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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춘희(강진아)는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뒤 친척 집에서 눈치를 보며 자랐던 춘희에겐 남들과의 떠들썩한 소통이나 교류보다는 혼자 지내는 느릿하고 고요한 일상이 익숙하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다한증 수술을 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벼락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데, 그날 이후 춘희 앞에 난데없이 1998년의 어린 춘희(박혜진)가 나타난다. 고통스럽고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 자신과의 조우에 춘희는 혼란을 느끼고, 이를 털어놓기 위해 가입한 모임에서 말을 더듬는 남자 주황(홍상표)을 만난다. 춘희와 주황은 작은 추억들을 쌓아나간다.
“춘희야, 태어나길 잘했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극이 끝나갈 때 즈음에서야 비로소 제목의 진의와 무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눅진한 온기를 지녔다. 최근 몇년간 주목받았던 젊은 한국 여성감독들의 독립영화의 소재와
[리뷰] '태어나길 잘했어' 나를 지키기, 어쩌면 제일 어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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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조민상)는 사고로 장애를 얻는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도 어렵지만, 걸음을 뗄 수 있다는 이유로 5급이라는 경증 장애 등급을 판정받았다. 때문에 재기는 실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해 국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많지 않다. 재기는 희망을 잃고 주저앉는 대신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 독립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때마침 병원 병실에서 만났던 장애인 병호(임호준)가 재기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병호의 소개로 취업 자리를 얻은 재기는 장애등급을 다시 판정받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준비한다. 소송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야 했으나 재기는 병호가 마련해준 기회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한편 병호는 일자리를 잃은 재기의 누나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안한다.
<복지식당>은 정재익 감독의 경험이 담긴 수필을 읽은 서태수 감독이, 정재익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해 제작된 작품이다. 영화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재기를 통해 장애인들이 놓인 복지 혜택의 사각
[리뷰] 힙겹게 전진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복지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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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동물사전>이 <해리 포터> 시리즈 스핀오프의 시작을 알린 후, 2편 격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등장한 데 이어 세 번째 작품이 나왔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된 프랜차이즈도 절반을 넘긴 셈이다.
해리 포터가 세상에 등장하기 70여년 전인 1926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신비한 동물사전>은 주인공이자 호그와트에서 쓰인 교재 ‘신비한 동물사전’의 저자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와 ‘하얀 눈이 달린 검은 바람’의 형체를 띤 채 무분별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옵스큐러스를 품은 옵스큐리어 크레덴스(에즈라 밀러), 그리고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갤버트 그린델왈드(마스 미켈센)를 무난히 소개했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는 덤블도어 교수(주드 로)를 포함한 뉴트의 동료들이 벌인 활약으로 감옥에 갇혔던 그린델왈드가 탈옥한 뒤 파리로 가 세력을 확장하고, 죽은 줄 알았던 크레덴스가 재등장해 가족을 찾는 일
[리뷰] 말 그대로 ‘위험한 시대 위험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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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
감독 박경원 | 왓챠
2020년 리그에서 꼴찌를 기록한 한화 이글스가 새 시즌을 맞아 리빌딩을 준비한다. 새 감독으로 선임된 베네수엘라 국적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패배에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하지만, 압박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선수들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움츠러든다. 한화의 혼란스러운 한해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는 숱한 야구영화들처럼 기적을 담고 있지는 않다. 대신 계속해서 넘어지고 부서지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슬로 호시스>
감독 제임스 호위 | Apple TV+
세상에서 가장 느슨한 첩보팀 ‘슬라우 하우스’. 이곳은 영국 정보보안국 MI5에서 쫓겨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게리 올드먼이 수장 잭슨 램을 연기한다. 모범적인 첩보 요원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지닌 잭슨은, 능력은 있어 보이지만 성질은 괴팍하다. 영국 작
[홈시네마] 한화의 혼란스러운 한해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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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코미디언 걸 그룹 셀럽파이브는 2018년 결성됐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라는 김신영의 꿈 한마디를 현실로 만든 것은 송은이다. 이후 송은이가 만든 회사에 자리 잡고 부캐릭터 ‘둘째 이모 김다비’로 사랑받은 김신영은 말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 얘기에 귀 기울여준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다들 ‘뭐 그런 일을 벌이려고 해?’ 그랬는데, (송은이) 선배님은 ‘알겠어’ 하고 두달 뒤 ‘그때 네가 얘기했던 걸 이렇게 할 거야’라고 했어요.”
<셀럽은 회의 중>은 바로 그렇게 결성된 셀럽파이브의 송은이, 김신영, 안영미, 신봉선이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제안받은 뒤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모큐멘터리다. 무대는 없다. 이들의 브레인스토밍이 곧 쇼다.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틈만 나면 회의를 소집하는 ‘꼰대’ 대표 송은이 앞에서 후배들은 “넷플릭스 사장님도 이렇게 까다롭지 않다”라며 투덜대지만, 막상 판을 깔아주니 신이 나서 온갖 개인기와 에피소드를 척척 풀어놓는
[홈시네마] 42분27초부터 보세요 '셀럽은 회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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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며 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상여 소리’로 먹고사는 남사당 여인 산이(정상희). 그녀는 하룻밤 묵을 곳을 찾다 한 초가에서 홀아비 필쇠(정인철)를 만난다. 처음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하나가 되어 부부로 연을 맺는다. 시간이 흘러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어느 날, 부부는 국가적인 상이 났을 때 곡을 해주는 관리를 뽑는 과거 시험이 한양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다. 산이는 가족을 두고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곡녀>는 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이수자 명창 ‘정상희’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영화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강의 물결을 따라 한 돛단배가 흘러가며 시작한다. 여기에 정상희의 아름다운 판소리가 수놓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는 인천과 강화도의 작은 섬들에서 유래된 상여 소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선조들의 혼과 얼을 판소리 명창의 소리로 담아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지는 이해되나
[리뷰] 명창 정상희의 판소리만 자연스럽다 '곡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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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이사벨라(기타가와 게이코)는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란 고아원을 운영 중이다. 아이들은 16살이 되기 전에 양부모를 만나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어느 날 코니(아사다 하로)가 입양을 가게 된다. 엠마(하마베 미나미)와 노먼(이타가키 리히토)은 코니가 아끼던 인형을 발견하고 전해주러 게이트로 향한다. 그곳에 있는 수상한 트럭의 짐칸을 열어보니 코니의 시체가 있었다. 곧이어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이들은 트럭 밑으로 몸을 숨긴다. 이들이 목격한 것은 바로 식인 괴물이었다.
