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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은 아씨들' 배우 추자현③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2-10-21

처음 만나는, 우리가 잘 아는 추자현

- 오랜 중국 활동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 재개를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으로 시작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 처음 중국 진출을 결심하게 된 건 좀 더 다양한 연기의 기회를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30대는 중국에서 바쁘게, 그리고 치열하게 보냈다. 그러다 어느덧 나이에 맞게 경험과 감정의 팔레트가 다양해지고, 모국어로 내 안에 쌓인 재료들을 더 깊이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한한령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훨씬 그 이전부터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동안 공백기 속에서 복귀작을 기다리던 차에 <동상이몽> 출연 제안이 들어왔는데, 처음엔 당연히도 망설였다. 성격상 아직까지 SNS도 마냥 익숙지가 않은 사람인데, 예능이라니. (웃음) 그런데 소속사 대표(BH엔터테인먼트 손석우 대표)가 건넨 한마디에 마음이 동했다. “일단 한국 관객에게 제대로 인사를 한번 드리자”라는 말이었다. 4회만 하기로 했던 것이 반응이 좋아 SBS의 요청으로 길어졌고, 그러다 또 임신까지 했다. 당시에 많은 작품 얘기가 있긴 했지만 우리 아들로 충분히 만족한다. (웃음)

- 2018년 출산 후 2019년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으로 금방 연기를 시작했다. 앞서 <아스달 연대기>에 특별 출연했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아름다운 세상>이 거의 10년 만이었다.

= 기다린만큼 너무 감사하고 큰 기회였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유독 가혹했던 작품이다. 첫 방영날, 내 연기를 보고 화가 나더라. 인물의 감정에 충실해 연기했는데 그 감정의 데시벨에 있어 완급 조절이 좀 더 필요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작품 끝나고 6개월 정도 드라마 모니터링에만 집중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배우들이 어떤 톤으로 연기하는지, 시청자들은 어떤 디테일을 눈여겨보는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 연기력 논란이나 혹평 여론이 그다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처럼 철저하게 자기 평가를 했던 이유가 있나. 스스로 아쉽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되돌려보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 하기 싫어도 해야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웃음) 어떻게든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봤다. 중국은 거의 대부분 후시녹음으로 대사를 처리한다. 그러니 따지고보면 카메라 앞에서 100% 육성으로 연기하는 게 10년 만인 셈이다. 10년을 쉬었으니 내 발음과 발성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그러다 <가족입니다>를 만났다.

- 부모가 졸혼을 선언하고 남편이 커밍아웃한 상황을 건조하고 묵묵한 얼굴로 헤쳐나가는 <가족입니다>의 장녀로 시청자들의 큰 공감을 샀다. 한국 활동 재개 후 처음 찾아온 흡족한 순간을 맞이했을 법도 하다.

= <가족입니다>의 첫 촬영날은 데뷔 때보다 더 떨렸다. 다행히 감독님이 분위기를 워낙 편안하게 이끌어주는 현장이었고, 함께하는 배우들도 놀라울 정도로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가족입니다>의 후반부쯤부터 조금은 불안을 덜어낸 채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도 퇴근할 때마다 현장에서 받은 디렉션들을 되새기면서 자책한 적도 많았지만 내가 놓친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 배우 추자현의 진가가 드러난 지난 몇년은 한국 드라마 서사가 여성들간의 다채로운 관계와 생활의 깊이를 보여주려 변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긴 시간 떨어져 있다 돌아온 입장에서 변화를 느끼는 점이 있나.

= 전도연 선배가 과거에 “대본이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또래 친한 배우들끼리 만나면 여전히 다들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한다. 다만 시대의 흐름은 배우의 대사에 자연스럽게 반영되기에 과거와 비슷한 설정이나 대사이더라도 지금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힘이 더 실리는 부분이 생겨서 반갑게 느껴진다. <작은 아씨들>을 예로 들자면, 비밀정원 3자 대면 신에서 대치 중인 세 여자의 바스트숏이 반복될 때 ‘이거 누아르에서 남자들이 대결할 때 나오는 구도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심 짜릿하더라.

