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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Citizen Kane Citizen Kane

1941 미국 15세 관람가

드라마, 미스터리 상영시간 : 119분

누적관객 : 3,432명

감독 : 오슨 웰스

출연 : 오슨 웰스(찰스 포스터 케인) 조셉 코튼(제데디아 를랜드) more

  • 네티즌8.85
플로리다의 대저택 제나두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언론 재벌 케인은 “로즈 버드”라는 의문의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언론은 그의 죽음을 취재하게 되고, 기자 톰슨은 “로즈 버드”의 의미를 쫓아 케인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애를 되돌아 본다. 25세의 오슨 웰스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세계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 꼽힌다. 딥포커스와 복합적인 플래시백 내러티브, 파격적인 편집과 장시간의 촬영 등의 혁신적인 스타일을 통해 영화사의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프랑수아 트뤼포는 “미국 영화에 대한 무한한 숭배감과 경의를 표한다”는 소감을 피력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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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영화의 역사는 1941년 5월 1일에 개봉한 <시민 케인>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어떤 영화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영화의 모든 사고가 새롭게 배치되었으며, 역사는 갑자기 인식론적 단절을 경험하고, 고전주의 영화의 시대는 그 막을 내렸다. 그리고 <시민 케인>은 모더니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슨 웰스(1916-1985)는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체흡과 입센에 정통한 연극 연출자였다. 그는 스물 두 살에 머큐리 극단을 결성하여 실험극을 시도했지만 후원자가 나서지 않자 먹고 살기 위하여(!)라디오 드라마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30일, CBS라디오에서 "임시뉴스를 알려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가상 화성인 침입 드라마 "우주 전쟁"을 연출하여 라디오 역사상 유례없는 소동을 일으켰다.
오슨 웰스는 그 해의 인물이 되었으며, PKO영화사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에게 영화 연출을 제안했다. 오슨 웰스는 머큐리 극단을 이끌고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에 전권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허먼 맨키비츠와 공동으로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비밀리에'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는 거대한 성 제나두에서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장미꽃 봉오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죽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에 관한 기록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아무래도 그 한마디가 걸린다. 그래서 기자 톰슨은 살아 생전 친했던 네 사람을 만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어린 시절 썰매에 쓰인 이름인 줄은. 오슨 웰스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기자를 따라가며 네 사람을 만나 플래시백 구조로 케인의 주변에 있던 다섯 사람의 눈을 통해 케인을 본다. 잘 짜여진 19세기 소설의 19세기 소설의 기승전결 이야기구조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그 속에서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은 서로 상이한 진술에 따라 반복과 차이를 경험한다. 그것은 영화에서 이중화법을 통하여 영화적 시간으로 이야기를 다시 배열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모순을 드러내, 질서정연하다고 믿었던 고전적 세계를 비판적으로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슨 웰스는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만남을 담으면서 촬영감독 그레그 톨란드의 '혁명적인' 도움을 받았다. 그는 초점거리가 깊은 딥 포커스와 정지할 줄 모르는 이동 카메라, 그리고 장시간 촬영과 경사 구도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공간과 소련 몽타주 기법에서 끌어낸 화면과 사운드의 충돌, 그리고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의 미장센을 할리우드의 거대한 기술적 토대 위에서 전적으로 새롭게 배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영화의 백과사전이며, 전례가 없는 대규모의 실험영화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 재벌이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자신의 스캔들을 소재로 삼았다는 구실로 이 영화를 매장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했고, 오슨 웰스는 평생 빚에 허덕이며 그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복권한 <시민 케인>은 모든 영화평론가들의 열광이자 영화감독들의 절망이 되기도 했지만, 오슨 웰스 자신에게는 지옥이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세계 영화 100>(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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