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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다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를 찾았다. 2019년 연말에 새로 발급받은 여권은 그간 책상 서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첫 도장을 받으며 본래의 쓰임을 증명했다. 칸에는 개막식 전날 도착했다. 상영관 및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주변도 둘러보고, 프레스 카드도 발급받고, 남프랑스의 따가운 햇볕에 기꺼이 맨살을 맡긴 채 칸 비치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칸으로 모이는 기운을 느꼈다. 슬슬 달궈지고 있는 축제의 기운을.
칸의 온화한 날씨만큼 온화한 미소로 영화제의 극한 일정을 버텨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내 나의 평정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2~3편의 영화를 보고 1~2건의 가벼운 미팅과 인터뷰를 하고 더불어 기사 마감까지 해야 하는 일정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칸영화제에선 선착순으로 극장에 입장해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 극장 앞엔 늘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 걸작을 칸
[이주현 편집장] 올해의 복병은 티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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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초등학교 4학년 큰애한테 배트맨 레고를 선물했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2학년 둘째도 책 대신 레고를 사달라고 난리가 났다. 결국 둘째한테는 스타워즈 레고를 사줬다. 어린이날이 지난 일요일, 점심 먹고 오후에 집에서 애들하고 영화 보는 시간을 가질까 했다. 이순신 얘기가 나오는 <명량>을 틀어줄까 했는데, 둘째가 무섭다고 한다. 전에 조금 보여준 적이 있기는 했는데, 아직 10살 안된 어린이가 즐길 상황은 아니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을 틀었다. 둘째한테 사준 레고가 ‘스타워즈 타투인편’이었다.
내심 나는 내가 이 아이들 나이 때 너무 재밌게 봤던 <오즈의 마법사>나 최근에 몇번을 다시 본 <메리 포핀스>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애들은 이런 것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마블 시리즈가 나올 때에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지도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스타워즈에서 마블 엔드게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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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특급’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는 외화라는 이름으로 외국 텔레비전 시리즈를 무척 많이 방영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한국 TV 프로그램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화제가 되는 외국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시절 인기를 끌었던 <6백만불의 사나이>나 <맥가이버>는 지금도 한국 TV 프로그램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정도다. 누군가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 <6백만불의 사나이> 효과음이 나오는 장면이나, 무엇인가를 멋지게 만드는 장면에서 <맥가이버> 주제곡이 배경에 흘러나오는 연출은 여전히 가끔씩 볼 수 있다.
<환상특급>은 그 정도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강렬한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적었다고 할 수도 없다. 원래는 미국에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중에 <The Twilight Zo
[곽재식의 오늘은 SF] '환상특급'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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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에 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창작자로서 20년째 살아가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런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책상 앞에서 빈 메모장을 켜놓고 진척 없이 몇 시간째 멍때리는 날이 될 수도 있고 인터뷰에서 기습적으로 받은 질문에 괜히 진지하게 대답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그렇다. 인터뷰어의 ‘힙합이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은 대개 상투적이고 가벼운 의도를 품지만 같은 온도로 응한다면 나는 집에 돌아와서 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책하고 말 것이다. 왠지 모르게 초심을 외면해버리는 징그러운 기분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꽤 자주 초심을 생각한다. 거울 앞에서 물리적인 변화를 마주할 때가 그렇고 십수년 전 레코딩된 앳된 목소리에서, 만원짜리 한장 들고 홍대 공연장으로 향하던 시절의 내 가사 속에서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저울질해보는 시간은 어쨌든 마음속에 묘한 균형을 찾아준다. 우리는 최근 재오픈한 싸이월드 사진첩을 들춰보며 전 국민 초
[딥플로우의 딥포커스] 당신은 언제 힙합과 사랑에 빠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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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7일, 강수연 배우가 눈을 감았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지 사흘 만에 들려온 돌이킬 수 없는 부고였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 속 그의 고요한 얼굴에 눈을 맞추자니, 이것이 영화 속 연출된 한 장면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온 영화인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강수연 배우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때부터 발인까지 계속해서 곁을 지킨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사장)을 비롯해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함께한 임권택 감독,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를 만든 연상호 감독, 후배 설경구와 문소리 배우는 5월11일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애통하고 애틋한 작별 인사를 전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그리고 도무지.
