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의 흥행과 함께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서품을 받은 직후 아시아 출신 사제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교구를 지원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태석 신부가 택한 수단은 북쪽의 아랍계와 남쪽의 원주민간의 충돌로 내전이 진행 중이었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었다. 남수단에 위치한 톤즈 역시 전쟁과 가난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폐허와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남은 삶을 헌신했다. 사제이기 이전에 의사로서 아픈 사람들을 돌봤고,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성당보다 학교라고 믿으며 직접 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도 선물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악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쳤고, 생존만이 문제가 되었던 그곳에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아이들이 음악을 연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건 8년 남짓의 시간뿐이었다. 휴가차 한국에 들러 건
[리뷰] ‘이태석’, 그들은 여전히 이태석 신부를 기억한다
-
각방을 쓰는 젊은 부부가 있다. 고시 낭인인 남편(이승훈)은 집에서 가사를 전담한다. 그는 아내(박서은)를 위해 아침상을 차린다. 하지만 아내는 밥 먹을 새도 없이 급히 출근길에 나선다. 대학교 교직원인 그녀는 외벌이로 가정을 지탱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녀는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며 이혼을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아내는 싱크대에서 올라오는 역한 하수구 냄새에 대해 남편에게 불평한다. 남편은 오랜 시간 집에 머물러서인지 냄새를 맡지 못한다. 집 안에서 무기력한 남편의 감각을 일깨우는 활동은 TV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것뿐이다.
<희망의 요소>는 위기에 빠진 한 젊은 부부가 삶의 희망을 회복하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박서은과 이승훈은 <아워 미드나잇>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정방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 흑백 화면 그리고 주제가 희망이란 점에서 영화는 <아워 미드나잇>의 세계와 공명한
[리뷰] ‘희망의 요소’, 절망에서 희망으로
-
영화감독인 상민(장현성)은 대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한 학생이 드라마를 강조하는 상민의 수업에 불만을 제기한다. 상민은 심드렁하게 수업을 이어 나가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친다. 이들은 상민에게 이자를 올리겠다며 각서를 쓰라고 요구한다. 상민은 보는 눈이 많아서 얼른 서류에 지장을 찍고 상황을 모면한다. 상황은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난데없이 사채업자 만복(김진혁)이 다시 상민을 찾으러 다닌다. 그는 자신의 흔적을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상민에게 부탁한다. 상민은 만복의 일상을 함께하며 희미해졌던 영화 열정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라스트 필름>은 영화감독 상민이 사채업자 만복을 만나면서 다시 영화를 꿈꾸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감독 전수일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나오며 시작한다. 여기에 영화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그의 영화들을 고려하면 영화는 자기 반영적인 에세이영화에 가깝다. 따라서 주인공 상민
[리뷰] '라스트 필름',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
-
흥신소 흥신문화센터의 사장 현수(주지훈)는 전 남자 친구로부터 강아지를 찾아와 달라는 의뢰인의 연락을 받고 으슥한 산장으로 향한다. 현수는 돌아오지 않는 의뢰인을 찾으러 산장으로 향하다 의문의 존재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강 검사(이현균)에게 체포되어 있고, 사라진 의뢰인의 납치 용의자로 오인받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던 중 현수를 체포한 차량은 전복사고를 겪게 되고, 운전석의 강 검사는 중태에 빠진다. 어느새 현수는 경찰로부터 강 검사로 오해받고, 누명을 벗기 위해 강 검사로 위장한다. 한편 해당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검사 화진(최성은)은 검사들의 검사로 불리며 검찰청 내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지만 과거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좌천된 아픔이 있다. 화진은 납치 사건이 자신을 좌천시킨 주가 조작 사건의 피의자, 로펌 재벌 도훈(박성웅)과 연관됐음을 알게 된다. 화진과 현수는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공조에 돌입한다.
