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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구교환, 마음으로부터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2-05-04

<반도>의 서 대위, <모가디슈>의 태준기 참사관, <D.P.>의 한호열 상병, <킹덤>의 아이다간…. 지금까지 배우 구교환에게 평범한 미션이 주어진 적은 없었다. 소도시에서 귀불이 출토된 후 평범한 주민들의 내면에 지옥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괴이>의 세계에서 고고학자 정기훈 역시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또 한번 몸을 던진다. 장르의 기운이 활성화된 시공간이지만 구교환은 그 속에서 오래된 유물과 관계에 밀착된 한 사람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 초자연 스릴러를 표방하는 <괴이>는 장르적 성격이 매우 짙지만 정기훈이란 인물은 어떤 의미에서 배우 구교환이 연기한 인물들의 좌표 위에서 오히려 현실에 발 딛고 선 사람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게 재미있다.

= 묘하게 안심되는 말이다. (웃음) 작품의 장르적 성격보다는 사람에 충실한 채 연기한 편이다. 아웃풋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 건 사실이다. 스릴과 서스펜스, 호러의 기운이 사방에서 풍기지만 연기하는 배우인 나 자신은 그런 배경들에 함몰되지 않는 편을 택했다. 고고학자, ‘월간 괴담’을 만드는 유튜버, 그리고 이혼한 아내 수진과 딸 하영에만 집중했다. 딱 이 네 가지가 중요했다.

- 오컬트 잡지 ‘월간 괴담’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튜버까지 된 캐릭터인데, 배우 구교환의 실생활이 영향을 끼친 컨셉은 아닐까 추측도 해봤다.

= 하하, 시나리오부터 기훈은 유튜버였고 내가 보기엔 결대로 간 거여서 자연스러웠다. 자기 전공 살려서 유튜버된 거니까. 유튜버 정체성은 <괴이>의 중심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농담으로 장건재 감독님께 아쉽다고도 말했다. 유튜브 인터페이스 안에 있는 기훈의 모습을 살짝 보고 싶었거든. 아마 구독자는 42명 정도? 앞으로 계속 구독자 수가 늘어날 거라 믿고 있고 청사진에 부풀어 있는. 근데 여기에 디테일이 있다. 기훈에게 유튜브는 홍보 수단일 뿐 종이 잡지 ‘월간 괴담’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 그런가? 종이의 물성을 사랑하는 고고학자라니 퍽 어울린다.

= 기훈을 해석할 때 바로 그 정서가 좋았다. 아직 종이를 좋아하는 사람, 만드는 잡지든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연구 서적이든 책장을 넘기는 감성과 닮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기훈의 집 내부 장면을 보면, 이 사람은 책 속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식하자면 아름다웠던 것들에 계속 멈춰 서 있는 사람.

- 기훈의 삶을 걱정하는 친한 교수 선배에게 자긴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대사도 상징적이다. 수진과의 이혼, 그리고 죽은 딸에 대한 상실감이 인물의 마음에 너무 큰 공동을 남겼다.

= 그게 이 사람의 전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대화 장면은 1화이긴 하지만 일정상 거의 마지막에 찍었다. 여러 사건을 겪고 난 이후의 기운으로 연기해서인지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 대중문화에서 남편, 그리고 아빠의 정체성이 중요한 캐릭터에 일말의 스테레오타입이 적용될 수도 있었을 텐데 배우 구교환 특유의 독특한 박자감은 여전하다.

= 현실에서도 누군가의 사회적 역할과 그 사람이 실제로 가진 디테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예를 들어 <D.P.>도 마찬가지였는데, ‘D.P.라고 뭐가 다르겠어?’ 하는 마음으로 접근했었다. 캐릭터와 친해질 때의 내 태도가 대개 그런 것 같다. 맡은 역할이 피아니스트라면 당연히 피아노 치는 기술을 열심히 연습해야겠지만 그외의 것들에선 가급적 벗어나려 한다. 그래야 나 자신도 진심으로 편해진다.

- <괴이>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이 선보였나.

= 촬영 전날 생각했던 감정이 촬영 당일 3, 4번째 테이크에서 바뀔 수도 있다. 난 역시 매 테이크 다르게 연기하는 게 좋더라. 그래서 가끔 지켜보는 분들이 엔지로 오해할 때가 있긴 하지만…. (웃음) 나는 각자 다른 기운을 가진 수많은 유니버스를 계속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이 <괴이>를 연출했다. 감독의 변신이 배우에게 끼친 영향이 있을까.

