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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프로 세계에선 0.1%도 안 봐준다”
박혜명 사진 이혜정 2008-11-11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로 스크린 데뷔한 주지훈 인터뷰

“강제적인 희로애락이 있다.”

주지훈은 연기에 대해 설명하다 이런 독특한 표현을 썼다. 차가운 의자 위에 앉아 바보처럼 입을 다문 채 고고한 스타덤의 맛을 즐길 것만 같았던 그는 예상외로 시니컬하고 열정적인 달변가였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 기자시사 이틀 뒤인 10월2일 목요일 오전, 빽빽한 인터뷰 스케줄 속에서 한 시간의 만남을 어렵사리 가졌다.

1982년생인 주지훈은 모델 경력 4년차 때 <>(2006)으로 데뷔해 벼락같이 스타덤에 올랐고 두 번째 드라마 출연작 <마왕>(2007)으로 (국내에선 7~8% 시청률에 머무는 대신) 일본에서까지 큰 인기몰이를 했다. <앤티크>는 그의 영화 데뷔작이자 세 번째 출연작 그리고 세 번째 주연작이다. <앤티크>의 이진혁은 어린 시절 상처를 감추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삼십대 초반의 부잣집 도련님이다. 예민하고 까칠하지만 그 속엔 정이 많고, 이기적이고 연약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를 지켜낼 줄 안다.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나른한 움직임에 섬세하고 여린 이목구비를 가진 주지훈은 <앤티크>를 통해 연약한 꽃미남 스타가 아닌 존재감있는 연기자로서 자신이 지닌 끼와 잠재력의 일부를 증명한다. 목소리 좋은 스물일곱살의 신인배우는 이 칭찬을 듣고, 기분 좋은 듯 깊숙이 허리를 굽히고 정중한 인사를 했다.

-영화 완성본을 언제 처음 봤는지. =기자시사 때 본 게 처음이다. 그전에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 봤다. 완벽하게 (편집이) 안된 영화를 보면 내 감상이 달라질까봐.

-처음 본 소감은 어땠나. =(의례적인 미소를 띠며) 뭐, 달콤씁쓸하다.

-어떤 게 달콤했고 어떤 게 씁쓸했나. =달콤했던 건 감독님이 편집을 되게 잘하셔서 비주얼이나 캐릭터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입체적으로 나왔다는 것이고, 아쉬웠던 건 내가 했던 연기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 그게 아직 능력 부족으로 잘 안됐다는 것이다.

-어떤 게 부족했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진혁의 캐릭터가 갖는 리듬감이 일정했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고, (주변에) 많이 물어봤는데 괜찮다고들 하시지만 일단 내가 볼 땐 (캐릭터가) 많이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편집 영향도 없지 않은 것 같지만 결국 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연기자의 몫이니까 그것(편집)까지 생각을 더해서 더 잘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긴 자신의 연기를 보고 만족하는 연기자가 어딨겠나.

-영화라는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웠나. =뭘 하든 늘 어렵다. 난 모델 생활을 4년을 넘게 했고 햇수로 6년차가 넘는데 사진 한 컷 찍을 때마다 어렵다. <앤티크> 현장은 스케줄이 빡빡해서 드라마와 달리 크게 여유있지도 않았다. 다만 이번 영화로 아주 ‘쪼금’이긴 하지만, 연기라는 것 자체를 편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전엔 너무 압박감에만 시달렸다면 지금은 (손가락 제스처로 강조하며) 요만큼이라도 즐겨보자라는 마음이 생기고.

