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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 삶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긴장을 견디는 것

너는 누구인가. 아니, 네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서스펜스를 표방하곤 있지만 <스파이의 아내>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여기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비밀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는 없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기억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선 이미 결정이 된 바이기 때문이다. 대신 <스파이의 아내>에는 그동안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내부자의 시선이 있다. 1940년대 일본 제국주의 말기, 불안과 혼란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스파이가 되고자 했던 남자와 그를 위태롭게 바라보는 그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남편을 불안한 가운데에도 믿고, 믿는 가운데에도 불안에 떤다. 이윽고 얇은 살얼음 아래 흐르던 불안과 의심의 격류는 서서히 진동수를 올리며 표면 위로 떠올라 당신의 마음을 장악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그의 관심사는 눈앞에 모종의 음모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감지하는 쪽에 가깝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첫 시대극이자 보기 드문 완성도를 자랑하는 <스파이의 아내> 역시 여러 지점에서 보는 이를 매혹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자신에게 여러 가지로 영감을 줬던 <보스턴 교살자>(1968)가 “연쇄살인범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있는 장면. 다른 한편에서는 형사가 전혀 수사를 하지 않는 장면”을 제대로 그리고 있기에 감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찬가지로 <스파이의 아내> 역시 스파이 행위 대신 다른 것들로 가득 찬 영화다. 서스펜스의 대가이자 시대의 지성인, 탁월한 연출가인 그에게 <스파이의 아내>가 보이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 목격자와 목격되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늦었지만 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축하한다.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유사쿠를 연기한 다카하시 잇세이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배우이기 때문에 그가 선인이었는지 악인이었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는 일본 관객의 반응이 꽤 있었다. 평단에 대해서는 비평을 직접 읽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전쟁을 다룬 것에 대해 ‘지나치다’라는 의견과 ‘미온적이다’라는 양극단의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동안 주로 현대의 도쿄를 무대로 삼았는데 처음으로 시대극에 도전했다. 동시에 엄청난 밀도로 짜인 실내극이다.

=시대극을 처음 해보고 흥미로웠던 것은 배경에서부터 의상, 배우의 대사까지 모든 것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려본다거나 배우에게 각본에 없는 즉흥적인 대사를 말하게 하거나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도는 좁아졌지만 그만큼 미술이나 의상, 대사 등을 몇번이고 검토해 충분히 다듬어진 것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실내극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모든 신이 밀도 높게 완성되어갔다고 생각한다.

-서스펜스, 그리고 멜로드라마라고 장르를 구분하면 될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평 중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좋다.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문제없다. 처음부터 서스펜스나 멜로드라마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관객이 그런 부분을 많이 즐겨주신다면 만족한다. 다만 동시에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도 다루고 있고, 작품 곳곳에 장르를 벗어나 전쟁 그 자체가 얼굴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이야기로서 피해갈 수 없는 점이었다. 그 결과 순수한 장르영화에 비하면 약간은 복잡하고 장황해지기도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왜 스파이가 아니라 ‘스파이의 아내’인가.

=이건 장르영화지만 스파이영화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은밀한 행동을 하는 전말을 다루지 않고, 적과 아군이 혼재하는 권모술수가 여러 가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있는 건 전시하에 일반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뿐이다. 물론 예산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결국 지금까지도 해오던 작업의 연장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묘사 속에, 결코 보이지 않는 외부 세계가 물밀듯이 침입해오는 이야기가 나의 관심사다. 이번에도 전시하의 생활을 중심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바깥쪽에 거무죽죽하게 펼쳐져 있는 전쟁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카메라를 향하는 대상은 전쟁도 만주도 스파이도 아닌, 어디까지나 보통의 인물인 스파이의 아내가 가장 적합했다.

-첫 아이디어가 장편 극영화로 발전된 과정이 궁금하다. 하마구치 류스케와 노하라 다다시가 쓴 각본을 보고 도중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예전에 도쿄예술대학에서 가르친 학생이었던 노하라 다다시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고베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노하라 다다시는 일찍이 고베에서 같은 도쿄예술대학 출신인 하마구치 류스케가 찍은 <해피 아워>의 공동 각본가이기도 한데, 그 인연으로 고베에 아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았다. 나는 “영화를 찍는 건 좋은데 내용은 그쪽에서 생각해달라”라고만 대답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 노하라가 하마구치와 함께 제출한 것이 <스파이의 아내>였다. 읽고서 든 생각은 내용은 재미있지만 실현하려면 예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후 역시 그들의 연줄로 도쿄의 <NHK>나 <아사코>의 제작위원회 등이 차례로 이 기획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것저것하는 사이에 어느새 영화 제작으로 실현된 것이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경위다.

