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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 인터뷰 ①
임수연 2022-09-01

많은 이들이 ‘올해의 드라마’로 호명하게 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는 18살 때 돌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서울대를 가지 않겠냐는 말도 듣던 학생이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하자작업장학교로 향한 점이 이목을 끌면서 당시 매스컴에도 몇번 오르내렸다. 덕분에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그는 오랜 시간 영화감독을 준비하다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증인>이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네키드였던 문지원 작가는 어떻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독창적인 드라마 대본을 쓰는 창작자가 되었을까. 긴 이야기를 들었다.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마지막회 단체관람 이벤트 무대 인사 중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다.

=극장 갈 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기분일 줄 몰랐는데, 그런 기분이 들더라. 극장을 가득 채운 분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난생처음 경험한 일이었으니까. 인사하러 나가기 전부터 내가 긴장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까 박은빈 배우가 휴대용 미니 선풍기를 대줬다. 둘이서 “울컥하지 않기!”라고 했는데, 결국 내가 우니까 박은빈 배우도 눈이 빨개졌다. 배우와 스탭은 다른 관에서 마지막회를 봤다. 뒤풀이 자리에서 누가 “실시간 우영우 막방 단관 반응”이라는 영상이 떴다며 보여줬는데 ‘싱어롱’ 상영인 줄 알았다. 같은 곳에서 봤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 그 영상을 보고 또 울었다. 그날 내가 ‘울컥병’에 걸렸었다. (웃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에이스토리가 먼저 제안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 무렵 다른 제작사에서도 드라마 제안이 있었다. 당시 영화 연출을 준비하느라 계속 거절하던 상황이었고, 에이스토리와 만날 때도 사실 거절하러 나갔다. 그런데 “<증인>의 지우(김향기)가 성장해서 변호사가 되는 이야기”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재밌겠는데?’ 싶은 거다. 어떤 아이템을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바로 떠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고 “그런 내용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영화 시나리오만 쓰다가 16부작 드라마 대본 작업을 처음 경험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었나.

=회당 70분씩 16부작이면 총 1120분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1120분 호흡으로 만드는 건 훈련되어 있지 않지만, 70분짜리 이야기를 16개를 만든다고 하면 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 위주로 살펴봤다. 드라마 대본이 회당 30~35페이지 정도 되니까 페이지당 2분 정도인 셈이다. 감독, 작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 한장에 2분을 잡지는 않으니까 이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데 미국판 <굿 와이프>는 회당 40~45분, 한국은 70분이다. 미국판과 한국판을 신 바이 신으로 비교하며 표를 만들어 공부했다. 결국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평균보다는 조금 많은, 회당 대본 38페이지로 정리해서 작업했다. PD님들 말로는 “다른 팀은 대본보다 내용을 늘리는 법을 고민하는데 우리는 대본에 있는 걸 줄이느라 고생한다”고 했다. (웃음)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 대본은 대사 비중이 높다. 평소 지문을 꼼꼼하게 쓰는 스타일인가.

=시나리오 쓰기를 처음 공부할 때는 연출과 연기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지문을 쓰지 말라고 배웠다. 실제 현장에서 일해보니 지문이 상세해서 이게 어떤 상황인지 선명하게 보이는 게 진행이 더 수월했다. 예전엔 시나리오를 건조하게 썼는데, 지금은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한다.

-러닝타임 129분인 <증인> 때에 비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 법률 지식 등의 공부가 훨씬 면밀하게 요구됐을 텐데 어떻게 준비해나갔나.