- <그린마더스클럽> 역시 전형적인 입시 드라마를 뛰어넘는 여성들 간의 우정과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다.

= TV드라마만 놓고 보면 40대 여성의 배역이 주로 사극, 불륜 혹은 입시 드라마에 몰리던 과거에 비해 요즘엔 OTT든 채널 드라마든 여성들이 맺는 다양한 관계와 직업적 전문성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많아진 걸 실감한다. <그린마더스클럽>의 대본을 처음 받아볼 때만 해도 비슷한 주제로 이미 성공한 드라마들이 꽤 있지 않았나, 약간의 회의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작가님을 직접 뵙고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그 이면에 훨씬 더 많은 것이 담긴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입장에서 시작하지만 이들이 여성으로서 각자의 인생을 발견하는 여정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여자들끼리 우정을 쌓으면서 상처주고 상처받는 구도도 좋았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고 각자의 생애 주기가 달라짐에 따라 우정을 지키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걸 내 인생에서도 배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했다.

- 지금 이 시점에, 현재의 나이를 통과하면서 전보다 좀 더 관심 가는 배역이 있나.

= 악역을 어느새 빌런이라 부르는 시대의 변화도 흥미롭다. 배우로서 바람이 있다면 정말 제대로, 빌런이 되어보고 싶다. 마냥 세고 강한 모습보다는 미묘한 디테일을 잘 살려보고 싶다. 이왕 할 거 아주 산뜻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좋은 때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기회가 언제 올진 모르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관록이 쌓인 빌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굳이 서두르고 싶진 않다.

- 커리어의 분기점들이 자연스럽게 나이대별로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과도 잘 맞물린다는 인상이다.

= 나도 이제 어느새 40대에 접어들고 나니 그동안 경험해 온 인생의 굴곡을 연기에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웃음) 옛날에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었지만, 이제는 그저 웃고 있어도 슬프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인생을 살면서 축적된 것들이 배우로서 어떤 표정을 쓰면 좋을지 고민할 때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표현의 숫자가 점점 더 소수점으로 쪼개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 하이틴 스타로의 도약을 알린 드라마 <카이스트>(1999)의 역할명 추자현을 예명으로 삼고, 중국 진출을 결심해 30대를 새로운 도전으로 채웠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에서 보여준 행보는 또 전혀 다른 추자현의 모습이다. 결정적인 때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실행에 옮기는 힘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 한번 결정하면 일단 앞뒤 안 돌아보고 추진하는 편이지만, 그런 순간이 오기까지 혼자 불안해하는 시간이 긴 사람이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머리 싸매고 있을 때가 많다. (웃음) 가장 두려운 건 주로 내가 충분히 잘해내지 못해서 주변인들에게 민폐 끼치는 일인데, 돌이켜보면 그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나를 성장시킨 것도 같다.

- 심약한 사람의 전전긍긍이기보단 도리어 자긍심 가진 사람의 부담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역할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쉬는 순간은 언제인가.

= 음, 언제나? 긴장하며 일하는 시간과 나를 풀어놓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어쩌면 내가 버텨내는 힘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일할 때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믿고 내 찌질한 모습이나 창피한 얘기, 걱정거리를 투명하게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진짜 멋있는 태도 같다. 내 허점도, 내 칭찬도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웃음)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무조건 혼자 해내려고 애썼던 20대를 거치면서 문득 생각했었다. ‘너 참 외로운 애였구나.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법을 몰라서 그저 혼자 잘하려고 했구나.’

- 지금 추자현이 가진 담력은 주변의 든든한 울타리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겠다.

= 그런가. 적절한 타이밍에 내게 필요한 것을 먼저 말하는 용기를 계속 부려보려 한다. 도움을 청하고 받으면서, 설혹 이번엔 부족했어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고 결국엔 나를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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