범죄 오락을 표방하는 <젠틀맨>의
[리뷰] ‘젠틀맨’, 순행 중인 영화에 제동을 거는 몇번의 급커브들
-
-
새벽의 적막을 깨는 ‘쿵’ 소리에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잠에서 깬다. 그날 이후 ‘쿵’ 소리는 제시카의 일상 속에 침투하며 그녀의 삶에 이상한 구멍을 낸다. 제시카의 기억은 다른 이들과 조금씩 어긋나며 혼선을 겪는다. 제시카는 소리의 가장 깊숙한 비밀이 그녀를 잡아끄는 것처럼 움직일 뿐이다. 각성과 잠 사이에서 흐릿하게 배회하는 유령. 그녀는 사운드 엔지니어를 찾아가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재현하거나 병원을 방문한다. 소리의 정체를 찾는 치유의 여정은 터널의 건설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을 탐구하는 고고학적 작업과 희미한 연결을 띤 채 이어진다.
<메모리아>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처음으로 태국과 정글을 벗어나 콜롬비아에서 만든 영화다. 한낮의 환각 같은 열대우림의 더위 없이도 여전히 환상에 대한 영화가 유효할까. <메모리아>는 이에 대한 고민과 답변처럼 보인다. 수면과 꿈에 대한 관심(<찬란함의 무덤> ), 전반부와 후반부로 느슨하게 나뉜 구조(<
[리뷰] ‘메모리아’, 충돌처럼 부딪혀오는 기억의 지층들. 서서히 번지는 세계의 파동
-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북한산
한동안 강 주변에 살다가, 북한산 주변을 맴돌며 산과 점점 가까워지더니 아예 바로 앞으로 다가가 산 지 6년째다. 최근 몇년간의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을 꼽을 때 북한산을 빼놓기가 어려워 제일 먼저 꼽아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북한산의 새소리와 햇살과 함께하고 꽤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와서도 창문을 열어 호흡하면서 위로받는다. 가까운 봉우리 중턱까지 여유가 될 때마다 산책하고 사색하면 아무리 번잡한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도 머리 속은 맑아지고 내가 가진 두 다리와 심장에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다.
<신의 사람들> <소스필드> <여신들> <부도지> 등
직업이 이러하다보니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종종 ‘언젠가 초미래적·초과거의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며
[LIST] 류성희 미술감독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
<어린 소녀들>
디즈니+
<행복한 라짜로>로 당해 평단의 주목을 독차지했던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중편영화다. 1940년대 초 전쟁이 한참인 이탈리아의 한 가톨릭 기숙 학교에서 일어나는 어린 소녀들의 크리스마스 일화를 그린다. 한 여인이 학교에 먹음직한 케이크를 기부한다. 그런데 수녀들이 교주에게 케이크를 바치려 하고, 이에 소녀들은 자그마한 반란을 일으킨다. 종교와 정치의 권위적 억압이 극에 달했던 시공간에서도 순수함과 영민함을 잃지 않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따스한 미소를 유발하는 작품이다. 40여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석류의 빛깔>이 떠오르는 종교적 색채와 회화적 영상미, 자크 타티의 발랄한 움직임과 산뜻한 코미디, 오즈 야스지로가 다루는 아이들만의 영롱함이 고루 섞이면서 탁월한 조화를 이뤄낸다.