-촬영을 끝내고 나니 든 감정인가. =촬영 중반쯤부터 그랬다. 그래서 끝날 즈음엔 ‘아 내가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구나, 잘하건 못하건’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다음 작품(<키친>)에선 영화 자체가 행복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빈말이 아니라 촬영장 나가는 게 매일 소풍가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본인이 연기자라는 생각을 안 했나. =그건 자의 반 타의 반이다. 네가 연기자냐, 네가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런 느낌들이 (외부로부터) 되게 많이 다가왔고 심지어 같이 일하는 곳에서도 그런 느낌을 줬고. 지금도 (맞은편 기자를 가리키며) 반신반의하는데 오죽했겠나. (웃음) 그땐 반신반의가 아니라 불신이었다. <마왕> 끝나고 김지우 작가님 인터뷰 봐도 처음엔 나를 믿지 않고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나도 신인모델과 함께 촬영한다 하면 그 친구를 믿지 않을 거다.

-어떤 계기로 ‘내가 연기자구나’ 느끼게 됐나. =드라마 두편 모두 감독님이 워낙 거장인 분들이었고 내 아버지뻘 분들이었다. 포스도 굉장하시고 개인적으로 말 붙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감독님이 크게 디렉션 없는 상태에서 “다시 가” 그러면 그 이유를 물어보질 못하고 혼자 해결해야 했던 부분이 되게 많았다. 그게 습관이 돼서 영화도 초반엔 힘들었다. 민 감독님이 디렉션 많은 분이 아닌데, 나는 말을 안 하고 혼자 고민하고 찍고, NG 나고 또 NG, 또 NG, 이렇게 서로 답답해하다 어느 순간 감독님께 내 의문을 여쭤보게 됐고 의사소통이 편해진 시점부터 연기도 조금씩 편해졌던 것 같다. 내 의견을 받아들여달라는 게 아니다. 이왕이면 이해를 하고 연기를 하는 게 좋지 않나. 그래서 다음 작품은 뭘 하더라도 감독님과 짧은 시간 안에 의사소통을 하고, 감독님의 짧은 디렉션도 좀더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웃음) 갖고 있다.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서로의 연기에 대해 대놓고 질타를 했다고. =처음부터 얘길 꺼내고 들어갔다. 왜 얘길 꺼냈냐면, 내가 이 시나리오에서 받은 느낌은 이 영화가 인물들간의 관계, 그 속의 공기를 그린 영화라는 것이었고 캐릭터성이 굉장히 강해서 관계마다 캐릭터들간의 비율을 맞추는 게 중요하단 거였다. 근데 다 같은 생각이더라. 좋다, 그럼 우리 서로 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이제부터 서로 연기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하자! 물론 그게 한번에 된 건 아니다. 아무리 약속을 했어도 무의식적으로 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내가 상대에게 실수할 수도 있고.

-첫 영화인데 본인 연기 말고도 신경쓸 게 많았겠다. =인물들의 사이를 그린 영화라 어쩔 수 없었다.

-드라마 두편 이후 곧바로 주연 영화를 찍었다. 첫 영화 혹은 첫 주연 영화의 시점이 소속사 차원에서든 개인적으로든 계획돼 있었나. =그렇게 전략적으로 하는 건 없고, 일단 회사로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내가 다 본다.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무조건 다 본다. 앞으로 내가 좀더 여유를 갖거나 경험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진 모르겠는데 <앤티크>까지는 그 시기의 내 마음 상태가 각각 반영된 선택들이었다. 이 캐릭터가 나랑 지금 똑같은 상태네, 내 자신과 많이 닮았네, 라는 진실성에 따른 선택.

-그럼 <마왕>과 <앤티크> 사이의 주지훈의 마음 상태는 어떤 것이었나. =그걸 지금에서야 깨닫는데 적응을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연기자가 되고, 드라마가 잘되고, 이런 변화들에 대해 적응을 너무 못했던 거다. 이제야 깨닫는 걸 보면 적응하는 데 3년 걸린 셈이다. 워낙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 성격인데도 어쩔 수 없더라. 말 많은 이쪽 세계가 어린 나한테 굉장히 상처였던 것 같다. 그 때문에 내 내면이 굉장히 어두웠고 도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사람의 착함과 그렇지 않음을 나눠야 하는지, 무엇이 선과 악인지 심하게 고민했다. 그럴 때 <마왕>을 선택했고 그 작품이 끝난 다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고민이 풀렸다. <앤티크>를 선택할 무렵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상처를 가졌지만 겉으로는 잘 알 수 없는, 내내 슬퍼하고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어느 땐 굉장히 밝지만 어느 땐 굉장히 혼자를 고립시키는. 그렇다면 어느 때의 내가 진짜 나인가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이진혁이란 캐릭터가 보이더라. 역시 <앤티크>를 찍고 나서는 그 감정이 풀린 것 같다.

