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과 그녀를 추적하던 폴라스트리 이브의 애증 어린 관계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미친 짓, 충동, 집착으로 요약 가능할 이브와 빌라넬의 관계는 4년여에 걸쳐 변화해왔다. 시즌1에서는 비밀리에 국제적인 암살 범죄를 추적하던 이브가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용의자 빌라넬과 만나며 이끌림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그려진다. 사건의 대척점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하나의 짝패처럼 붙어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시즌2에 이르러 한층 고착되는 듯하다. 빌라넬은 이브를 정복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을 살해하고, 이브는 그런 빌라넬을 처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잔혹해진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져 오는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빌라넬과 MI6으로부터 멀어지고자 시도한 이브의 서사는 시즌3에 담겼다.
이번에 공개된 시즌4에서는 이브와 빌라넬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감정선보다 장막에 가려 있던 범죄 조직 트웰브의 정체를 파헤치는 일이 중요하게
[리뷰 스트리밍] 마침내 종지부를 찍다 '킬링 이브 시즌4'
-
종범(정준호)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어선 ‘어부바호’를 몰며 홀로 어린 아들 노마(이엘빈)를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동생 종훈(최대철)은 마흔몇의 나이에 모은 돈도 없으면서 덜컥 두 바퀴 띠동갑의 중국계 여성을 신붓감으로 데려와 결혼하겠다며 생떼를 쓴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아들에겐 죽은 아내에 관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지갑 사정은 빠듯한데, 9년째 대출 중인 선박 회사에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어부바호를 더이상 몰 수 없다. 그 와중에 노마는 선박 회사 전무의 아들과 갈등을 빚고, 종범은 고용 관계뿐 아니라 보호자 관계로도 전무와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긴다. 그럼에도 종범은 가부장으로서 어린 아들과 철없는 동생 앞에서 언제나 밝고 든든한 모습을 보인다.
<어부바>에는 눈에 띄는 독창성보단 가정의 달 개봉에 걸맞은 안온하고 익숙한 서사로 가득하다. 하늘을 보며 사별한 가족의 빈자리를 떠올리는 구성원의 슬픔, 영화의 제목을 듣는
[리뷰] '어부바' 답보와 퇴보 사이 표류하는 가족 코미디
-
주변인들의 얼굴을 웃는 얼굴로 바꿔놓는 저 은은한 미소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바로 베트남 출신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이다. 마크 J. 프랜시스와 맥스 퓨 감독은 스님의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에서 머물며 그가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까지의 3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를 만나는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목이 궁금한 관객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자료다.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인 틱낫한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망명을 강요받자 프랑스로 건너가 플럼 빌리지를 설립했다는 몇줄의 자막이 사실상 그에 관한 유일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며 틱낫한 정신에 감응한 두 감독은 혹여나 스승을 우상화할까 염려해 의도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는 촬영 방식을 택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플럼 빌리지 내부를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본 카메라는 외부 활동에 나서는 제자들을 따라 도시로 나갔다가 그들의 가족을 만나기도 한다.
<나를 만나는 길>은 명상이
[리뷰] 스승 대신 제자들이 이끄는 무던한 명상 체험, '나를 만나는 길'
-
아메리카(소치틀 고메즈)는 어느 날 멀티버스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힘에 눈을 뜨지만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 정체불명의 악마가 아메리카를 죽이려 하자 다른 우주의 스트레인지가 이를 막아보지만 결국 살해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로 넘어온 아메리카는 어벤져스 멤버인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도움과 보호를 받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웨스트뷰 사건 이후 잠적한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곧바로 그녀가 사건의 진정한 흑막, 스칼렛 위치임이 드러난다. 스칼렛 위치는 자신의 원하는 멀티버스로 가기 위해 아메리카의 힘을 흡수하려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스칼렛 위치를 피해 또 한번 다른 멀티버스로 도망치지만 그의 끈질긴 추격을 받는다.
