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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 화면 잘 받디?” 문주시 만양 파출소 이동식 경사(신하균)는 가족처럼 지내던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강민아)이 절단된 손가락을 남기고 실종된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기자들 앞에 선다. 이를 활짝 드러낸 기이한 웃음. 천진함과 비열함을 동시에 뿜어내는 배우 신하균의 얼굴에 기대는 드라마인가 싶었다. JTBC 드라마 <괴물> 이야기다.
20년 전에도 동식은 유사한 사건의 용의자였다. 동식의 여동생이 실종되면서 만양이 발칵 뒤집혔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동식은 서울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편 서울청 외사과에서 불법체류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한주원 경위(여진구)는 미제로 남은 만양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고 만양 파출소로 자원해 동식을 감시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누가 괴물인가 연막을 치는 극이고 괴물은 하나가 아니다. 동식은 사체를 찾지 못해 살인 사건으로 기소하지 못하는 사건, 범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드라마 '괴물', 괴물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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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매우 좋은 영화지만 할 말이 많은 영화는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맑고 투명하며 정직해 보였고, 영화의 국적부터 의미까지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 탓도 있다. 하지만 막상 걸음을 떼고 보니, 내가 가진 언어의 역량으로 포획하기 힘든 장면들이 너무 많다. <스파이의 아내>를 비롯해 최근 부쩍 그런 영화들이 극장에 걸려 괴롭고, 행복하다.
경외하길 멈추고 기억하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어둠 속에서 덜거덕거리며 달리던 마차 소리가 들리다가 다음 순간 그 소리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신기한 망각의 세계로 빠지고 만다. 그날 밤에 느꼈던 감정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손만 뻗으면 어루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중략) 이제 나는 바로 이 길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든, 우리는 말로는 전달이 불가능한 그 소중한 과거를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윌라 캐더 저, <
'미나리'의 세 가지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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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복수극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제니퍼 켄트의 <나이팅게일>에 관한 글에서 한번 이야기했으니 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추가하기로 하자. 하나, 일단 장르가 형성되면 작품이 이 틀에서 벗어나기가 극도로 힘들다는 것. 둘, 관객은 이 소재를 다룬 모든 영화를 장르의 틀 안에 넣어보게 된다는 것.
에메랄드 페넬의 <프라미싱 영 우먼>의 이야기를 맺는 후반부도 이 영화가 강간복수극이고 관객이 이 장르의 규칙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장르가 고정된 상태에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겨우 셋이다. 하나, 주인공은 앞에 선언한 복수에 성공한다. 둘, 주인공은 복수에 실패한다. 셋, 주인공은 복수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성공했다.
영화 후반의 서스펜스는 영화가 이들 중 어느 것을 선택했을지 관객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관객은 1번의 가능성이 사라진 뒤로는 3번이길 바라지만 2번일 가능성은 의외로 높다. 수많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강간복수극 장르의 규칙 안에서 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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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딘딘과 곤충 친구들은 용감하고 든든한 숲 지킴이다. 친구들이 위험에 처하면 언제나 빨리 나타나 구해준다. 우주에서 온 탐사 로봇 오로라도 최첨단 신호등으로 딘딘과 친구들을 돕는다. 평화로운 날도 잠시, 나방 부족 추장은 딘딘이 내는 불빛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딘딘과 곤충 탐험대를 공격한다. 설상가상으로 붉은 로봇 군단이 외계에서 나타나 숲속 마을 곤충들을 전부 잡아가려고 한다. 곤충 탐험대의 동료였던 오로라도 로봇 군단에 조종당한다. 위기에 처한 나방 부족 추장과 딘딘은 다툼을 멈추고 힘을 모은다.
전작 <반딧불이 딘딘>(2017)에서 울프 킹 무리와 맞섰던 딘딘과 곤충 친구들이 <반딧불이 딘딘과 용감한 곤충 탐험대>에서는 로봇 군단을 상대한다. 체구가 작은 곤충들이 힘을 모아 위기를 헤쳐나가고, 숲을 지키는 모습이 뭉클하면서도 용감하게 그려진다. 이 작품은 곤충들이 안전해야 꽃과 나무가 잘 자라고, 숲이 울창해야 지구도 건강할 수 있다는 환경 보호
영화 '반딧불이 딘딘과 용감한 곤충 탐험대' 개성 강한 곤충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해 이야기에 유머와 감동을 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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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재능 있는 가수 지망생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진 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사채빚에 시달리는 프로듀서 민수(조달환)는 우연히 발렛 부스 안에서 들려오는 지훈(박찬열)의 기타와 노래 소리에 매료된다. 민수가 시키는 대로 공연을 하면 그의 가수 데뷔를 책임지고 돕겠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다짜고짜 내밀어보지만, 지훈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민수는 지훈에게 박스 안에 들어가 일종의 ‘뮤직 박스’처럼 노래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전국 각지를 돌며 10번의 공연을 하는 긴 여정을 떠난다.
인천 차이나타운, 전주 라이브카페, 광주 5·18 민주광장, 여수 재즈클럽, 경주 첨성대, 울산 함월루, 부산 해운대 등 우리나라의 다양한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 퍼렐
영화 '더 박스'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양정웅 감독의 첫 영화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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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해온 20대 여성 아이카(사말 예슬라모바). 그녀는 재봉 가게를 차려 멋진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그 꿈의 발목을 잡은 것은 돈이었다. 아이카는 빚을 갚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해야만 했다. 심지어 그녀는 출산 직후 병원에 아이를 두고 도망치기까지 한다. 도망쳐서 온 곳은 바로 닭 공장. 하지만 일당도 못 받은 채 다시 폭설이 내리는 거리를 헤맨다. 그러다 하혈이 심해져 화장실을 찾는 도중에 한 동물병원에 들른 아이카. 그녀의 삶은 잠시라도 멈출 수 있을까?