=거기에 고래까지, 크게 세 덩어리의 자료 조사가 요구되는 프로젝트였다. 자폐인들이 특정 대상에 꽂힐 때 전문가 수준으로 지식을 쌓기 때문에 자폐와 법률만큼이나 고래 공부도 필요했다. <증인> 시나리오를 쓸 때 자폐를 공부해둔 게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동안 새로 나온 책과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다. 공모전에 냈던 <증인>은 도서관에서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회삿돈으로 전문 서적을 구입하고 배우에게도 줬다는 차이가 있었다. (웃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의 연애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넷플릭스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은 정말 귀중한 자료다. 가장 좋아했던 책은 캐나다의 토니 애트우드가 쓴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나와 유인식 감독님이 사서 보고, 박은빈 배우에게도 줬다. 가령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너머의 맥락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진단 기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많이 실려 있다. 여기에 어린이의 사례를 다룬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까지, 두권의 책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3년부터 미국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온 책 제목을 직접 언급하기가 다소 조심스럽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 우영우(박은빈)와 같은 케이스를 집중적으로 다룬 케이스를 당시의 진단명에 따라 다룬 책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아주 특별한 마음>은 진단 기준 나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주변인과의 관계와 심리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 힌트를 많이 얻었다. 가령 자폐가 있는 딸의 마음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부모를 상담한 사례는 기억을 해두고 있다가 영우의 아빠 광호(전배수)에게 적용한 부분도 있다.

-실제 사례에서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같은 사람들도 있었나.

=꽤 있었다.래 이타성이 높지만 평소엔 드러날 기회가 없다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서 자기 안의 이타성이 폭발하게 된 거다. 수연도 그런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명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방대한 자료 조사 내용 중 드라마에 가져올 내용은 어떻게 판단했나.

=에이스토리가 내게 처음 했던 질문은 “자폐인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기획 초반에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자폐인이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변호사와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의 답이 달라서 무척 흥미로웠다. 실제 변호사들은 전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도 몇명 있는데?” “난 이미 그런 사람과 일하고 있는데?” 심지어 “나도 그런 면이 있는데?”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아닌 분들은 무척 어려울 거라고, 자폐 증상이 약해서 겉으로 봤을 때는 구분이 되지 않아야 가능할 거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폐인 변호사 설정을 가져갈 이유가 없으니까 드라마를 준비하는 내게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그래서 반대로 ‘첫눈에 봐도 뭔가 다른 사람’으로 주인공을 세팅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어려움과 돌파하는 힘을 모두 자폐 스펙트럼 특성에서 찾았다. 우영우가 천재라면 그냥 천재가 아닌 자폐 스펙트럼이 갖고 있는 특성 안에서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데 특화된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갖고 있다든지, 원리 원칙을 고집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발휘될 수 있는 창의성이 있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특정 상황에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 의뢰인을 돕는 힘이 될 수 있다. 사실 자폐를 마치 초능력처럼 쓰고 편리하게 탈부착한다는 비판을 봤을 때 ‘내가 표현을 잘 못해 이런 말이 나온 거겠지’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게 의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솔직히 억울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장점과 약점을 모두 자폐 스펙트럼 특성에서 찾아내려고 애썼다.

-<증인> 개봉 당시 송형국 영화평론가가 “자폐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대사가 사실과 다른 점을 지적하며, 자폐 장애인을 일반화해 타자화한 한계를 지적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 데 더 익숙하다”면서 거짓말에 속지 않도록 계속 의식해야 하는 주인공의 성격을 좀더 상세하게 제시한다. 전작의 비판에서 더 나아간 지점을 보여준 것으로 읽혔다.

=사실 <증인>의 그 대사는 내가 직접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맥락은 알지 못한다. 고로 전작에서 받았던 비판에 어떠한 답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인은 착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상한 편견이다. 만약 어떤 자폐인이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의 특성, 사람들이 다른 의도를 갖고 나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지적 공감 능력이 낮기 때문이다.

-자폐의 특성을 ‘매력’으로 접근해 이른바 ‘모에화’한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독특한 사고방식, 강한 윤리의식이나 정의감, 특정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기억력, 시각과 패턴으로 사고하는 방식들. 자폐인들이 가진 많은 특성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깨닫고 놀랐다. 당연히 모든 자폐인이 그런 건 아니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강화되는 인간의 특성에 매력과 호감을 느꼈다.”) 때문에 자폐인이라는 단일화할 수 없는 집단을 대상화해서 매력으로 소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폐를 공부하면서 봤던 “자폐인의 특성을 장점 중심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다가 받은 지적도 있다. 작가와 시청자가 “그것은 오해다”라고 해명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분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자폐인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면 시청자가 싫어할 수 있으니 예쁘고 귀여운 모습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제작 초기부터 끝까지 소처럼 고집을 부리며 지켜낸 것 중 하나가 “첫눈에 봤을 때 이상한 여자주인공”이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15~16화 라온 공동 대표 김찬홍이나 우영우의 동생 최상현의 행동이 조금씩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신경다양인의 한 부류라는 분석이 있던데.