제목 그대로 대혼돈과 광기로 가득하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연출을 맡은 샘 레이미 감독은 호러와 유머, 괴이한 액션이 뒤섞인 자신의 색깔을 마블 유니버
[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의외로 단순한 이야기+이미 봤던 상상력+조악한 듯 현란한 눈뽕+샘 레이미가 늘 하던 것
-
-
파리의 콜센터에서 영업 일을 하는 에밀리(루시 장)는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 노령의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뒤, 넓은 아파트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근처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카미유(조나단 아모스)가 공고를 보고 그녀를 찾아오고, 이내 두 사람은 선을 넘는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카미유에게 에밀리가 반기를 들면서, 둘 사이에는 금이 간다. 한편 보르도 출신의 늦깎이 대학생 노라(노에미 메를랑)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극복하려고 그녀는 파티에 과감한 복장으로 참석하는데, 우연히 선택한 가발 때문에 소동에 휘말린다. 언뜻 캠걸 앰버 스위트(카미유 베토미에)와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후 노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그렇게 카미유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카미유를 중심으로 세 인물들은 서로 연결된다. 과도하게 직설적인 이들의 상황은, 실상 우리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리뷰] 타이트한 몽타주 사이, 음악처럼 흐르는 대사들 '파리, 13구'
-
오자크 시즌4 파트2 / 넷플릭스
5년간 이어온 시리즈가 시즌4 파트2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오자크> 시리즈를 충실히 관람해온 팬이라면 아쉬움이 클 테다. 시리즈는 방대하나 이야기의 골자는 간단하다. 멕시코 카르텔의 돈을 빼돌리다 덜미가 잡힌 시카고 재무 컨설턴트 마티 버드가 가족의 연명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노리며 매 시즌 주어진 고비를 넘기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번 시즌4 파트2에서는 집을 떠나려는 마티의 자녀를 설득하는 문제와 투옥된 카르텔 수장을 멕시코로 안전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오자크> 시리즈는 누아르 장르의 외피를 두른 가족 드라마다. 마티 집안뿐 아니라 계급을 달리하는 랭모어, 스넬 집안 사이의 갈등까지 포함해 현대 미국 가정의 불안과 공허를 직시한다.
소공녀 /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 외
미소는 명예나 출세, 부에 관심이 없다. 그저 파출부 일을 하며 하루치의 위스키와 담배만 있으면 그만이
[리뷰 스트리밍] '오자크 시즌4 파트2' 외
-
고려 시대 사찰 활엄사 터에서 사람 키의 두세배되는 불상의 두상이 발견된다. 진양군청은 관광 진흥을 노린 전시를 기획하면서 불상의 눈에 둘러진 결계를 풀어버린다. 불상이 세상에 드러난 후 해괴한 일들이 일어난다. 불상의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 저편의 환영을 보고 이를 뿌리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늘에선 검은 비가 내리고 까마귀들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한편 유망한 불교 고고학자였지만 지금은 잡지나 유튜브에서 괴담 콘텐츠를 다루는 신세인 기훈(구교환)은 스님들의 도움으로 이 사태가 고려 시대의 원귀가 들러붙은 귀불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아내 수진(신현빈)의 안전을 살피러 진양군으로 향한다.
퇴마를 주제로 한 오컬트의 향취로 시작하는 <괴이>는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장르와 절묘히 접합한다. 귀불의 저주로 환영 속에 갇힌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아수라장의 광경이 강조된 2, 3화는 좀비물과 재난영화를 연상케
[리뷰 스트리밍] 퇴마를 주제로 한 오컬트의 향취, '괴이'
-
모솔(‘모태 솔로’의 줄임말로, 연애 경험이 한번도 없는 사람을 의미함)이란 무엇인가. 연애와 우주여행의 공통점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우주여행’님 말씀에 따르면 ‘돌체 앤드 가바나’를 모르는 사람은 모솔이다. 모솔은 패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돌체라곤 커피밖에 모르지만 라이트 노벨 캐릭터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여자 친구라고 소개한 ‘마이크책’님은 모솔일까 아닐까? 첫 데이트 식사 후 결제는 무조건 더치페이할 거라는 ‘연애세포’님에겐 모솔로서의 신념이 있다. “실패했던 경험이 많아서 다 쏟아주면 안되겠다.” 혼자 더치페이를 주장하지 않아 모솔이 아니라고 의심받은 ‘노리공원’님, 그러나 그 역시 “(여자와) 카톡할 때 말 안 끊기게 하는 방법”을 검색해본 적 있는 학구파 모솔이다.