-<NHK> 드라마로 제작했던 것을 다시 영화화하여 개봉했다. 8K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드라마 버전과 영화 버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

=화면 사이즈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동일하다. 내용에 있어서도 8K 버전과 영화 버전간에 큰 차이는 없다. 8K 버전을 규격에 맞는 8K 시스템으로 시청하는 건 영화와는 또 다른, 그러나 더 영화적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의 독특한 체험이었다. 영상은 농밀하고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음영이 존재했고, 소리는 무려 22채널이나 있었다.

-스파이, 배신, 전쟁, 증언, 필름 등 얼룩진 20세기 역사에 대한 접근이 흥미롭다. 특히 전쟁에 대한 입장과 고뇌가 느껴진다. 동시대 일본영화계의 거장이자 기성세대로서 시대극을 경유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거의 현대극만 찍어왔다. 그 이야기 속에서 종종 개인과 사회가 대립하는 일들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잘 모른 채 끝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도전한 시대극에서는 역사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가 처음부터 명쾌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물론 주인공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나 자신은 “괜찮아, 조금 있으면 전쟁은 끝나”라고 확신을 갖고 찍을 수 있었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건 남편인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지만 사토코(아오이 유우) 역시 그저 수동적인 인물은 아니다. 사토코가 유사쿠의 조카를 찾아 여관을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아오이 유우, 다카하시 잇세이 둘 다 현대극과 거의 다르지 않은, 지금 상식으로 봐도 지극히 보편적인 지성과 감정을 가진 인물로 연기했다. 다만 당시에는 정보를 입수하는 방법이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고, 고베에서 검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내와 업무상 해외를 오가는 남편 사이에서는 그 세계관이 크게 달라져버린다. 그것이 이 영화의 서스펜스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외국 관객은 알아차리기 힘든, 1940년대 일본 말투를 섬세하게 표현해주었다. 이건 헌병대 대장을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 모두 원래 고전영화를 많이 보기도 해서 내 의도를 곧바로 이해해주었고, 그 미묘한 말투의 차이를 완벽하게 연습해서 표현했다. 이렇게 준비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건 항상 즐겁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감독님이 기존에 다루던 여성 캐릭터와 사토코는 상당히 다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로맨스를 다루는 방식이 확실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마구치 류스케와 노하라 다다시가 쓴 각본을 읽자마자 놀란 것이 있다. 주인공 사토코가 처음에는 남편에게 애인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질투심에서 시작한 내용이 이런저런 사이에 전쟁 범죄를 고발하는 지점까지 가버린다는 전개가 새로웠다. 나는 이러한 여성에 대해 글을 쓴 적도, 발상을 한 적도 없다. 질투심에서 시작하면 보통 살인사건 같은 것에 이르게 되는 게 내겐 보통이었다. 내가 직접 썼다면 전쟁 범죄 고발을 목표로 할 때 좀더 다른 계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한 정석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 하마구치와 노하라의 대단한 점이다.

-폭격으로 붕괴되는 정신병원 건물을 빠져나와 해변가로 나아가는 사토코의 모습이 담긴 엔딩 장면은 감독님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유독 비장하고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론 유사쿠가 모자를 흔드는 장면에서 영화가 사실상 끝이 났는데 이어간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야기를 사토코의 절규와 울음에서 마무리한 이유가 있나.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 영화를 서스펜스나 멜로드라마에 충실해서 본다면, 유사쿠가 모자를 흔들면서 배를 타고 떠나는 데서 끝나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게 더 순수한 장르영화로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편으로 전쟁이라는 아주 무거운 주제 또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일본이 시작한 추악한 전쟁이기 때문에 그 무게는 지긋지긋할 정도다. 이러한 또 하나의 테마 안에서 사토코를 어떻게 결착지을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정신병원과 해변가 신이 덧붙여졌다. 라스트에서 사토코는 그야말로 ‘통곡’을 한다. 너무 단순한 표현이었는지 모르지만, 사토코가 전쟁에 대해 최종적으로 느낀 감정은 그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토코가 집으로 옛 친구 야스히루(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초대한 이유는 뭔가. 과거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아 긴장감이 이중으로 발생하는 느낌이다.