-<>을 선택할 땐 어땠나. =<> 전에 <봄의 왈츠>에 캐스팅이 돼 있었다. 주연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팀에서 연락이 왔다. 안 하겠다고 했다. 난 그때 연기아카데미를 다녔고 내 실력을 알았다. 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는 굉장히 냉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실수하고 그래도 욕먹는다. 작품에 누를 끼칠까봐 못하겠다고 했다. 난 표현하는 게 좋아서 모델이 된 사람이고 더 표현하고 싶어서 연기에 눈을 돌린 사람이다. 앞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많다. 근데 그거 하나 하고 죽을 순 없다 그랬다. (웃음)

-매장당할 거라 생각했나보다. (웃음) =나를 아니까. (웃음) 근데 주위 분들과 얘기하다가 그런 기회를 얻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연기자를 꿈꾸는 모든 청춘남녀를 통틀어 너 하나밖에 없단 얘길 들었다. 그게 운명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근데 아무리 각오를 했다지만 아니나 다를까 힘들었다.

-<>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다음 인터뷰들을 보면 모델 데뷔 전에 고생했던 얘기들이 꽤 많다. 요지는 ‘나도 고생할 만큼 했고 힘들게 살았다’인데, 세간에서 주지훈이 드라마 한편으로 너무 쉽게 많은 걸 얻었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그 오해를 풀고 싶었나. =그건 그냥 물어보니까 대답했던 것들이다. 나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정말 진실하게 살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난 스타가 되길 원한 것도 아니고, 그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나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 내 손에 쥐어질 마지막 창과 방패는 진실성밖에 없는 것 아닌가. 세간의 선입견을 바꿔야지 하는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쉽게? 나도 오디션 엄청나게 많이 봤다. 내 눈이 짝눈이다. 그게 <마왕> 때는 장점이 됐다. 처음에 방송사 갔을 때 “넌 눈이 짝눈이라 배우를 할 수 없어” 이랬다. “넌 키가 너무 커. 네가 어떻게 배우하려고 그래?” “너 왜 이렇게 까매.”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들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독하게 살았고, 열심히 살았다. 황인뢰 감독님은 내가 신인인 걸 알고 캐스팅하셨다. 0.1%도 봐주는 건 없다. 여긴 프로 세계이고 난 돈을 받고 일하고 감독님은 연출이라는 자신의 프로페셔널 영역을 지켜야 한다. 내가 하나 잘못하면 모든 게 삐걱거린다.

-본인이 지금 이곳까지 온 속도가 어떠했다고 느끼나. 적당했나, 빨랐나 혹은 아직 더 서둘러야 할 때인가. =난 원래 시간을 느리게 사는 사람이다. 굳이 다작은 하지 않아도 좋은데 어서 빨리 견문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많은 걸 느끼고 내 안의 수용폭이 넓어지면 그만큼 공감대를 찾을 캐릭터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난 운이 좋다는 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번 사는 인생 아니지 않나.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운이 왔다는 건 굉장히 스페셜한 혜택이지. 굉장히 큰 혜택.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운이 왔으면, 그 크기만큼의 고통과 불행이 온다.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어가면 또다시 행복이라는 큰 파도가 올 테고. 그걸 넘어가는 방식은 잠수일 수도 있고, 서핑보드를 타면서 즐기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물을 먹고 기절했는데 눈을 떠보니 지나간 것일 수도 있고. 그건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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