<소닉 프라임>
넷플릭스
다중우주 열풍이 소닉에도 불었다. 흔히 바람돌이 소닉으로 알려진 파랗고
[리뷰 스트리밍] ‘어린 소녀들’ ‘소닉 프라임’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피스메이커’
-
디즈니+ / 제작 조너선 카스단, 론 하워드, 캐슬린 케네디, 미셸 레잔 / 감독 스티븐 울펜든, 제이미 차일즈, 필리파 로우소프, 데브스 패터슨 / 출연 워윅 데이비스, 엘리 뱀버, 에린 켈리먼, 로자벨 로렌티 셀러스 /플레이지수 ▶▶
넬윈족의 소인 윌로우가 악의 여제 바브몰다를 물리친 지 수십년 후, 다시 악의 세력이 꿈틀거린다. 티르 아슬린 왕국에 침입한 악의 세력은 왕자 에어크를 납치하고, 여왕은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공주 키트를 위시한 원정대를 꾸려 출정시킨다. 원정대의 목표는 세계에 남은 유일한 마법사 윌로우를 찾아가 해법을 구하는 일이다. 이윽고 원정대와 만난 윌로우는 과거에 그가 구했던 예언의 아이 일로라 대넌이 악에 맞설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렇게 윌로우와 원정대는 자신의 정체도 모른 채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로라 대넌을 찾아 왕국의 위기를 헤쳐나가려 한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기획하고 론 하워드가 연출한 영화 <윌로우>(1988)의 후
[OTT 리뷰] ‘윌로우’
-
유리(알세니 바틸리)는 파리의 근교에 위치한 가가린 공동주택단지에 살고 있다. 시설이 낡고 낙후된 가가린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리는 “가가린은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친구 우삼, 디아나(리나 쿠드리)와 함께 건물을 보수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 애쓴다. 유리에게 가가린은 집이자 가족이고, 웃음과 사랑이 머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주택단지는 철거가 예정되고 주민들은 가가린을 떠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유리만이 남아 남몰래 건물의 파수꾼이 된다. 폐허가 된 건물과 소년은 외로움이라는 형상으로 닮았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마을과 이를 지키려는 소년. 둘 사이에는 또 하나의 교차점이 있다. 바로 ‘우주’다. 절묘하게도 유리와 가가린이라는 이름을 합치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된다. 가가린 단지의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동경했던 소년 유리는 이제 단지 내부에 자신만의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려 한다. 철거가
[리뷰] ‘가가린’, 가장 그늘진 자리에 깃드는 무한의 꿈
-
핑크퐁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단 하나.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핑크퐁은 호기, 제니, 포키 등 원더스타 친구들과 함께 팬들을 위해 콘서트 무대를 기획한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곡을 선정하고 연습을 이어가는 가운데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는 콘서트 무대 사이마다 에피소드를 배치해 원더스타 친구들의 노력과 결과를 짧은 호흡으로 연결하도록 구성했다. 싱어롱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답게 어린이 관객이 따라 부를 다양한 동요로 무대 순서를 꾸렸고, 핑크퐁 콘서트만의 응원법을 배포하면서 실제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아기 상어> <경찰차> 등 핑크퐁의 대표 동요를 그루비한 재즈, 신나는 EDM, 열정적인 로큰롤로 변주해 새로운 장면을 완성시켰다. 영화 전반에 무대 연출 비중이 높지만 콘서트라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완수해나가는 스토리라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대 위에 서는 게 두려운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짚어내면서 용기와 화합
[리뷰] ‘핑크퐁 시네마 콘서트2: 원더스타 콘서트 대작전’, 어린이 관객의 본능맞춤형 콘서트
-
2009년 초연된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이 스크린으로 되살아났다. 안중근(정성화)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와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 채 대한제국 의병대에 들어가 의병대장으로 활약한다. 대의의 깃발을 내건 고난의 가시밭길이지만 대한 독립을 향한 안중근의 열망은 점점 커져간다.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 동맹’으로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한다. 이토 히로부미 곁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 중인 설희(김고은)의 활약으로 일급 기밀을 알아낸 안중근은 하얼빈으로 향한다.
대의란 무엇인가.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룬 뮤지컬의 내용을 충실히 옮긴다. 뮤지컬의 매력을 다채로운 영상으로 옮기는 것과 뮤지컬‘영화’를 제대로 연출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영웅>은 전자에 가깝다. 시베리아
[리뷰] ‘영웅’, 기어이 울리고 마는 빛나는 스코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