모솔을 일종의 실패자로 낙인찍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도, 의외로 이 방송에 출연한 남성들은 자신이 ‘답 없는 모솔’이라는 데 자부심을 드러내며 모솔끼리의 동질감 안에서 안정을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유튜브 PIXID 채널: 모쏠 단톡방에 숨은 유죄인간 찾기(FEAT.이석훈)
-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은 국내 어린이들에게 인기리에 방영 중인 아동 만화 <엉덩이 탐정>의 국내 세 번째 극장판이다. 영화는 원작의 익숙한 설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여전히 엉덩이 탐정은 본인의 캐치프레이즈인 ‘냄새가 난다’라는 대사를 뱉으며 추리에 도입하고, 조수 브라운과 견공 경찰서의 공조에도 모든 추리는 엉덩이 탐정이 홀로 볼(혹은 엉덩이)을 씰룩이며 해낸다.
또한 미로 찾기 등의 퀴즈를 중간중간 인서트하여 관객이 함께 추리 과정에 동반하게끔 유도하거나, 제4의 벽을 허무는 엉덩이 탐정의 방백도 기존 연작과 동일하게 반영해 어린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성공적이다.
이번 극장판의 배경은 수플레 섬이다. 수플레 섬은 내내 바람이 불어 도내 부락민들은 ‘바람의 길잡이’에 의존해 생활을 영위한다. 이때 괴도 유가 이를 훔칠 것을 엉덩이 탐정에게 경고하고, 엉덩이 탐정은 조력자들과 함께 예의 침착함으로 사건을 추리해간다. 교묘정치한 탐
[리뷰] 방귀깨나 뀌는 태연한 명탐정의 폭신폭신 추리극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
유명 연극배우 후지 스케요는 사망 후 딸 카사네(요시네 교코)에게 유품으로 립스틱을 남긴다. 이 립스틱을 바르고 상대에게 키스하면 그의 얼굴을 12시간 동안 훔칠 수 있다. 카사네는 얼굴 흉터로 인해 매사 소극적인데 연출가 하부타(아사노 다다노부)의 안목으로 무대 연기를 시작한다. 한편 오만한 배우 니나(쓰지야 다오)는 각광받는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따르지 않는데, 카사네가 그의 얼굴을 훔친 후 니나 행세를 하자 연극계 연기 신성으로 유명해진다. 카사네와 니나, 하부타의 모의가 계속될수록 니나는 카사네에게 자신을 빼앗길까 두렵고, 카사네는 누려본 적 없는 인기와 관심을 지키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카사네: 빼앗는 얼굴>은 2017년 국내 출간된 마쓰우라 다루마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나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니나의 삶을 탈취한 카사네의 서사와 교직한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영
[리뷰] '페르소나'와 '블랙 스완'의 불균일 혼합물 '카사네: 빼앗는 얼굴'
-
또래가 영 지루한 16살 수잔(수잔 랭동)의 눈에 똑같은 역할에 질린 35살의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이 포착된다. 전날 남자가 카페에서 잼 바른 빵을 먹는 모습을 기억했다가 다음날 아침에 따라 먹는 것으로 은밀한 만족감을 누리던 소녀는 어느 날 그가 있는 극장으로 들어가 그의 리허설을 훔쳐보는 것으로 더 대담해지기로 한다. 마침내 시선에 대한 응답으로 라파엘이 수잔에게 말을 걸어오고, 서로가 권태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챈 둘은 만남을 이어간다.
더 깊은 관계가 아닌 사랑의 초입에 집중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은 춤으로 사랑에 빠진 상태를 표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갑작스레 시작되는 춤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몸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느릿한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특히 카페에서 나란히 앉은 수잔과 라파엘이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을 선보이는 신비로운 이인무에는 둘이 교감하는 세계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여기에 파리의 풍부한 자연광과 거리의 생
[리뷰] 더 깊은 관계가 아닌 사랑의 초입에 집중한다 '스프링 블라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