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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D.P.’ 김보통 작가, “일상에서 이거는 아니라고 느끼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싹튼다”
류석우 사진 류우종 2023-03-13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대기업 나와 로스쿨 준비하다 웹툰 작가로

2013년 김보통이 회사를 나왔을 때, 계획은 없었다. 일본 오키나와로 떠났다. ‘따뜻하겠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보름 동안의 여행 기간에, 김보통은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관한 깨달음은 없었다. 오키나와 자탄정 미하마에 있는 아메리칸빌리지에서 관람차를 타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뿌연 안개 너머 태양인지 뭔지가 흐리멍덩하게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 미래 같았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획은 없었다. 무언가 홀린 듯 ‘작은 도서관’을 준비했다. 퇴직금으로 2천권 넘는 책부터 샀다.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지 못했다. 대학 때 존경하던 교수님도 왜 길이 아닌 길을 가느냐고 했다. 그렇게 도서관은 포기했다. 퇴직 4개월째. 퇴직금 절반이 사라졌다. 무언가에 쫓기듯 로스쿨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린 것은 요리를 하면서였다. 처음엔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그렸고, 트위터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두명씩 그리다보니 어느새 수백명의 그림이 쌓였다. 그러던 어느 날, 웹툰 <송곳>을 그린 최규석에게 연락이 왔다.

“만화 한번 그려보실래요?” 로스쿨 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등록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웹툰 <아만자>를 그렸다. 김보통이 세상에 꺼낸 첫 이야기였다. 막상 시작하니 쌓아뒀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렇게 <한겨레>에 2014년부터 두 번째 만화 <D.P: 개의 날>을 연재했다. 2015년부터는 웹툰으로 연재했다. 웹툰이 인기를 끌며 여러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영화화는 번번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원고당 5만~10만원씩 받고 이곳저곳에 칼럼과 수필도 기고했지만, 벌이가 좋진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때쯤, 넷플릭스 시리즈로 <D.P.>를 만들자고 연락이 왔다. 드라마 각본을 써야겠다고 꿈꿨던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돈을 주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첫 드라마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세상에 나왔다.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아버지의 암 투병, 자신의 군 복무 경험

웹툰, 수필, 드라마. 플랫폼은 다 다르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이야기’다. <한겨레21>이 김보통을 만난 이유다. “영역을 긋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D.P.>도 수필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필은 ‘짧은 노래’ 같아요. 만화는 (한번 볼 때) 3~5분을 읽는 것을 1년 넘게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하는 거고요. 드라마는 5분 안에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해서 50분을 끌고 가야 해요. 목적이 달라요. 지점이 약간 변형됐을 뿐이에요.”

줄거리는 다르지만 김보통만의 문제의식과 경험이 녹아들었다는 점은 같다. 첫 웹툰 작품 <아만자>엔 8년 동안 암 투병을 한 아버지와 암 환자 관련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배어 있다. 웹툰과 넷플리스 시리즈 <D.P.>엔 군 복무 시절 ‘DP’(헌병 군탈 체포조) 임무를 맡아 활동하며 느꼈던 모순과 군대의 부조리가 투영됐다.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엔 대기업 퇴사 뒤 방황기를 거쳐 펜을 잡게 된 이야기가 담겼다.

“현실 세계에서 제가 겪는 문제의식이라든지 불만이 제 이야기의 원점이 되거든요. 일상에서 이거는 아니라고 느꼈던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싹트는 것 같아요. <D.P.>는 제가 탈영병을 쫓으면서 겪은 아이러니와 문제점이 눈에 띄었던 거죠.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하고요.”

경험은 다른 작품보다 더 구체성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당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온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거기에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DP라는 임무를 받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재미라는 요소가 더해지며 군대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이 생겼다.

“니들 오밤중에 거서 뭐 하냐.”(박범구) “나무 심고 있습니다.”(김일석) “식목일도 아닌데?”(박범구) “헌병대장님이 심으라고 했지 말입니다. 막사 앞에 썰렁해 보인다고.”(이효상) -<D.P.> 2화

오밤중에 또 뭐 하냐?”(박범구)나무 옮기고 있습니다.”(김일석) “대장님이 심으랬다매. 썰렁하다고.”(박범구) “사단장님이 뽑으라고 했지 말입니다. 보기 싫다고.”(이효상) -<D.P.> 4화

사진제공 넷플릭스

김보통이 가장 처음 쓴 웹툰 <아만자>에도 구체적인 표현이 군데군데 나온다. “나는 이미 끝난 것 같다. 애당초 게임은 끝났는데 나만 인정을 안 하고 있는 느낌.” “온몸을 믹서기로 갈아버리는 것 같은 통증.” 이런 대사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김보통은 암 투병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을 넣었다고 했다.

김보통은 만화가나 작가를 꿈꾼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놀 때 집에만 있었다. ‘망상’이 최고의 놀이였다. 책을 사 볼 돈도 없었다. 그냥 혼자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상상했다.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처음으로 책을 원 없이 봤다. 책을 보면서 ‘나도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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