=집으로 초대한 깊은 이유는 따로 없다. 옛날부터 마음을 아는 상대였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하는 해석으로, 아오이 유우는 연기했다. 물론 야스히루의 마음속은 착잡했을 것이다. 이게 유혹일까, 아니면 무슨 덫일까, 이런 식으로. 한편 사토코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약간은 부도덕한 감정이 있었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꿈에 나온 유사쿠에게 야스히루와의 밀회에 대해 야유를 받는다. 그것과 별개로 내가 의도한 장치와 의도하지 않은 장면들이 섞여서 관객이 여러 가지를 상상해보는 게 서스펜스 드라마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상대의 패를 볼 수 없는 카드 게임처럼 말이다.

-사토코가 ‘스파이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유사쿠가 찍어온 필름을 보고 난 뒤다. 그런데 이후 그녀의 행동을 보면 정의감보다는 유사쿠의 동지가 되겠다는 집착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조카를 굳이 군부에 고발하는 이유에 대해선 뚜렷한 설명이 없다. 마치 안개 낀 강가처럼.

=지적한 대로 이 부분의 전개는 상당한 비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비약이 있기 때문에, 위의 질문에서도 언급했던 사토코의 행동 원리가 질투로부터 고발로 변화해 나가는 전개가 가능했다. 부연 설명하자면 사토코는 전쟁 범죄를 고발하는 유사쿠의 동지가 되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유사쿠와 미국으로 도항하고 싶었던 것뿐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한 주인공의 애매함과 무질서함이 그녀의 매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촬영했다.

-여느 서스펜스가 정보를 지연시킨다면 <스파이의 아내>는 ‘왜’를 아예 지워버리는 것 같다. 결국 관객은 결과와 현상만 목격하고 원인을 제공받지 못한다. 설명되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불안. 불투명한 진실이 영화 내내 안개처럼 깔려 있다.

=상당히 어렵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무릇 이야기라는 것은 거의 결과만을 제시하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뛰어난 작가의 손에 들어가면 그 제시된 결과만으로 관객은 100% 만족할 수 있고, 왜 그럴까 하는 원인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혹은 원인이 너무나도 분명해서 그것을 다시 물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파이의 아내>에서도 일부러 설명을 생략해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은 한번도 없다. 그보다는 놀라운 결과만 줄줄이 늘어놓아 그 일로 관객에게 만족을 주려는 의도에 따라 각본을 썼다. 하지만 완벽하게 이야기를 구축하기는 어려운 법이고, 만약 불만족스런 의문들이 당신의 뇌리에 남았다면 아직도 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불투명함이 영화가 전할 수 있는 진실을 명료하게 해준다고 느꼈다.

=감사한 말씀. (웃음)

-도항에 성공한 유사쿠가 배에서 유쾌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장면에서 유사쿠의 진심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사코토를 온전히 믿지 못해 일부러 알리지 않은 걸까. 중반 자신의 조카를 밀고한 사토코의 행위에 대해 복수를 가한 걸까. 아니면 아내를 아끼는 지극한 사랑으로 혼자 위험을 감수하고 해외로 떠난 걸까.

=자유롭게 해석하길 바란다. 일본 관객 중에도 이 점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분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유사쿠의 정체에 대한 안타까움은 바로 사토코의 심경 그 자체이기도 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사토코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가 마지막 자막으로 표시된다. 만든 사람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라는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정말 놀라운 건 유사쿠가 자신을 밀고하고 혼자 도항했다는 걸 깨달은 사코토가 헌병대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외치는 대사다. “대단해!”라는 단발마를 들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관객은 오직 이 리액션만으로 모든 정황과 심리를 추측해야 하는데, 공간을 찢고 나오는 듯한 이 한마디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통쾌함, 놀라움, 분노, 수치심, 안도감. 모든 감정이 범벅이 된 듯 감히 해석할 수 없는 이 목소리는 실로 곤란하다. 곤란해서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뇌리 한구석에 각인되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 대단히 반가운 감상이다. 사토코의 “대단해!”라고 하는 대사는 하마구치와 노하라가 썼다. 매우 중요한 대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진의 혹은 배우가 어떤 식으로 대사를 말해주면 좋을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전혀 단서가 없어서 많이 고민한 대사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이 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영화란 재미있는 것이어서 감독이 고민하더라도 뛰어난 각본과 뛰어난 배우가 있으면 의외로 잘되는 법이다. 이 “대단해!”라는 표현 방법은 모두 아오이 유우에게 맡겼다. 나는 아오이를 100%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솔직하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맡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웃음) 그러자 아오이는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런 식으로 장면이 완성되었다.