<약속의 네버랜드>는 전세계 누적 발행 부수 3200만부를 기록한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영화다. 영화는 고아원이 인간을 양식하는 농원이었다는 추악한 진실에 맞서 아이들이 이곳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다. 엠마, 노먼 그리고 레이(조 가이리)가 주축이 되어 탈출을 계획한다. 숨바꼭질을 가장한 탈출 훈련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엠마와 레이는 탈출 인원에 대해 윤리적 갈등도 빚지만 결
[리뷰] 절망 속에서 벽 너머의 세계를 희망하다 '약속의 네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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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피 묻은 돈이 든 차를 몰며 누군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건다. 어제 막 해고를 당한 젠산(데이빗 다스트말치안)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도박장을 찾았다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찌른 것이다.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젠산은 연인 루비(캐런 길런)에게 최소한의 짐을 챙겨 나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황당하게도 약속 장소에 서 있는 루비의 팔에는 처음 보는 갓난아이가 들려 있다. 제발 어딘가에 내버려두고 오라는 젠산과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루비의 다툼과 함께 그들의 도주가 시작된다. 그런 그들을 향해 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온다.
<천국에서 무덤까지>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무덤으로 향하게 되는지 로드 무비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이들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의 활용에서 테런스 맬릭의 영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두 남녀의 선택과 행동이 쉽사리 납득가지 않을 정
[리뷰] '천국에서 무덤까지' 그들은 왜 무덤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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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에 천착했던 화가 루이스 웨인(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전기 관련 논문을 쓰고 클래식 작곡에도 관심을 두는 등 여러 방면에 호기심을 드러낸 괴짜 같은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루이스의 집에 에밀리(클레어 포이)가 가정교사로 들어온다. 루이스는 어릴 적 트라우마를 보듬어준 에밀리와 사랑에 빠진다. 가족의 반대, 나이와 신분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며 결혼 생활을 하던 루이스와 에밀리 앞에 유기묘 피터가 등장한다. 이들이 같이 지낸 시절은 루이스에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에밀리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상실의 아픔을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극복하던 루이스는 고양이 피터까지 죽음을 맞이하자 극도의 슬픔에 빠지고 평생에 걸쳐 정신착란과 망상에 시달린다.
영화는 루이스와 에밀리의 만남과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묘사하는 전반부와, 에밀리를 상실한 이후 루이스의 삶을 톺아가는 후반부로 나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리뷰] 환영이나마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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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배(손호준)는 사채를 빌려주고 담보로 잡힌 차량을 압류하는 일을 대신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해외로 넘길 예정인 슈퍼카의 배달을 고향 친구 동식(이규형)에게 맡겼는데, 빚에 시달리던 동식이 차를 들고 도망친다. 문제는 그게 단순한 차가 아니라 보스 서 사장(허성태)의 사업 비밀이 담긴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 서 사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영배를 쫓고 고향 집에서 덜미를 잡힌 영배는 아버지가 남긴 낡아빠진 스텔라를 타고 도주를 감행한다. 그렇게 영배가 동식을 쫓고 서 사장이 영배를 잡으러 가는, 허술하고 황당한 추격이 시작된다.
<스텔라>는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인 스텔라를 타고 잃어버린 슈퍼카를 찾는 과정을 따라가는 코미디다. <맨발의 기봉이>(2006), <형> (2016)을 통해 눈물과 웃음을 함께 선사했던 권수경 감독의 신작답게 이번에도 필승의 공식을 사용한다. 드라마의 축은 역시나 가족이다. 영배는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
[리뷰] 얼렁뚱땅 억지로 굴러가긴 하지만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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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폭행 혐의로 법정에 선 20살 혜영(김혜윤)의 불량스러운 모습에서 시작된다. 말간 얼굴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문신을 한쪽 팔에 새긴 혜영에게 이 세상은 화나고 짜증나는 일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에 맞서 그녀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반말은 기본, 욕설과 고성 등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혜영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는 사건이 일어난다. 중국집을 운영하던 아버지 본진(박혁권)이 남의 차를 훔쳐 달아나다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차에 치인 두명의 피해자는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다. 어린 동생 혜적(박시우)을 돌보는 한편, 아버지의 사고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던 혜영은 예기치 못한 진실을 마주한다.
박이웅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투박함을 동력 삼아 힘껏 돌진하는 영화다. 혜영의 거친 성격과 요령 없는 대처 방식, 그에 대한 세상의 반작용 등 껄끄럽고 불편한 부분들
[리뷰] 절박함이라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돌진하다 '불도저에 탄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