Marxist-Leninste>의 편집장 장 피엘 고랭을 만나면서 더욱 더 급전적인 맑시즘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은 고다르가 급진적 영화단체 ‘지가 베르토프 집단 Dziga Ventov Group' 결성에 관여하는 토대가 된다.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 Un Film Comme Les Autres>, <대영제국의 소리 Britsh Sound>, <프라우다 Pravda> 등 이 지가 베르토프 집단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는 1968년 5월 혁명을 그린 16mm 영화로, 자동차 노동자들과 학생들 간의 토론을 기록한 것이다. <프라우다>역시 러시아의 체코침공에 대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가상으로 진행한 토론을 담은 작품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피력한다.
위의 작품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동경을 그린 작품이라면, <즐거운 지식 Le Gail Savoir>, <원 플러스 원 One Plus One>, <동풍 Vent D'est>,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등의 작품은 고다르가 부르주아 사회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가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일례로 <렛스프레스 L'express>에 실린 사진에서 모티브를 따온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Jane>는 고다르가 그토록 증오한 부르주아의 본질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문제의 사진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북 베트남을 방문한 제인폰다의 모습을 찍은 것. 어떤 사진에서는 제인 폰다가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동정하듯 슬픈 표정을 짓다가도 어떤 사진에서는 유유자적하게 미소를 짓는데, 고다르는 제인 폰다의 이런 위선이 곧 자본주의의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제인폰다가 이렇게 자유자제로 표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결국 베트남 병사들에 대한 그녀의 동정이란 값싼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제인..>이후에도 고다르는 고랭과 함께 많은 작품을 시도했지만 상당부분 미완성으로 그쳤고, 그나마 완성된 작품들도 거의 공개되지 못했다.
68년 5월 혁명의 실패는 전 유럽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절망을 안겨다 주었고, 고다르 역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72년작 <만사형통 Tout Va Bien>은 혁명의 실패로 인한 고다르의 심적 변화를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작품. 소재로만 본다면 이전의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파업을 다루고 있지만, 당대의 톱스타였던 제인 폰다와 이브 몽땅을 주인공으로 기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다르가 다시 상업 영화 시스템 안으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구분된다.
<만사형통>이후 고다르는 고랭, 정치, 파리 모두와 결별하고 세 번째 부인이자 동업자인 안느-마리 미에빌(Anne -Marie Miéville)과 함께 그레노블로 떠난다. 여기서 그들은 ‘소니마쥬(SonImage- 프랑스어로 사운드와 이미지)’라는 작은 영화사를 설립하고 제작 자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디오 매체로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그들의 첫 번째 기획은 <이곳과 어떤 곳 Ici et D'ailleurs>. 이 작품은 한창 예민한 시기의 팔레스타인을 다루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혁명에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다. 요르단 게릴라들의 훈련 장면에 광고의 망령에 사로잡힌 프랑스 소비자의 모습을 중간 중간 인터커트로 삽입하면서 고다르는 ‘어떤 곳’(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이곳(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연관성을 우회적으로 질문한다. 이즈음의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정치적인 영화들의 궁극적인 관객은 나의 가족이며, 그것은 곧 나 자신에 관한 영화”라고 밝혔고 이러한 입장은 곧 이후의 작품들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2번 Numero 2>, <두 어린이의 프랑스 일주 France Tour Detour Deux Enfants>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위스 영화산업의 성장은 고다르를 반(半)은둔상태에서 끌어내 다시 영화제작에 복귀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그 결과가 <인생 Sauve Qui Peut (La Vie)>과 <열정 Passion>이다, 특히 이 두 작품의 뒤를 이은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 Prénom Carmen>은 고다르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꽃핀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상, 음악상, 촬영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파리와 런던에서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마리아에게 경배를 Je Vous Salie Marie>, <리어왕 King Lear>,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모짜르트는 영원히 Forever Mozart>에 이르기까지, 새로움에 대한 그의 욕구는 여전하다. 고다르의 영화는 끊임없이 변신해왔고 영화광들을 계속해서 열광시키고 있다. “사회적(악)조건에 대한 규탄은 그 조건의 토대를 이루는 체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악)조건에 대한 비난은 그 예술이 수용하는 형식의 파괴로 발전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난다 해도, 감독이 늙어간다 해도, 자신이 천명한 이 입장에 서있는 한, 고다르라는 이름은 언제나 파격과 실험의 대명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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