-유쾌하게 손을 흔들며 배를 타고 가는 유사쿠의 이미지가 삽입된 일련의 편집은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는 앞서 등장한 사토코의 꿈 장면 때문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실제 유사쿠가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의 재현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악몽을 꾸던 사토코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배를 타고 유사쿠가 떠나는 장면은 ‘유쾌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웃음) 아마 음악이 그런 인상으로 이어지게 한 것 같다. 다카하시 잇세이가 연기를 정말 오묘하게 잘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 머릿속의 그 장면에서 유사쿠는 그저 엄숙하게 “사토코, 안녕. 일본, 안녕”이라는 심정으로 모자를 흔들고 있다. 일본에 대한 작별이랄까. 다만 그 장면 자체는 사토코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1940년의 고베항과 여객선을 재현하는 것은 예산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작은 통통배를 썼고 그에 맞춰 안개를 깔아봤는데, 그 탓에 약간 꿈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오해를 하게 해서 죄송하다. (웃음)

-실내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의 동선과 커팅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나란히 마주선 두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일을 철저히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인물끼리 마주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표현이다. 잘 사용하면 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지만 남용하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이런 숏들은 드물게 사용한다. <스파이의 아내>에서 명확하게 그것을 의도해 촬영된 장면은 사토코와 유사쿠의 장면에서 한번, 사토코와 타이지가 나올 때 한번, 유사쿠와 타이지의 장면에서 한번 정도였다.

-작게는 프레임, 계단, 문의 바깥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바깥, 지구 바깥의 외계인에 이르기까지 감독님의 영화에서 ‘외부’라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고 특별히 폭력과 연관되는 측면이 있다. <스파이의 아내>에서도 바깥의 폭력과 죽음이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에서 ‘바깥’이라는 문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무엇을 촬영하고 무엇을 촬영하지 않을지를 선별하는 것이야말로 작품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신경 쓰이는 요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 제작의 실체는 단순하다. 예산이나 시간, 그외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최소한 억제된 것을 찍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 표현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촬영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이 원리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이건 어쩌면 ‘죽음’이나 ‘폭력’과 닮았다. 현실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바로 옆에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존재들을 분명히 목격하지 못한다. 반대로 목격하진 못해도 일상에 존재한다. 죽음과 폭력의 낌새로 인해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긴장을 견디면서 생활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다.

-<큐어>(1997)의 한 장면과 마찬가지로, 영사되는 필름 이미지가 미스터리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사코토는 직접 영화에 출연하고, 유사쿠가 찍어온 필름을 보고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영화를 찍고 본다는 것, 감독님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초기)영화에 대한 매혹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어떤 영상을 문득 목격하게 된다는 에피소드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내 작품 속에 몇번인가 등장했다. 하마구치 류스케와 노하라 다다시는 그러한 내 취향을 의식하고, 이번에 그것을 충분히 담아주었다. 나 자신도 그런 설정을 왜 좋아하는지를 깊이 고찰한 적은 없다. 아마 바로 위의 질문에서 답했듯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외부 주제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외부’에 대한 가장 알기 쉬운 구체적인 예시가 바로 극중에서 영사되는 영상인 셈이다. 게다가 영상이란 ‘과거에 있었던 현실’이다. 요컨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느닷없이 덤벼드는 외부, 그것이 영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끝자락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그린다는 점에서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확실히 세계에서 가장 퀄리티 높은 (한국) 관객 여러분이 이 영화를 봐주신다는 것은 큰 영광인 동시에 긴장도 된다. 영화의 완성 자체도 신경이 쓰이지만 이번 영화는 예전에 일본이 시작한 그 무서운 전쟁을 테마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분들이 “아직 불충분하다”라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일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성을 가진 영화가 일본에서 지금까지 거의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만든 의의가 다소나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앞으로 기대해주길 바란다. 일본의 젊은 감독들이 이러한 테마를, 더 선명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영화화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그 작은 발걸음이니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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