= 장건재 감독님과는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존 카펜터의 <괴물>을 좋아한다든가 의외의 취향도 풍성한 분이다. 샘 멘데스 감독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007 스카이폴>을 모두 잘 만드는 것처럼 영화의 카테고리는 관객의 이해와 편의를 위해 구분된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연출하는 사람, 연기하는 사람이 고민하는 지점은 결국 늘 비슷할 수도 있다.

- 얼마 전 유튜브 채널 2X9에 이마트의 제작지원을 받아 만든 단편영화 2편을 공개했다. 모두 주연배우로 출연하고 그중 한 작품 <구교환 대리운전 브이로그>는 <모가디슈>에서 공연한 김재화, 박명신 배우를 캐스팅한 타임루프 블랙코미디다. 오랜만에 직접 연출을 했는데.

=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즐거웠다. 이마트에서 ‘인생의 맛’을 주제로 어떤 이야기든 먹는 장면만 하나 나오면 된다고 해서 그거 믿고 찍었지. 간만에 홀로서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웃음) 가족 중에 누나가 없어서 그런가 누나에 대한 동경이 있다. 김재화, 박명신 배우에겐 촬영 2일 전에 연락했다. 계속 끙끙 고민하다가 이틀 만에 쓴 시나리오였고 마침표 찍자마자 모레 시간 되냐고 연락했다. 두분 다 “일정 잠깐 볼게요. 아, 예, 시간 되네요” 하고 나와주셨다. 내가 느끼는 친밀함과 존중, 존경의 마음이 뒤섞여서 영화가 나왔다.

- 세 배우가 실제로 웃음이 터져버린 것 같은 장면도 있던데.

= 맞다. 그냥 진짜 웃는 거다. 우리의 목적이 ‘사적인 것을 연기하자’였다. 그게 실제의 우리는 아니지만, 브이로그 세계관 안에서 재화-명신-교환의 사적인 요소들이 있을 테니 그것을 하자, 웃고 싶으면 웃자, 그렇게 펼쳤다.

- 2X9(이옥섭 감독과 협업하는 영화 레이블)에서 배우 구교환이 애타게 사랑하지만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소정’이란 인물이 있다. 일명 소정이 세계관은 앞으로 쭉 지속될까.

= 아니, 그게 실은 나도 이제 얼굴이 좀 궁금해졌다. 관객이 소정이 세계관이라 불러주시는 게 참 좋다. 이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코드이기도 한데, 언젠가는 꼭 관객에게 소정을 만나게 해드려야겠다는 결심도 섰다. 언젠가는. 소정이가 뜻밖의 영화에서 처음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 대자본 영화에서…. (웃음) 관객이 이름을 모르던 어떤 캐릭터가 동사무소 가서 서류를 적는데, 거기에 소정이란 이름의 인서트가 삽입되면 어떤 쾌감이 생성될 것 같다, 하하.

- 이제훈 배우가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러브콜을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탈주>가 성사됐다. 두 배우의 호흡은 물론, 독특한 감성을 지닌 이종필 감독과도 시너지가 좋을 듯하다.

= 이종필 감독님은 나와 유머 코드가 너무 잘 맞는다. 누가 멈춰주지 않으면 같이 앉아서 한 12시간은 거뜬히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컷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농담을 늘어놓은 다음 정작 그 내용은 영화에 쓰지 않는다는 것도 좋다. (웃음)

-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을 기대하는 관객도 많은데.

= 변성현 감독님이 어떤 시선으로 나를 관객에게 소개시켜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전도연 선배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큰 의미다. 현장에서 전도연 선배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촬영장 비하인드 스틸컷을 소개하는 <씨네21> 기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 잠깐만. 내가 여기 배우로 와 있구나, 한 프레임 안에 있구나’ 생각하는 순간마다 설렌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경과 영감의 대상이었던 분 앞에서 가급적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들켜버린 것 같다.

- 표정 관리에 실패한 건가?

= 아니, 그냥 얘기해버렸다. 선배님. 너무 좋아해요!

- 주성치의 열렬한 팬임을 밝혀왔지만 정작 작정한 상업 코미디 영화는 아직 안 했다. 나중에 주성치와 만나려고 아껴두는 건가.

= 그런 걸로 해두자. 지금은 너무 거창한 의도 없이, 내게 주어진 무대에 맞게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모르겠다, 언젠가 ‘엄청 웃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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