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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②
씨네21 취재팀 2023-12-01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한국/2023년/93분/새로운선택 이우빈

초등학생 김동춘(박나은)은 대입 준비로 바쁘다. 수학, 영어는 말해야 입 아프고 중국어, 태권도, 논술, 코딩까지 섭렵 중이다. 친구는 없고,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이제는 대입 특별 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페르시아어가 동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다. 우연히 막걸리 한병을 주웠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기포가 페르시아어를 활용한 모스부호인 것이다. 동춘은 막걸리가 보내는 모스부호의 지시에 따라 복권도 사고, 어디론가 끌려가기도 한다. 분명 만화적이고 엉뚱한 상상력의 연속이지만, 영화의 기반은 지독한 현실성에 있다. 좁게는 기괴한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를 비판하는 모양새다. 크게는 배움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인간은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지만, 무언가를 그릇된 목적으로 수용하고 맹신하는 순간 삶은 크게 뒤틀리게 된다.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다. 귀여운 외양 안에 독 기운이 가득하여 아주 무서운 영화다. 김다민 감독의 첫 장편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아가미

유승원/한국/2023년/77분/새로운선택 박정원 영화평론가

작은 극단에서 생활 중인 배우 승원(유승원)은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이복동생 가현(정가현)과 재회하게 된 승원은 가현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행을 앞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갑작스레 텅 빈 옛집에서 기거하게 된 승원은 갈 길 잃은 사람처럼 스산하고 적막한 집과 동네를 떠돈다.

유승원 감독이 연출, 각본, 주연을 맡은 영화 <아가미>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극을 이끌고 간다. 하나는 방황 중인 청년 승원 역을 맡은 감독 겸 배우 유승원의 무표정이다. 마땅한 목적도 방향도 없이 삶의 무게감과 피로감을 견뎌내야 하는 청년 세대를 표상하는 듯한 특유의 멍한 표정이 영화 고유의 색채를 부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갈 길 잃은 발걸음과 무표정 위로 반복되는 테마곡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지닌 이 흥미로운 배경음악은 어디에도 맘과 몸을 붙이지 못하는 승원의 불안과 극 전반의 불길한 징조를 구현해내며 영화의 빈틈을 채운다.

땅에 쓰는 시

정다운/한국/2023년/115분/페스티벌 초이스 박정원 영화평론가

선유도 공원,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호암미술관 희원,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공통점은 국내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선생의 섬세한 손길로 가꿔진 곳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나무와 꽃을 심는 차원을 넘어선 ‘땅에 쓰는 시’와도 같은 조경을 완성시켜온 정영선 선생의 작품 세계와 조경 및 삶의 철학이 사계절을 배경으로 잔잔하고도 고요하게 그려진다. 선생의 말에 귀 기울이며 바라보는 정원과 공원의 풍경,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온함을 선사한다.

<이타미 준의 바다>(2019),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0) 등 공간과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정다운 감독의 작품이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공간과 인간의 공존에 관련된 직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익히 접해본 바 있지만, 조경가라는 직업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관객들이라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제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그녀에게

이상철/한국/2023/105분/본선 장편경쟁 박정원 영화평론가

철저한 계획성과 실행력, 남다른 성취욕과 처세술을 바탕으로 완벽한 커리어를 일궈온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은 결혼 후 쌍둥이 남매를 낳는다. 첫째 지수와 얼마간 다른 발달 양상을 보인 둘째 지우가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며 상연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로서 상연은 그전까진 경험한 적 없는 세상의 이면을 몸소 겪고 느끼고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다치며 성장해간다.

기자 출신 류승연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녀에게>는 장애인과 그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평범한 인상인 듯하면서도 장애인의 ‘엄마’의 배움과 성장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차이를 두고자 한다. 장애인의 엄마라는 이유로 갖는 모종의 죄책감과 책임감,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언행으로 인한 상처와 분노, 한편으로 다른 장애인 가족들로부터 얻게 되는 연대와 우정 등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라면 알기 쉽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비교적 따듯하고 담백한 톤으로 펼쳐진다.

세기말의 사랑

임선애/한국/2023/117분/페스티벌 초이스 박정원 영화평론가

새천년을 앞둔 혼란과 혼돈의 1999년 겨울의 끝자락, ‘정직테크’ 경리과장 영미(이유영)는 공금횡령 방조죄로 체포된다. 그녀를 졸지에 전과자가 되게 만든 이는 배송 기사 도영(노재원)으로, 다정다감한 그를 짝사랑했던 영미가 그의 공금횡령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탓이었다. 그렇게 9개월의 복역 생활을 마친 영미는 2000년이 되어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데, 그녀 앞에 도영의 장애인 아내 유진(임선우)이 대뜸 나타난다. 모종의 이유로 동거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은 보다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된다.

69살 여성의 세상을 향한 분투기를 그려낸 영화 <69세>로 장편 데뷔한 임선애 감독의 신작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의 냉랭한 잣대와 동떨어진 두 인물이 얄궂은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에서의 블랙 유머와 위악을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앞선 몇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들의 범상한 후속작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흑백에서 컬러 전환 등 세기말이라는 배경을 나름의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유영과 임선우라는 뛰어난 두 배우의 앙상블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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