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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머더 바이 넘버
2002-06-04

■ Story

캘리포니아 해안의 호젓한 마을 숲 속에서 교살당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터프한 강력계 형사 캐시 메이웨더(샌드라 불럭)와 신참인 샘 케네디(벤 채플린)가 사건을 맡는다. 캐시는 현장에 남아 있던 운동화 발자국을 단서로 고교생 리처드 헤이우드(라이언 고슬링)을 심문하지만 신발은 도난당했고, 알리바이도 완벽하다. 범인은 학교의 수위로 밝혀지지만, 캐시는 리처드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갖는다.

■ Review 히치콕의 <로프>가 형사 콜롬보를 만났다? 1924년 데이비드와 코엡이라는 두 고교생이 벌였던 희대의 살인사건을 21세기 스타일로 손질한 스릴러 <머더 바이 넘버>는, 사랑에 빠진 두 남자가 소심한 친구를 로프로 목졸라 살해하는 히치콕의 스릴러 <로프>처럼 두명의 고교생이 살인게임을 벌이면서 시작한다. 그들이 범인이라는 것은 알려주지만 사건의 전모를 미리 보여주지는 않는다. <형사 콜롬보>처럼 범인을 노출하되 범행수법은 노출하지 않는다.

경찰을 속이는 기발한 범행수법을 하나씩 들추어가는 추리게임에 집중했다면 좋았을 <머더 바이 넘버>는 그러나, 일찌감치 ‘추리’를 포기한다. 캐릭터는 불분명하고, 각각의 세부에는 일일이 설명이 따라붙는다. 살인을 공모한 리처드와 저스틴의 캐릭터와 관계는 뒤죽박죽이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저스틴은 실제로 그 두뇌를 한번도 증명해 보이지 않는다. 범죄에 대한 명백한 철학으로 무장하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카펫섬유를 남겨 치밀하게 사건을 조작하던 그들은 막상 피해자를 앞에 두고 살인을 망설이고, 자신의 구토물을 현장에 방치한다. 두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둘만의 은밀한 의식을 행하며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하지만 두 사람의 권력관계도 모호하다.

형사 콜롬보의 재미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범인을 콜롬보가 어떻게 단서를 찾아내고 옭아매는지를 지켜보며, 범인과 벌이는 지적인 두뇌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머더 바이 넘버>는 콜롬보의 머리는 남겨두고 옷만 빌려왔다. 리처드와 저스틴을 취조실로 끌고 들어온 순간 ‘죄수의 딜레마’를 기대하던 관객은 두뇌와 배짱싸움 대신 투항을 선택하려는 그들에게 배신당한다. 한때 <행운의 반전> <위험한 독신녀> 등 단단한 범죄스릴러를 만들었던 바벳 슈로더 감독의 날렵한 감각이 그립다. 위정훈 osc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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