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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배우 잔드라 휠러를 중심으로 보는 황금종려상 '아나토미 오브 어 폴', 심사위원대상 '존 오브 인터레스트'
김소미 2023-06-09

<아나토미 오브 어 폴>

쥐스틴 트리에 감독, 작가 아서 하라리는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이 “애초부터 오직 잔드라 휠러를 생각하며 썼고, 시나리오의 많은 묘사가 배우 본연의 자질로부터 영양분을 얻은” 영화라고 밝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경우 독일을 대표하는 배우인 잔드라 휠러가 나치즘에 직간접적으로 부역하는 아우슈비츠 지휘관의 아내를 연기했다는 점에서 독일 기자들로 하여금 “이 상징적 역할을 연기하는 데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까?” 하는 엄숙한 질문을 반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휠러는 자신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나 동료들에 대한 존경을 제외하면 대체로 굳은 얼굴로 말을 아끼는 독일 배우다운 자질을 보여 이미 그의 연기만으로 충분히 경도된 관객을 안심시켰다. 2016년에 마렌 아데 감독의 코미디영화 <토니 에드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여우주연상은 물론 다른 어떤 상도 받지 못하고 칸을 떠나야 했던 그는 올해 두편의 영화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여우주연상의 기쁨 대신 최고상의 영예를 즐겼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 24>는 “올해 칸영화제의 진정한 승자는 잔드라 휠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LA타임스>의 평론가 저스틴 창은 “경쟁부문의 두 작품은 형식적으로 상이하지만, 잔드라 휠러는 공통적으로 그녀의 날카로운 지성과 감정적 격렬함, 관객의 동정을 요구하지 않는 캐릭터를 맡는 데 있어 두려움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남겼다.

2019년 경쟁부문에 올랐던 다크 코미디 <시빌>에서 곤경에 처한 영화감독으로 분해 영화의 가장 웃긴 장면들을 담당했던 잔드라 휠러는 <아나토미 오브 어 폴>로 쥐스틴 트리에 감독과 두 번째로 협업했고 작품의 중추로 거듭났다. 법원을 배경으로 펼치는 히치콕식 결혼 이야기인 <아나토미 오브어 폴>은 말 그대로 한 남자의 추락사로부터 가족의 해부학을 시도한다. 부부는 그날 아침 서로의 치부를 할퀴고 인격을 모독해가며 집요히 싸웠다. 그리고 남편은 유명 소설가인 아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위층에서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댔고, 잠시 후 개와 산책 중이던 아들이 눈밭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아빠를 발견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둘러싼 법의학자들의 첨예한 공방 사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여자가 결백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피고인과 변호사의 미묘한 우정, 유죄 추정에 혈안이 된 검사가 안기는 스트레스, 엇갈리는 폭로들 사이에서 차츰 물기에 젖는 어린 아들의 눈동자가 법정이라는 지루한 배경을 복잡다단한 프레스코화로 물들인다. 범죄의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적, 서사적 훌륭함은 배우 잔드라 휠러를 필두로 영화 속 인물들의 지적이고 강고한 사유가 층층이 얽히는 가운데 비로소 만개한다. 말하자면 이 법정극에는 ‘피해자’가 없다. 잔드라 휠러는 증명이 불가한 진실과 그에 대적하는 오해를 향해 지나치게 처절하게 대응하지 않는 대담함으로 관객을 현혹시키고 나아가 만족시킨다. <아나토미 오브 어 폴> 위에 유능한 배우가 드리운 깊은 음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게 그러하듯이 영화 속 초상들의 모호함에 대해서도 긴 시간 곱씹게 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이 감정의 깊이와 각도를 최상급으로 요구한다면, <언더 더 스킨> 이후 약 10년 만에 귀환한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배우를 형식 실험에 가담시킨 뒤 안무에 가까운 연기를 주문한다. 잔드라 휠러는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꿈의 집을 짓고 사는 나치 지휘관의 아내로, 지척에서 밀려드는 끔찍한 비명과 검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꾸린 안온한 터전을 잃는 일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이라 믿는 여자를 연기한다. 연극 무대에서 신체를 단련해온 잔드라 휠러의 재능은 풀숏의 멀티 카메라 시스템을 고수하는 글레이저의 스타일 안에서 극대화된다. 폴란드 촬영감독 우카시 잘은 장면에 따라 5~10개에 달하는 카메라를 배우의 동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집 안과 정원 구석구석에 숨겼다. 반나절간 카메라 설치가 끝나면 스탭은 모두 따로 마련된 컨테이너에 숨었고, 오직 배우들만이 남아 이상하고 아름다운 집의 복도와 방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불안과 증오에 차 종종 극단적인 기복을 드러내는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신경질적으로 굳어가는 몸은 내면의 진실을 서서히 발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평범하고 진부한 악의 초상을 연기할 때 얼마나 이입할 수 있는가 묻는 기자회견의 질문에 잔드라 휠러의 대답은 간명했다. “환경이 주는 자극과 동선에 집중하며 최대한 수행적으로 연기하면 된다. 동일시를 요구하는 연기가 아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나는 조금도 배우로서의 망을 가지지 않고자 했다. 내게는 그것이 일종의 진정성이었다.” 공교롭게도 두편의 부부 이야기이기도 한 <아나토미 오브 어 폴>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이 배우의 온도를 말하자면 한쪽에서는 서서히 끓어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간다. 셰익스피어 고전부터 아방가르드한 실험주의 연극을 두루 경험하고, 유럽을 대표하는 베를린 출신의 연극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작품에서 도약했던 휠러는 연극계를 가로지르던 커다란 보폭을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최고상의 영예를 순서대로 거머쥔 두의 판이한 작품은 아직도 영화의 영토가 여전히 드넓다는 사실을 보기 좋은 균형감각으로 방증하며, 내색 없는 베테랑인 잔드라 휠러는 두개의 삶을 각자 다른 원리로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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