배우 강수연의 과거 기사들을 들춰보았다. 1995년 늦가을에 발행된 <씨네21> 28호의 특집 기사 주인공은
[이주현 편집장] 우리 기억 속의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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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노동절’이라는 이름조차도 금기시되어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려왔고 지금도 불리는 5월1일은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환경에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투쟁한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다. 카페에 출근하는 대학생의 주휴수당부터 늦은 시간 사무실을 지키는 회사원의 야근수당까지, 노동법이 보장하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 인간이 사회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나의 부품이 되어야 하더라도 인간성이 박탈된 채 완전한 부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근대사회의 기본 전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은 각자가 하나의 통합된 인간이며 그 사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가오는 시대의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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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오랜만의 단독 공연이 있었다. ‘다정한 사월’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공연은 특별한 무대장치나 놀랄 만한 기획이 함께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공연과 다른 점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던 동안 있었던 공연장 내 거리두기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2020년 이후로 객석을 바둑판처럼 나누어 한칸 한칸 띄워놓던 방식으로 공연하지 않고 온전한 객석이 채워질 수 있었다.
공연 장소는 홍대에 위치한 좌석 160석, 스탠딩 350석 규모의 라이브홀 ‘웨스트브릿지’였는데, 이 규모는 우리 밴드에 작다고도, 또 그렇게 크다고도 할 수 없는 규모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보통 스탠딩으로 공연해서 열기가 가득한 곳이었는데, 좌석으로 그것도 거리두기를 해 그동안은 약 80명 내외의 관객이 함께해왔다. 온라인 스트리밍 등을 고려하면 객석은 그 절반까지도 줄어들었다. 일부 지원사업에 응모하거나 공연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방법으로 공연을 해오긴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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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공회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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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개편했다. 코너를 정비하고 새 필자를 찾고 디자인을 손보는 수고로운 과정은 독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의 매너리즘 타파에도 효용이 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하던 대로 하는’ 경향도 강해지기 마련인데, 새로운 고민을 강제적으로라도 하게 되니 잡지 만드는 일의 재미와 고충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새로 합류한 필자들을 소개한다. SF 소설가이자 공학박사이며 한국의 괴물과 역사에도 조예가 깊은 곽재식 작가가 이경희 작가와 함께 ‘오늘은 SF’라는 코너명을 공유하며 격주로 SF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경희 작가는 2000년대 이후의 SF, 곽재식 작가는 고전 SF를 다룰 예정이다. 또 한명의 에세이 필자로 섭외한 인물은 래퍼 겸 프로듀서인 딥플로우다. 딥(deep)으로 라임을 맞춘 ‘딥플로우의 딥포커스’에선 영화인이 아닌 래퍼의 시선이 담긴 힙합영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OTT 플랫폼과 콘텐츠가 범람하는 상황을 고려해, 뉴스 지면에선 OT
[이주현 편집장] 잡지 개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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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쓰고 있는 마스크는 이제 내 몸의 일부가 된 듯하다. 4월18일부터 모이는 사람의 수도, 업장에 있을 수 있는 시간제한도 없어진다 했지만 너무 오랜만의 자유라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쁜 마음에 오랜만에 모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오후 9시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시계를 보는 것을 보고 학창 시절 오전 수업이 끝나기 전 울던 배꼽시계의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 외국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하늘길이 닫히진 않았어도 국경을 넘을 때마다 겪는 격리의 수고가 만만치 않아 바다 건너 오는 손님이 드물었던 시절도 끝나간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 놓친 소식이 많았지만 전세계가 같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지난 이야기들이 서로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속속 제한이 풀리며 다시 교류의 문이 열리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2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온라인 수업과 원격 회의에서 시작한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로운 봄이 시작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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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공개되는 <스케치북>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김상진, <겨울왕국2>의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 잘 알려진 이현민, 두명의 한국인 애니메이터도 출연한다. LA 통신원이 진행한 이들의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건, 드로잉 스타일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의 답변이 서로 달랐다는 거다. 이를테면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성격도 거침없을까?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성격도 섬세할까?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이현민 애니메이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스타일은 연습과 훈련의 결과물일까, 성격의 반영일까? 이 질문을 고스란히 글쓰기에도 대입해볼 수 있다. 세심하게 단어를 고르는 사람은 성격도 세심할까? 중언부언 글을 쓰는 사람은 성격도 부산할까?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은 말도 많을까? 도덕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도덕적일까? 주변의
[이주현 편집장] 하마구치 류스케에 접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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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보리차 대회’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콘테스트가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2022년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에서 최우수 포크-노래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기념해서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보리차>를 부르거나 재창조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대회인데, 주최측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스티커나 컵, LP음반 등을 걸고 참가를 독려했고 기념 컵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 역시 어느새 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마침 한대음 수상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같은 시기에 천용성 보컬 버전의 <보리차>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존에 발표된 <보리차>는 강말금 배우가 보컬을 맡았는데, 천용성 보컬 버전이 발매됨으로써 음역대가 다양한 참가자들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용성씨 버전의 반주 트랙에 노래를 시도해보았으나 생각보다 음역대가 낮아 강말금 배우가 부른 음계를 바탕으로 콘테스트에 참여했다.
출전 자격에 제한은 없었지만 아무리 내가 피지컬로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보리차가 식기 전에 빨리 봄날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