<아이카>는 모스크바로 이주한 한 여성의 고된 삶을 밀착해 담아낸 영화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촬영이다.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시종일관 그녀의 삶을 바로 옆에서 포착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그녀를 관망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체험하게끔 관객을 유도한다. 출산, 끊임없는 노동, 내리는 눈 등 아이카를 짓누르는 여러 가지 조건들은 관객에게 피로감을 선사한다. 이때의 피로감은 부정적인
영화 '아이카' 모스크바로 이주한 한 여성의 고된 삶을 밀착해 담아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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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사랑이나 홍콩식 사랑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는 이따금 공간의 특수성이 야기하는 사랑의 형태를 관객의 머릿속에 남긴다. <와일드 마운틴 타임>은 아일랜드식 사랑의 환상을 담은 영화다. 너른 초원과 양 떼, 비 때문에 질척거리는 땅과 엉망이 돼버리는 장화 등 아일랜드만의 기호가 가득한 <와일드 마운틴 타임>은 제이미 도넌과 에밀리 블런트라는 근사한 배우들에게 시골뜨기 남녀 캐릭터를 맡기고는 관객을 납득시켜버린다.
엉뚱하면서도 우울한 기색이 역력한 안토니(제이미 도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이웃에 사는 활기찬 친구 로즈메리(에밀리 블런트)를 필사적으로 피해다닌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안토니를 짝사랑한 로즈메리는 그런 안토니가 답답하고, 안토니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도 답답해서 죽을 지경. 때마침 안토니의 아버지(크리스토퍼 워컨)로부터 농장을 상속받으려고 나타난 미국인 아담(존 햄)이 끼어드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급반전할 만도 하지만 지
영화 '와일드 마운틴 타임' 제이미 도넌과 에밀리 블런트가 선보이는 아일랜드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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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과 모범생 도현(이다윗)은 교수(서이숙)로부터 편입생 진호(김남우)를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고, 진호가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호를 통해 심리 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도현은 최 교수(손병호)의 제안을 받아 최면을 경험한다. 최면 치료를 받고 난 뒤 도현과 친구들은 이상한 환각 증상을 겪는다. 어떤 사건의 잔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악몽을 꾸고, 그로 인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도현은 캠퍼스에서 친구가 투신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영화 <최면>은 도현과 친구들이 최면을 경험한 뒤로 이상한 현상을 겪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스릴러영화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현실인지 최면의 후유증인지 분간하기 힘든 환각 증세가 도현과 친구들에게 나타나 혼란스럽다. 이것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최면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하지만 관객을 잠깐 놀라게 할
영화 '최면' 지난해 <검객>으로 연출 데뷔한 최재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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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항공우주국(ASA)의 탐사대원 기동(손이용)은 아내를 잃고 홀로 딸 규진(강소연)을 키운다. 박스에 들어가 놀길 좋아하는 어린 규진은 기동에게 박스 안에선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동은 그런 규진이 안쓰럽기만 하다. 한편 ASA는 27년 전, 우주의 한 행성인 ‘갬성’으로부터 받은 구조 신호를 토대로 우주선 ‘인천스텔라’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엔지니어 승연(정광우)이 인천스텔라를 완성하고, 기동은 임무 완수를 위해 승연과 함께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우주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면서 기동은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인천스텔라>는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을 연출한 백승기 감독의 신작이다. 박스를 우주와 지구가 맞닿는 매개체로 설정하고 스텔라 자동차를 우주선으로 활용하는 등 백승기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인터스텔라> <마션&
영화 '인천스텔라' <숫호구> <오늘도 평화로운>을 연출한 백승기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잘 드러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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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디(로빈 라이트)는 심리 상담을 받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그녀가 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여동생 엠마(킴 디킨스)를 뒤로한 채 이디는 자신과 연결된 모든 것을 끊기로 결심한다. 최소한의 장비만 구입한 그녀는 미국 북서부 쇼숀 국유림의 외딴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광활하고 거친 자연에 자신을 맡긴다. 하지만 첫날밤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그녀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공포에 떨며 잠을 설친다. 채소밭은 짐승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먹이를 찾아 나선 곰이 집 안에 들어와 난장판으로 만든다.
산속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갈 무렵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다. 이때 간호사(사라 던 플레지)와 함께 온 사냥꾼 미겔(데미안 비치르)이 그녀를 발견한다.
<랜드>는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2013~18)에서 클레어 언더우드 역
영화 '랜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에서 클레어언더우드 역을 맡았던 배우 로빈 라이트의 장편영화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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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8K로 찍은 <NHK> 스페셜 드라마이자 첫 번째 시대극이 극장판으로 재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파이의 아내>는 스파이 장르, 그리고 영화 만들기라는 비밀과 거짓의 무대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펼치는 진실 게임이다.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0년, 고베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남자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의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전쟁 상황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평화로운 생활을 꾸리고 있다. 사토코의 삶은 유사쿠가 연합국의 스파이가 되려 하며, 만주에서 일본군이 자행하는 끔찍한 생체 실험을 고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험에 처한다. 남편을 지키려는 사토코에게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헌병대 대장인 야스하루(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나타나 유사쿠를 의심하면서 갈등은 고조된다. TV드라마 포맷에 맞춘 촬영구도와 편집의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한편 장면이 쌓일수록 구로사와 기요시의 인장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영화 '스파이의 아내' 극장판으로 재탄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NHK〉 스페셜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