=상현의 경우 대본에 “자폐인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영우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폐를 연구하는 사이먼 배론 코엔 교수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자폐인 안에서만 스펙트럼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인간 특성에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는 말을 용감하게 한 적이 있다. 그분의 설명대로라면 상현이나 찬홍씨는 자폐 진단을 받지 않은 비자폐인이지만 자폐적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실제 변호사들이 쓴 에세이들을 원작으로 삼았다. 드라마화하기 좋은 사건과 에피소드를 고를 때 작가 나름의 원칙이 있었나.

=처음부터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 때는 이게 다른 사람에게도 재밌는지 스스로를 의심하며 끝까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원작이 있을 땐 내가 독자로서 읽을 때 재미있었으니 시청자에게도 재밌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반짝 포인트’가 중요했다. 법률적으로 명확한 플롯 트위스트(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갑자기 뒤틀어 버리는 것)가 있다거나 소재가 신선하다거나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고민과 연결될 수 있다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영우의 성장이고, 16개 에피소드가 그 흐름에 맞게 전개되어야 한다. 전체 흐름상 이때쯤 자폐인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특성을, 장애 여성의 연애를 보여주는 사건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계산하며 세부 순서를 짰다. 에세이와 사례집에서 발견한 내용과 직접 창작한 에피소드까지 총 16개의 기획안을 한 페이지씩 썼다. PD님들에겐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더라. 보통 작가들은 4화 대본까지 집중적으로 쓴 후 편성 확정 후 뒷부분을 마저 쓰는데, 전체 기획안을 짠 후 각각 판권을 사달라고 하는 건 처음 봤다고. (웃음)

-<증인>에 이어 두번 연속 법정물을 썼다. 창작자로서 느낀 법정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인가.

=2시간짜리 영화, 특히 상업영화는 ‘캐릭터 아크’(이야기의 줄거리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나는 등장인물의 변화)를 보다 선명하게 납득시키기 위해 보여주게 되는 그림이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법정에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설파하는 뜨거운 장면 같은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16개의 이야기를 가진 에피소드물이라 반드시 이를 따르지 않아도 돼 너무 재미있었다. 어떤 회차는 클라이맥스에 영우가 없다. 혹은 처음 보는 인물이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영우가 방청석에 앉아서 지켜본다. 이런 작업을 하며 느끼는 해방감이 있었다. 또한 풍산 류씨 판사님이 본관을 따지는 신은 2시간짜리 영화였다면 재밌지만 분량상 빠져야 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즐거웠다.

-<소년탐정 김전일>을 볼 때 김전일의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라는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고래가 뛰어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우영우가 고래를 좋아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갈 때 고래가 나타나는 이미지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시청자들이 ‘고래카’(고래+유레카)라고 불러주시는 걸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 8화 대본까지 쓴 후 유인식 감독님이 합류했다. 영우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가 고래였다. 다른 후보도 자료 조사를 한 후 대사에 반영해봤지만 너무 어렵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래로 결정된 후 ‘이제 진짜로 시작하니까 빼면 안된다’면서 방대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웃음) 최근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 장애를 가진 개체를 돕는 것은 고래가 유일”하기 때문에 우영우가 고래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너무 좋았다. 고래 무리가 장애가 있는 친구를 끝까지 도와준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고래가 유일하다는 건 몰랐다. 영우가 무언가를 알아낼 때 시그니처가 될 수 있는 표정이나 동작, 카메라 무브먼트나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이 역시 고래의 이미지가 됐다. 제작에 너무 큰 부담이 가지 않도록 고화질 스톡을 인서트로 끼우는 건 어떨까 제안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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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문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