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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경이’ 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함께 집필한 성초이의 독특한 작업 방식
박다해 사진 박승화 2023-03-12

아이디어 핑퐁 게임

<구경이>의 극본을 쓴 ‘성초이’를 만나고 싶던 건 이런 반짝이는 이야기의 탄생 배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성초이를 2월15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났다. 성초이는 한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작가팀”이다. (두 사람의 답변은 성초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리하되, 각자의 답변을 나눌 필요가 있을 때만 ‘A’와 ‘B’로 임의로 적는다.) 각자 영화 작업을 해오던 이들이 드라마 작업을 함께하기 위해 만든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드라마를 쓸 때는 같이 합의할 수 있는 그림을 찾아보자는 맥락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적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구경이> 아이디어를 처음 주고받은 건 2017년께다. “그 시기에 영화 하던 사람들이 드라마쪽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시작됐거든요. (각자 작업하다가) 짬 나는 시간에 드라마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고 한 게 시작이었어요.” 아이디어는 두 사람이 탁구를 하듯 주고받았다.

성초이는 텔레그램과 구글독스 공유문서, 페이스타임을 이용해 작업한다.

“은퇴한 경찰 - 현재 보험조사관을 주인공으로 하자. 왜인지는 모름.” (핑!)

“보험조사관 일을 하는 은퇴한 경찰 출신에게 후배가 찾아오자.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며.” (퐁!)

“오 첫 회 재밌다.” (핑!)

“도무지 해결되지 않은 사건은 뭐지?” (퐁!)

“그건 진짜 경찰 사건 같은 거. 실종 사건. 1회 뒤에 시체 발견.”(핑!)

“주인공에게는 당연히 우울증이 있겠지….” (퐁!)

“당연. 맨날 술 마심. 우리처럼….”(핑!)

“내가 지금 이소라님 보고 있는데 집에서 맨날 게임하심.” (퐁!)

“그거다. 이소라님 생각하면서 써야겠다.” (핑!퐁!)

이렇게 던지고 받는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이디어 노트로 한번 정리해보자고 해서 구글 문서를 처음 만들었어요. 처음엔 ‘몇 회’ 개념이 별로 없이 ‘일단 한번 써보자’ 하고 써내려갔죠.”

<구경이> 시청자가 쾌재를 부른 건 이런 장면이다. 누아르영화에서 남성끼리 의리를 다지는 장소인 목욕탕에서 구경이와 용 국장이 마주하는 모습, 서로를 타박하면서도 끈끈한 믿음을 기반으로 호흡을 맞춰가는 구경이와 나제희 콤비(셜록과 왓슨, 이정재정우성 같은 여성 콤비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다 때론 몸으로, 때론 머리로 힘껏 충돌하는 구경이와 케이의 추격전.

사진제공 JTBC

해맑은 살인범 케이의 데드 리스트

이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굵직한 인물이 모두 여성으로 설정된 건 ‘재미’를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굳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바꾸자고 작정한 건 아니”지만 “최종 빌런(악역)으로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지겨웠”다. “(대본에 어울리는) 배우를 떠올리면서 ‘이런 분이 하면 재밌지 않을까?’ ‘이 캐릭터가 이런 느낌이면 어떨까?’ 고민하다보니 용 국장은 편한 등산복도, 슈트도 잘 어울리는 중년 여성이 되어 있었어요. 그게 제일 재밌고 새로운 그림으로 보였어요.”

동시에 극은 연쇄살인범 케이를 통해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진한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케이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 대상은 성매수 남성, 불법촬영 가해자, ‘갑질’과 탈법 위에 선 기득권층, n번방과 ‘웹하드 카르텔’의 주범들이다. 이는 대본을 쓰던 당대의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성초이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저희가 작품을 쓰는 동안 미투 운동이 대중화됐고, 그 전후에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 너무 많았잖아요. 자연스럽게 ‘진짜 얘는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소재로 쓰자 싶었어요.”

하나의 정체성으로 함께 일하는 성초이의 작업 방식이 좀더 궁금했다. 작업을 위한 필수 앱은 페이스타임(영상통화 앱), 구글독스, 텔레그램 세 가지다. 페이스타임이나 텔레그램으로 실시간 대화하고 각종 참고자료를 주고받으며 구글독스 공유문서로 장면을 완성해나간다. 방식은 그때그때 다르다. 각자 다른 신을 쓸 때도 있고 아예 한 장면을 같이 쓸 때도 있다. 상대가 입력하는 글자를 실시간으로 동시에 볼 수 있는 구글독스 공유문서의 기능을 톡톡히 이용한달까. 둘 다 이 작업 방식이 “아주 잘 맞는다”.

공동작업은 지칠 때 서로를 붙들어주면서 짐을 나눠 지기에 제격인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집에서 (작업을) 하면 잘 안될 때도 있잖아요. 그때 (페이스타임) 켜놓고 하면 집중도 되고요. ‘내가 좀 대충 봐도 상대가 열심히 봐주겠지’란 믿음도 있고요. (웃음) 스트레스가 경감되는 장점이 있죠.”

<구경이>를 위한 자료 조사는 인터넷의 힘을 많이 빌렸다. <구경이> 곳곳엔 인터넷 밈을 적극 활용한 대사도 나오는데 “인터넷에 살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얻는다. 다만 저유조, 출렁다리, 인천 월미도 등의 장소는 직접 다녀오면서 대본이 구체화하기도 했다.

개별적인 작업 루틴은 조금 다르다. A는 ‘다섯신’ 이상을 넘겼거나 ‘하루 3시간 이상’ 썼다는 두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하면 그만 쓴다. “욕심내면 다음날 작업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3시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미활동을 하든지 작업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보든지 해요. ‘글을 안 쓰는 시간’이 확보돼야 쓰는 시간에 집중하게 돼요.” A는 ‘취미 부자’인데 피아노·프라모델·주짓수 등을 한다.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보다 오는 일”은 적절히 자신을 환기하면서, 오히려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영화·드라마·책은 일상이다.

B는 “마감을 어기지 않는다” 정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단 퇴고하는 시간을 꼭 갖는다. “마감 최소 3일 전에 끝내고 ‘글 청소’를 하는 게 마음이 좀 놓여요. 물론 끝나도 끝나는 게 아니고 퇴고도 완전한 퇴고도 아니지만요.” B의 취미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산책과 컴퓨터 온라인 게임을 열심히 하는 정도다. 방탈출은 성초이가 함께 즐기는 취미인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땐 하나의 서사를 따라가며 문제를 풀어야 탈출 가능한 방탈출 게임을 하며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A는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하지만, B는 반대다. “늘 (글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A는 “작업이 끝나서 노트북을 닫으면 아예 보지도 않는” 반면, B는 “모니터 세개에 게임, 레퍼런스가 되는 영상, 작업창을 모두 켜두는” 스타일이다. 게임 한 차례가 돌 때마다 15초가량 쉴 수 있는데 그때 한 문장씩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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